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결산 1 - 재벌의 타락을 보편화하는 극장가
연말 결산 1. 재벌의 타락을 보편화하는 극장가
연말 결산 2. 현실을 베끼는 영화, 그리고 영화처럼 굴러가는 현실
연말 결산 3. 다양성의 지표 ‘여성’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한 해의 영화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한 해가 넘는 방대한 시간 동안 상영된 영화 중, 직접 관람한 것을 기억에 의존해 정리하기에 편향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불안한 건, 비평적 오류도 예상된다는 점이다. 그래도 나름 결산을 하며 넘어가고 싶었다. 올해는 한국 영화계에 있어 하나의 분기점이 될 사건을 겪었고(있는 중이고), 근래 한국 영화에서 몇 가지 경향성을 목격했다고 믿기에, 이 시기를 정리해 두고 싶은 사적 글쓰기의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글은 총 세 개의 토막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첫 편에는 작년부터 유난히 강세를 보였던 재벌 및 상류층을 다룬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이후엔 현실과 영화의 전치된 관계에 관한 글을 준비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여성’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시도할 예정이다.
첫 번째 토막. 반재벌 영화의 의미와 한계
작년부터 한국 영화계에 지배적인 소재 중 하나는 ‘재벌’과 ‘상류층’이었다. 주로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부와 권력을 남용해 부패, 타락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으로 상업영화에 등장했다. 사실, 한국 대중문화에서 재벌은 많은 사랑을 받아 온 캐릭터다. 드라마에서 재벌 2세는 모든 것을 가지고, 로맨틱하기까지 한 선망의 대상으로 시청자의 마음도 흔들어 놓았다. 까칠한 모습을 보이긴 해도 내 여자에게는 따뜻한, 그리고 천성은 착한 캐릭터로 그려지는 게 상류층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재벌에게 부패, 타락이라는 가면을 씌워준 것은 잇따른 재벌계의 비리가 보도되면서였는데, 그것이 곪아 터진 계기는 2014년 12월의 ‘대한항공 086편 회항 사건’이란 굵직한 사건이었다. “땅콩 회항”으로 더 유명한 이 사건은 가진 자의 횡포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갑과 을’이라는 문제에 불을 지폈고, 대중이 적극적으로 분노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대중문화는 대중의 욕망을 반영한다. 그래서 대중문화엔 그 시대 대중이 느끼는 공통된 정서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땅콩 회항’ 등 재벌의 만행을 목격한 대중은, 그들에 대한 반감이 커졌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빠르게 이해한 분야는 영화 산업이었다. 영화계는 트렌드(?)에 맞춰 대중의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영화를 생산한다. 그렇게 등장한 영화들이 ‘반재벌’ 영화였고, 작년부터 이 장르는 관객에게 꽤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런 영화에서 재벌은 ‘비인간적, 타락한, 욕심 많은, 폭력적인’ 등의 선명한 성격으로 등장했고, 덕분에 이때부터 영화관은 분노가 끓고, 표출되는 용광로가 되었다.
<베테랑>은 이런 부류의 영화 중 정점에 있었고, 천 삼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관객의 분노와 그것이 향한 지점, 그리고 대중이 바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극 중 조태오(유아인)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소시오패스)를 보이는 캐릭터로, 자신의 성격을 긁는 것은 모조리 쓸어버린다. 자신의 기분을 위해,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이러한 캐릭터는 이기적이고, 자본에 집착하는 재벌을 상징했다. 그리고 극은 이 인물의 패배로 끝나며, 관객의 울분을 해소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베테랑> 이후에도 재벌의 부패는 지속해서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재벌을 넘어 정치권, 상류층과 결탁한 모습으로 그 모습은 더 거대하고, 사악함을 보이기까지 한다. <성난 변호사>, <내부자들>, <검사외전>, <아수라> 그리고 곧 개봉할 <마스터>와 <더 킹>까지 다양한 범죄에서 그들의 모습은 목격할 수 있다. 특히, <내부자들>은 2016년에 일어날 일들을 예측한 예언서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어 놀라움을 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한 재벌이 주목받았다. (ex: <리멤버: 아들의 전쟁>의 남궁민) 많은 대중이 재벌의 타락을 알고 인정하고 있음을, 그리고 재벌의 처벌을 기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재벌 악인 캐릭터가 연달아 재생산되면서 어딘가 이상한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현실의 재벌과 영화의 재벌이 완전히 다른 대상으로 분리되는 것 같다. 천만이 넘는 관객이 <베테랑>에 열광했지만, 현실의 기업 부조리, 문제들에 쓴소리하는 사람의 수엔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영화의 관람 전후로 관객의 행동엔 변화가 없다. 당연히 현실도 영화 상영 이전과 이후 큰 변화가 있기 힘들었다.
영화가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으나, 영화가 다루는 소재와 주제에 따라 영화의 역할은 확장되기도 한다. <도가니>는 영화관 밖으로 문제를 끌어내어 ‘도가니법’으로 이어진 전례가 있었고, 삼성 반도체 공장의 문제를 재점화했던 <또 하나의 약속>도 있었다.
