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이란 창이 있어 세상은 무척 근사하다

Movie Appetizer#34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무엇이 왜 사라지는가
사전적 의미를 초월하는 가치
당신의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라는 규칙이 있는 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하 세고사).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은 주인공(사토 타케루)은 하루의 삶을 연장하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하나를 잃어야 한다. 시한부라는 설정이 시한폭탄처럼 늘 따라다니는 이 영화는 죽음을 마주하고서도 무겁지 않고, 의연한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동화적이면서도 따뜻한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죽음을 거울삼아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빈자리를 채워나가게 하는 독특한 영화다.



무엇이 왜 사라지는가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인가 하나를 없애야 한다면, 무엇부터 골라야 할까. 아니면, 이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나 없애야 한다면, 뭘 선택해야 할까. 이 규칙은 다양한 이야기를 그려보게끔 상상력을 자극한다. 엄청난 판타지물이 탄생할 것만 같은, 혹은 코믹한 상황이 전개될 것만 같은 설정이다. 그런데 <세고사>는 이 흥미로운 설정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많은 것을 없애고 혼란을 가져오는 대신, 멜로적 분위기와 감성을 가진 드라마를 구현하기 위해 이 설정을 살짝 이용할 뿐이다.


<세고사>에서 사라지는 목록은 고양이를 포함하더라도 그리 많지 않다. 영화는 사라질 것들을 섬세하게 선택했다. 그래서 관객은 소멸을 강요받은 것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어떤 것이 왜 사라지는가’를 알아가는 게 이 영화의 비밀이자 중요한 서사다. 그리고 이를 잘 쫓아간다면,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많은 것들이 결국 단 하나의 의미로 다가오는 값진 순간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사전적 의미를 초월하는 가치

어떤 도구, 물건 등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했을 때,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불편함’일 것이다. 가령, 휴대폰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떨까. 연락을 할 수 없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고, 심심한 시간에 붙잡고 있을 게임도 더는 없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라질 빈자리. 그 때문에 답답하고 불편해질 삶이 끔찍하지 않은가.


반려동물이 없어진다는 것은 휴대폰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가족과 헤어지는 슬픔, 일상을 공유하던 것이 없어지는 허전함 등의 감정적인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상에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세고사>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이 영화에서 무엇인가 없어진다는 것은 감정과 기억의 공백을 뜻한다. 그리고 그 공백을 쫓다 보면, 주인공은 자신이 무엇으로 이뤄진 세계 속에 살고 있었는지를 자각하게 된다.


우리는 물질을 사전적으로 정의하고,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물질의 가치가 똑같지는 않다. 저마다의 개인에게 물질은 자신만의 특별한 의미로 변환되고, 그것은 삶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영화 속 주인공의 고양이가 길거리의 많은 고양이와 다르고, 가치가 있는 이유는 주인공이 그 고양이와 만든 추억과 사연 덕분이다. 그래서 이 고양이가 사라진다는 건 단순히 동물의 종 하나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주인공의 삶에 큰 지분을 가지고 있던 요소 하나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아름다운 당신의 삶

<세고사>는 아름다운 영화다. 일본의 정서와 정갈한 배경,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의 이국적 풍경까지 더해져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영화 곳곳을 채운다. 섬세한 빛을 다수 사용한 것만 봐도, 이 영화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순간들이 모여 이 세상이 다채로운 아름다움으로 채워져 있음을 보여준다.


영상미가 뛰어나다고 해서 무작정 좋은 영화라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고사>가 추구한 영상미는 영화의 주제와 잘 어울리기에 적절한 연출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세상은 이 이야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닿아있다. 그래서 이 연출은 전혀 겉멋으로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영상미는 우리 모두의 삶은, 저마다의 사물과 그것이 가진 의미를 통해 아름다움으로 충만하다는 걸 보여줬다.



<세고사>는 우리가 대상과 맺은 관계를 통해, 그 대상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정의 하라 한다. 우리는 모두 수많은 관계 속에 있고, 덕분에 다양한 가치로 충만한 삶 속에 있음을 보라 한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경제 불황을 겪었고, 많은 청년이 암울한 시대를 겪었다. 이 영화는 그들에게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말한다. 역시나 바다 건너에서 암울한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한국의 관객에게도 <세고사>는 따뜻한 온기를 받을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뉴스를 통해 보고 있는 오늘은 참 아름답지 못한 세상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란 창을 통해 세상은 무척 아름답고 근사하다. 그러니 살아갈 희망을 찾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볼링핀이 눈에 익으면, 끝나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