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로 재구성되는 현실
테러를 프레임 안에 담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화면을 통해 중계하죠. 그런데 <더 테러 라이브>(이하 더 테러) 의 마포대교 폭발 사건을 중계하는 윤영화(하정우)와 차 국장(이경영)은 이 테러를 특별한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그들에게 이 심각한 사건은 버라이어티 쇼입니다. 폭파, 죽음 직전의 공포, 그리고 베일에 싸인 테러리스트는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를 TV 앞에 모이게 할 수 있는 흥미로운 도구들이었죠.
이때 TV가 강조하는 ‘라이브’는 스포츠 생중계를 연상하게 하고, 그들이 쫓는 테러리스트는 영화 <배트맨>의 ‘조커’ 같은 악당을 떠올리게 합니다. 즉, 이 예측 불가능성이 테러를 한 편의 생생한 드라마로 변화시킨 거죠. 현실을 모방하여 탄생하는 기존의 드라마와는 달리, 현실 그 자체가 드라마가 되는 이 과정은 낯선 경험입니다.
과거 그리스 비극은 이야기를 통해 연민과 공포의 감정을 일으켜 감정적 쾌감을 추구했었습니다. 그런데 윤영화는 테러라는 현실을 통해서 감정적 쾌감을 만들려고 하죠. 예측 불가능한 테러리스트 덕분에 이 결말을 알 수 없는, 라이브를 향한 시청자의 호기심이 점점 커질 것이로 생각한 것입니다. 더불어 카메라에 피해자를 담으면 연민과 공포의 감정까지 유발할 수 있으리라 계산한 거죠. 윤영화의 계획대로라면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사건을 보는, 두 개의 눈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현장의 피해자와 시청자 사이에는 간격이 생겼죠. <더 테러>는 현실과 드라마의(혹은 쇼) 간격에 대한 영화였습니다.
[마포대교: 마포구와 영등포를 잇는 대교] 영등포에는 국회를 비롯한 정부기관과 방송국 등의 국가 중요 시설이 있습니다. 이곳을 이어주는 다리가 폭파되었다는 것은 테러이며 동시에 다리가 이어주는 무엇인가와의 단절을 의미할 수 있죠. 박노규라 밝힌 테러범은 세계 정상회담 때, 희생된 노동자의 일을 계기로 범죄를 계획했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국가는 부흥이라는 목표에 눈이 멀어 소시민을 이용했고 이후엔 무시했었죠. 마포대교를 건설할 때보다 세상은 좋아졌는데, 자신의 삶은 그대로라는 노동자의 절규는 국가가 무엇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물음을 던집니다. 여기에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 힘없는 노동자의 모습이 더해져, 마포대교의 절단은 국가와 국민의 단절을 연상하게 하죠.
하지만 영화가 더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방송 시스템입니다. 여의도의 방송국을 거치면서 타인의 고통과 공포라는 현실은 드라마가 되었죠. 어떻게 타인의 공포가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 혹은 자본의 도구로써 이용될 수 있을까요. 이는 매체 생산자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시청자는 카메라 뒤의 세상을 못 봅니다. 아니,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이 와중에 차 국장은 렌즈 뒤에서 시청자가 환호할 만한,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습니다. 그는 70%의 시청률을 달성하고 싶은 연출자였습니다. 이 과정 덕분에 카메라를 경계로 생산자와 시청자는 서로 다른 것을 느끼게 되죠. 마포대교의 폭파는 여의도와 세상의 단절이며, 동시에 언론의 중심지 방송국과 시청자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윤영화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큰 그림을 그리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을 높은 시청률을 보장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더 큰 그림 속에서, 그는 차 국장의 꼭두각시에 불과했습니다. 윤영화는 시청률을 보장하는 흥행카드였지만, 영화의 후반부에는 차 국장의 계획에 의해 검찰의 타겟으로 설정되는 운명을 맞이하죠. 그는 시청률을 위해 이용당했고, 국가에 쏠린 따가운 시선을 대신 받아내야 하는 정치적 존재로서 소모될 뿐이었습니다. 결국엔 윤영화조차 차 국장이 만든 이미지였고, 아무런 힘도 없는 존재였던 거네요.
여기에서 무서운 의심을 하나 던져볼 수 있습니다. 윤영화가 방송에서 쌓은 명성은 그에게 어떤 의미이며, 누가 만든 것인가. 그가 이룬 성공이라는 업적의 결과물일까요. 분명 그의 명성은 프레임 속의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빛나는 이미지마저도 연출자인 차 국장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도구였음이 드러나죠. 이 테러로 누가 득을 보게될까요. 차 국장만이 카메라 뒤에서 원하던 시청률, 성과를 얻었습니다.
자신의 이미지를 모두 소모하고 방송국이 폭파된 후에야 윤영화는 자신의 위치를 깨닫습니다. 자신은 차 국장의 그림 속에 있는 부품에 지나지 않았죠. 그가 쌓아온 명성은 결국, 카메라 뒤의 세상(차 국장)이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입혀준 옷이었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그는 카메라 없이는 무기력한 자신의 존재와 대면하게 되죠. 결국, 윤영화의 이미지를 생산해주던 방송국의 붕괴는 윤영화, 그 자신의 붕괴입니다. 무너지는 방송국의 건물 속에서야 그는 깨달았겠네요. 자신이 방송이라는 거대한 구조를 넘을 수 없음을. 그는 체념 어린 눈빛으로 카메라 밖의 ‘진짜’ 세상을 바라보며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