이에 비해, 근래 영화를 통해 재벌의 악행을 목격한 관객이 현실 속 그들의 비리와 갑과 을 문제엔 너무도 무관심해 보인다. 앞서 언급했던 영화가 정확한 타깃을 설정했던 것과 달리, 근래의 반재벌 영화가 정확한 목표를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관객은 재벌의 악행을 알고 분노했지만,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잊는 듯하다. 영화관은 그렇게 분노의 배출구의 역할만 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는 세 가지 심리의 작동으로 ‘예측’된다. 하나는 관객이 영화 속 재벌을 정형화된 악으로, 상징화된 악으로만 생각해, 영화의 재벌과 현실의 재벌이 연결고리를 잃었다는 점이다. 재벌 악인이 계속 재생산되면서, 관객은 그 캐릭터를 보며 ‘땅콩 회항’ 등의 현실을 환기하지 못하고, 그저 영화에 있어야 할 나쁜 악인 정도로만 대상화해버리는 것이다. 이때 관객은 이러한 캐릭터를 현실에는 없는, 이야기의 인물로만 받아들인다.
다음으로, 관객이 이러한 재벌의 악행에 면역되었거나 기업의 비리·타락이 너무도 보편적인 일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제 ‘땅콩 회항’ 같은 일은 대중에게 ‘별일 아닌 것처럼’ 일반적인 일이 되었고, 큰 충격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올해 삼성 이건희 회장의 동영상 문제는 잠깐의 충격을 주었지만,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다. 그렇게 금방 옛일이 되어 버린다. 물론, 그보다 더 엄청난 사건이 청와대에서 기다리고 있기는 했지만, 대중이 이 정도 재벌의 타락에 큰 동요를 하지 않을 정도로 무감각해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끝으로 마지막 ‘예측’은 특이한 가정이며, 영화적으로 생각해볼 지점이 있는 가정이기도 하다. 가정을 세우기 전에 관객이 반재벌 영화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의 의미에 다르게 접근해 봐야 했다. 이 카타르시스는 이야기가 주는 순간의 즐거움에 불과한 것일까. 이런 생각은 어떨까. 관객이 분노의 표출과 해소를 통해 즐거움뿐만이 아니라 어떤 면죄부를 얻고 있다면?
관객은 영화를 봄으로써 재벌을 향한 비판에 강하게 참여했다고 믿고, 자부할 수도 있다. 더불어 관객은 관람이라는 행위로 돈을 내기까지 한다. 이런 행위를 적극적 의사의 표현으로 믿는다면, 관객은 타락한 재벌에 저항했다는 위로와 면죄부를 영화관에서 얻고 갈 수도 있다. 시청자가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회와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는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기엔 미약하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독점으로 문제가 되는, 거대 극장과 배급사라는 또 다른 재벌의 배를 불리는데, 관람비가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말 많은 영화에서 ‘현실에서 있을 법한’ 재벌의 문제를 목격하지만, 이것이 영화관 밖인 현실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며, 한 편으로는 무서운 일이다. 재벌이 흥행을 위해 재벌 자신을 다루는 영화를 아무 거리낌 없이 만들 수 있다는 ‘가정’까지 하면(다시 말하지만, 가정이다), 이는 더 큰 공포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들의 지갑을 위해, 자신들의 어두운 가면마저도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일지도 모른다) 반재벌 영화는 현재 ‘유희’ 혹은 ‘자기 위로’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한 편,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영화의 역할이 단순한 유희에 한정되는 것은 슬픈 일이기도 하다. 영화는 유희를 넘어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주고, 또 받을 수 있는 놀라운 매체다. 올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어땠는가. 사회 시스템이 성실한 소시민에게 어떤 폭력을 가할 수 있는지를 묵묵히 보여주는 이 영화는, 감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파괴적이었다. 이렇게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화가 무엇을 말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우리도 물어야 한다. ‘우리는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래도 올 연말엔 가능성을 본 ‘뜨거운’ 순간이 있어 위안을 받기도 한다. 2016년 병신년은 국가적 수치로 기록될 해이지만, 수없이 많은 촛불이 현실을 끓게 한 역사적인 해이기도 하다. 올 연말은 대중이 현실에 참여해 변화를 끌어낸 소중한 순간을 목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는 우리 시민사회의 대중도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주체임을 보여준 위대한 장면이었다. 한 사람의 영화 관객으로서 이 불꽃에 들뜨게 된다. 다가올 영화가 현실을 변화시키는 행동을 끌어낼 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다.
대중이 움직일 수 있음을, 무서운 힘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승리할 수 있음을 촛불은 증명했다. 앞으로 더 많은 행동이 일어날 계기를 만들어준 시발점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의 움직임에 ‘영화’가 큰 역할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봤다. 덕분에 더 흥미로운 생각을 한다. <베테랑>의 천만 관객이 천만 개의 촛불이 되어, 현실의 재벌 문제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순간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