내가 할 거야! 내가!
서너 살, 빠르면 두 살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다들 귀에 딱지가 지도록 듣는 말이다.
우주도 그랬다.
"내가 할 거야! 내가"
하지만 주변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경우였다. 자조와 관련된 것에서는 '엄마가 해줘! 엄마가!' 였으니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꺼지는 세이펜이 바이바이를 외치면, '내가 끌 거야!'라고 울음이 터졌다. '자동으로 꺼지는 거야. 어쩔 수 없어.'라고 해도 바뀌는 건 없었다.
문제는 다시 켜서 직접 끄게 해 줘도 멈추지 않는 울음이었다. 사소한 것도 이미 지나가버린 것은 돌이킬 수 없었다.
그래서 세이펜을 쓰고 나면 우주가 바로 끄도록 계속 신경을 써야 했다.
우주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반드시 자신이 눌러야 했는데, 아들이라면 누구나 거쳐간다기에 처음에는 귀엽게만 여겼다. 하지만 점점 적정 선을 넘어가는 듯했다.
3층에 가려는데 버튼이 이미 눌려 있거나 다른 사람이 먼저 누르면, 우주는 2층을 눌러 내리고 다시 탄 후, 자신이 3층을 눌러야 했다. (그마저도 나아진 것이다. 처음에는 눌려 있기만 해도 울었으니까.)
나의 마음이나 상황이 여유로울 때는 받아줄 수 있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만원 상태인 엘리베이터를 여럿 보내야 했거나, 시간이 촉박했을 때는, 아이의 그런 비효율적인 행동을 기다려 줄 여유가 없었다.
그땐 '루틴'이라는 것을 몰랐으니 더욱 그러했다.
루틴이 한 번 깨지면, 그다음부터 우주의 귀에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쉴 새 없이 몸부림치며, 지나온 엘리베이터 방향을 향해 손을 뻗을 뿐이었다.
그대로 집에 오기라도 하면, 다시 그 장소로 돌아가야 한다며 현관문 앞을 떠나지 않고 울부짖었다.
그 끝은 없었다.
저렇게까지 울 수 있다고? 그렇게 사소한 이유로? 버튼 하나에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의 사고 회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버릇없는 아이를 그저 내버려 두는 엄마로 보이기 싫어 그 자리에서 우주를 혼내기도 하고, 우주의 손을 잡아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도 했다.
그렇게 아이와 나 사이 이해의 간극은 점점 벌어졌고, 아이의 탠트럼은 더욱 자주, 더욱 강하게 발생했다.
분노 발작으로 불리는 '탠트럼'이 시작된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주가 한국 나이로 네 살이 되기 몇 개월쯤 전부터였다.
아니, 어쩌면 더 예전일 수 있다.
주변에서 유니콘 중의 유니콘, 순한 아기라 불리던 우주가, 두 돌 전까지 간혹 숨을 멈추는 일(호흡정지 발작)이 있었는데, 늘 신던 운동화가 작아져 새로운 운동화를 신어야 했을 때, 명절 기념으로 한복을 입어야 했을 때, 콧물흡입기를 켜는 소리를 들었을 때, 등이다.
루틴을 어기면 불안이 야기되고, 뇌의 문제로 감정 조절이 되지 않고, 마치 폭발하듯 감각이 과부하되어 멘털이 붕괴되던 아이였다. 탠트럼보다는 '멜트다운'이라는 용어에 해당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무슨 꿈을 꾸었는지.. 자다 깨서도 '내가!'를 외치며 발버둥을 치기도 했다.
"엄마는 네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몰라. 그러니 이야기를 해줘."라고 해도 아이는 계속 울부짖을 뿐이었다.
(야경증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탠트럼이 소거된 이후 새벽에 깨서 우는 일은 없다. 당시 이웃에 새벽에 시끄러워 죄송하다 인사드렸는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다.)
더 큰 어려움은 자조와 관련해서 발생했다.
우주는 소근육과 대근육 발달이 또래에 비해 느린 편이었다.
킥보드를 탈 때, 앞을 보지 않아 방향 전환이 맞게 이뤄지지 않았다. 가위질을 할 때도 손은 가위와 종이에 있지만, 눈은 항상 다른 곳에 가있었다.
분명 다섯 보 앞에 나무가 보이는데도 계속 돌진해, 얼굴을 부딪혀 입술에 피가 난 적도 있다.
지금은 시지각 통합이 어렵다는 표현으로도 아이를 설명하지만, 그때는 그저 다 느리게만 보였다.
