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영화는 웬만한 고발장보다 더 적나라한 고발장이 된다. 어떤 감독들은 자신이 목격한 처참한 현실에 연루된 사람들의 면면을 잊지 못하고 기어이 스크린으로 소환한다. 실제 법적 판결과 별개로, 관객들의 냉철한 판단을 조심스럽게 요청한다. '이게 과연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인가요? 누구의 잘못 때문에 이렇게 된 걸까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스포트라이트>,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빅쇼트>, 국내에서 작품성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도가니>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화들이 강력한 메시지 전달력을 가진 영화의 힘을 십분 활용했다. 영화 <다음 소희>는 사회 고발 영화 추천작 리스트에 추가해도 좋을 만큼 준수한 완성도를 보여 준다.
영화 <다음 소희>는 값싼 인력 공급 장치로 전락한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직구에 가까운 다큐멘터리 대신 실화 기반의 픽션으로 완성된 <다음 소희>는 정교한 변화구가 되어 관객의 마음속 미트에 꽂힌다. 카메라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주인공 소희가 콜센터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노동 소외, 모멸감, 수치심 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소희가 참여한 현장실습제도를 통해 자본주의 말단에 자리한 청춘들의 보편적 현실을 직시하고 보듬는다.
춤추는 것을 사랑하고 쾌활하며 강단 있는 소희의 내면이 서서히 부서져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괴롭지만 고개를 돌릴 수 없다. 소희가 어떻게든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내서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기를, 아니면 지옥 같은 콜센터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그것도 아니면 소희가 콜센터를 탈출해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댄서의 길을 좇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끝끝내 관객의 기대를 대부분 배반하고 만다.
철저한 비극으로만 가득할 뻔했던 이야기에서 배두나가 연기한 형사는 얼마 남지 않은 희망의 증거다. 배두나의 열연 덕분에 청춘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어깨를 빌려주는 속 깊은 어른이 많지는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 반드시 존재하긴 할 것이라는 작은 기대감을 품게 된다. 소희가 들렀던 어느 작은 주점의 출입문 사이를 뚫고 들어와 소희의 발에 닿았던 가느다란 한줄기 햇빛처럼 우리 사회는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보다 타인을 위해 묵묵히 따뜻함을 제공해 주는 사람들 덕분에 겨우 살아갈만한지도 모른다. 영화 <다음 소희>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 '다음 소희'가 더 이상 없기를 바라며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와 만나기를 소망한다.
(추신 : 지난 2월 6일 오후 8시 메가박스 코엑스 <다음 소희> 시사회에 초대해 주신 김동하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진 1 : 지난 2월 6일 메가박스 코엑스 <다음 소희> 시사회 현장)
(▲사진 2 : 지난 2월 6일 메가박스 코엑스 <다음 소희> 시사회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