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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 상영중] 조커(Joker, 2019)

연기의 스펙터클, 비극의 미러클

by 김태혁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

인생의 아이러니를 함축한 찰리 채플린의 이 명언은 아마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정도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영화의 제작, 각본, 연출, 주연, 심지어 음악까지 담당하기도 했던 채플린은 뼛속 깊이 영화인이었다. 채플린은 'close-up(클로즈업)'과 'long-shot(롱샷)'이라는 영화 촬영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인생은 늘 비극과 희극이 동시에 공존하는 상태임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채플린의 말에 따르면, 인생을 희극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멀리서 봐야 하는데 멀리서 보려면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객관화하고 관조할 수 있어야 한다. 주지하듯이 자신과 거리두기만큼 어려운 일도 없기 때문에 가만히 두면 인생의 그래프는 점점 더 비극의 극점으로 이끌리게 된다. 채플린의 말과 반대로 '가까이에서 보면 희극이고 멀리서 보면 비극'이라면 우리는 덜 노력하고도 더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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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Joker, 2019)>는 주인공 아서 플렉의 인생에 바짝 밀착한 클로즈업 같은 영화다. 그러니 철저한 비극이다. 주인공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실존 인물 찰리 채플린의 어둡고 음울한 자아를 한껏 도드라지게 만든 후 재창조한 캐릭터처럼 보인다. 1889년 4월 16일 런던에서 태어난 채플린은 아서 플렉처럼 불행으로 점철된 성장기를 보냈다. 부모의 이혼, 가난, 어머니의 정신발작, 고아원... 보통 사람이라면 하나도 견디기 힘든 난감한 상황들을 뚫고 채플린은 열 살에 극단에 입단했다. 그의 천부적 재능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코미디언은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를 얻었고,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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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플렉은 채플린처럼 불우한 환경에서 컸다. 그는 나이가 꽤 들어서도 코미디언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나름 열심히 산다. 몇 번의 고약한 사건들이 연거푸 아서 플렉을 덮친다. 자신의 비극적인 현실을 딛고 일어나 마음껏 웃고 관객들도 웃게 만들었던 채플린과 달리 아서 플렉은 현실에서 혼자 발작적으로 웃기만 할 뿐 스탠드업 코미디 관객들을 웃기지 못하고 미궁에 빠뜨린다. 또 다른 잘못된 만남은 아서 플렉을 절망의 계곡 아래로 밀친다. 결국 그는 채플린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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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는 '아서 플렉은 왜 조커가 되었나? 혹은 될 수밖에 없었나?'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답이 될법한 선택지들을 보여준다. 어려운 가정 형편? 잘못된 양육 방식? 선천적인 이유? 허술한 사회보장제도? 극심한 빈부격차? 소수자와 약자를 짓밟으려고 하는 인간의 사악한 본성? 단 하나의 명백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얽히고설킨 지독한 우연들이 얼굴 물감이 되어 아서 플렉의 얼굴을 색칠했음을 알아차리고 나면, 그에게는 조커 분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불러줄 누군가의 존재가 절실했음을 관객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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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플렉(이자 조커) 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 덕분에 이 영화는 관객에게 심리적 개연성을 충실히 전달할 수 있었다. 전신의 모든 근육은 물론 뼈마디마저 자유자재로 조율하는 그의 연기는 연기만으로 스펙터클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이미 온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극찬한 그의 연기에 호평을 덧붙인다는 것은 바다에 소금 알갱이 하나 더하는 일이겠지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아킨 피닉스가 보여준 연기의 스펙터클이 이 처참한 비극을 미러클로 둔갑시켰다.
영화는 영화일 뿐, 따라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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