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온 마음과 시간을 바칠 만큼 애정을 투여한 대상이 첫사랑이라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첫사랑은 영화다. 스필버그의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The Fabelmans)>는 그가 어릴 때 처음 영화와 만난 후 수차례 위기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1971년 TV용 영화 <대결(Duel)>을 연출하며 본격적으로 영화감독 일을 시작한 스필버그는 지금까지도 현역 감독으로 활동 중이니 '첫사랑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통념을 깨부수는 예외적 인물인 셈이다.
지난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인용했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를 응용해서 표현한다면, 영화 <파벨만스>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일 수 있다"를 입증하는 영화다. 스필버그는 직접 경험한 미국 사회 내 유대인의 정체성, 부모의 이혼, 친구의 괴롭힘, 이성과의 만남 등 자신의 낡은 일기장에서 발굴한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어릴 적 그의 마음이 암흑에 가까워질 때마다 영사기의 빛이 어둠을 물리쳐 주곤 했다. 그에게 영화는 쾌감을 선사하는 엔터테인먼트이자 사람들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거대한 파도였다. 평범한 인간을 영웅으로 만들 수도, 허섭스레기로 만들 수도 있는 조작의 도구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외도처럼 외면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이처럼 영화 <파벨만스> 속 스필버그의 이야기는 영화와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사건과 감정을 담고 있다. 특히 영화를 취미가 아니라 생업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정말 큰 위로다. 수많은 도전 끝에 겨우 작은 일을 따낸 주인공 '샘(가브리엘 라벨)'. 그가 당대 최고의 감독이었던 존 포드와의 짧은 대화를 마친 후 작은 희망에 고무된 채 걸음을 옮기는 엔딩 신은 영화계 종사자들에겐 최고급 홍삼이요, 최고가 영양제가 아닐까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