숟가락 쓰는 법을 배우려면 흘리더라도 스스로 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주는 밥풀 하나라도 옷에 묻거나 턱받이에 들어가면,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그 끼니는 굶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편식이 심해 버려지는 음식이 많았고, 애써 요리한 보람도 느껴지지 않는 날들이었다.
자조와 관련된 것들에서 우주는 쉽게 좌절하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 보였다.
그러다 한 독설가를 만나게 된 것이 전환점이 되었다.
(이 '독설가'는 유명한 분이고, 그분의 개인 정보가 있어 글을 자세히 쓰지는 못한다.)
그 독설가는 나에게 소리쳤다.
"아이가 저런 건 다 엄마 탓이야!"
나는 다른 이들이 보는데서 울었다. 안 그래도 힘든데 아이가 저런 게 내 탓이라니.
하지만 독하기만 한 줄 알았던 그 말이, 시간이 흘러 돌이켜 보니 다른 의미로 와닿았다.
'아이의 자폐는 엄마 탓이 아니지만, 아이의 탠트럼은 엄마 탓'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asd 여부를 떠나 불안이 높은 아이들이 있다.
나도 어릴 적에 그랬다. (아니 지금도.)
과민성대장증후군을 겪은 시기도 있고,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강박처럼 집을 정리하기도 했다. 지금도 꿈을 꾸면 항상 무언가에 쫓기곤 한다.
그동안 나는 아이의 입장이 아닌 주변에 민폐를 끼치기 싫은 나의 입장, 타인의 입장만 고려했다.
아이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행동에 가려진 '불안'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불안'에 대해 공부한 나는, 우주에게 미리 예고하는 방식, 선택권을 주는 방식, 역할놀이를 통해 여러 상황을 미리,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방식 등을 적용했다.
그 결과, 아이의 불안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번에는 내렸다가 네가 다시 누르기로 하자. 대신 다음에는 엄마가 누르게 해 줘. 약속."
이런 대처에 우주의 행동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은 아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눌러."라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양보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버튼을 눌렀는데, 루틴을 까먹기라도 한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날이 늘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예로 들었지만, 책을 보거나, 방을 정리하거나, 신발을 신거나, 여러 상황에 아이의 루틴이 있었고, 나의 뇌가 녹아내릴 것만 같던 고통의 시간도 지나가고 있었다.
내 맘 속에서는 비가 내릴지언정 "엄마는 너의 마음을 이해해. 그리고 너를 항상 사랑할 거야."라는 한결같은 믿음과 표현은, 우주의 행동을 마법처럼 바꿔놓았다.
불안이 많이 줄어든 우주는 이제 논리적인 설득도 가능하다.
집에 주차할 때도 늘 같은 층으로 가야 하는데,
"오늘은 청소를 한대. 그래서 지하 3층에 주차할 수 없어. 4층까지 내려가야 해."라고 하니,
"응."이라고 대답하는 우주.
눈빛에는 나를 향한 신뢰가 가득했다.
지인 중에 딩크를 선택하여 큰 잉글리시 쉽독 두 마리를 키우는 분이 있다. 그분은 언제나 나에게 자신의 힘듦을 이야기했다. 내가 육아의 육자도 꺼내지 못하게 미리 방어를 하고는, 내가 아이를 매일 산책시키지 않아도 된다며 부러워했다.
등원길에 마주친 우주 친구의 엄마도 아침부터 남매 둘이 싸우느라 오늘도 늦었다며 깊은 한숨을 쉬곤 했다. 그러고는 아들 하나만 키우는 나를 부러워했다.
정발이냐 아니냐를 떠나, 아이마다 기질과 성격이 다르고 부모와 조합도 다르기에 육아의 어려움은 비교할 수 없다.
다만, 우주는 나에게 있어 고양이와 소통하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신경계가 다름에서 오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매일 마주함에 있어 익숙해지는 것은 있지만 온전히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집고양이는 독립시키지 않아도 된다. 수명도 짧기에 내가 죽을 때까지 책임진다는 가정하에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우주는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조는 시켜야 하는 것이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두통은 그저 내가 감내해야 할 숙명 같은 것이 되었다.
우주는 이러한 삶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겠는가. 아니, 삶 자체를 우주가 선택한 것 또한 아니다. 부모인 우리가, 내가 선택한 것이다.
게다가 우주는 나에게 있어 신경학적 차이가 있는 '한 명'이지만, 우주가 앞으로 상대해야 하는 것은, 이해의 바탕과 규칙이 자신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여러 사람이자, 전체 '세상'일 테니까.
그런 아이에게 지지할 땅이 되어줄 수 있도록, 엄마인 내가 더 강해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