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옥>은 있고, <차이나타운>에는 없는 것

영읽남의 벌책부록 - 미옥


지난주 개봉한 영화, <미옥>을 향한 비판과 비난이 뜨겁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선균, 그리고 김혜수가 출연한 영화이기에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했었고, 예고편을 보고 꽤 괜찮은 스타일을 만날 것 같아 설렜습니다. 뒤늦게 <미옥>을 관람했고, 이 영화가 관객에게 왜 외면을 받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미옥>은 김혜수의 느와르라는 점에서, 2014년 개봉한 <차이나타운>을 떠올리게 합니다. <차이나타운>은 남성이 주인공이던 느와르의 틀을 깼던 영화입니다. 여성이 느와르의 중심에 있을 때, 어떤 이야기가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줬죠. 그리고 성 역할을 뒤집으면서, 많은 메시지를 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김혜수의 느와르 <미옥>에 거는 기대도 컸죠.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본 <미옥>은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이 영화를 향한 비판으로는 ‘영화의 내용이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다.’, ‘이야기의 전개가 진부하다.’, ‘몰입할 캐릭터가 없다.’, ‘여성이 모성애에 갇혀, 답답한 모습을 보인다.’ 등이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적나라한 평은 관람 직후 관객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는데요. ‘내 돈 주고 보기에 아깝다’, ‘김혜수를 가지고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 등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간단하게 하나씩 집어 보겠습니다. <미옥>은 도입부부터 매우 선정적이고 폭력적입니다. 단순히 성적인 장면이 들어갔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 영화의 야한 장면은 영화 자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저 여성의 몸을 전시하는 데 그치죠. 이 첫 장면의 적나라한 몇 부분을 들어내도 <미옥>의 전개와 분위기엔 아무런 영향이 없습니다.


한 예로, 영화 <내부자들>도 노출 장면이 화제가 되었는데, 적어도 그 장면엔 상류층의 타락과 주요 안타고니스트들의 추함을 보여준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옥>과 비교해보면 절제를 한 편이었죠. 그리고 <미옥>은 여성을 향한 폭력도 지나쳤습니다. 굳이, 저항할 의지가 없는 여성을 때리는 장면이 <미옥>엔 많이 있죠. 충분히 관객을 불편하게 할 여지가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도 갈수록 진부해집니다. 조직 내의 갈등을 보여주는 도입부까지는 그런대로 힘이 있지만, 이후엔 캐릭터들이 정과 사랑에 호소하며 갈등을 쉽게 풀어버립니다. 조직원의 배신과 복수, 그리고 이를 쫓는 공권력은 느와르에서 익숙한 구도이며, <미옥>은 필요한 것을 다 갖추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모성’이었죠. 모든 이유를 ‘모성’으로 풀어내고, 이 가치에 끌려다니는 김혜수는 덩달아 매력을 잃어버립니다.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는 이선균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관객이 이선균에게 이입하기도 쉽지 않은데요. 영화가 택한 중심 시점은 김혜수이며, 이선균은 안타까운 가해자, 슬픈 악인 정도의 역할을 맡았죠. 그리고 이선균도 영화의 결말에서 어느 정도 예상 가능 하고, 허탈한 선택을 하며 관객에게 허무함을 줍니다. 영화엔 관객이 이입할만한 캐릭터와 감정이 잘 보이지 않네요.


이렇게 몰입할 캐릭터가 없다는 건, 영화가 준비한 액션에도 타격을 줍니다. 이런 장르에서 액션은 방향성이 확실할수록 좋습니다. 관객이 인물에 이입할수록, 그리고 칼과 총의 방향이 정말로 분노를 가질만한 인물을 향할수록, 그 흥미는 배가 됩니다.



<악녀>의 김옥빈은 액션도 화려했지만, 뚜렷한 목표와 복수심이 있어 흥미가 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액션은 관객에게 후련함을 줬죠. <미옥>의 액션은 다른 영화와 비교해 크게 잔인한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관객이 이 영화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피가 튈 때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 될 수 있고, 이는 <미옥>의 캐릭터 설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액션은 겉만 멋있고, 속은 비어있는 느낌이죠.


이 모든 것들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모성’의 표현입니다. 조직의 2인자로 강렬한 모습을 뿜어내는 <미옥>의 김혜수는 정작 모성이라는 감정에 묶여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입니다. 모성은 나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여성을 통제하고, 가두는 모성의 작동방식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보스를 단번에 나약하게 만들어버린 모성이란 설정은 너무도 고전적이고 답답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차이나타운>의 김혜수와 <미옥>의 김혜수를 비교하면, 이 글은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차이나타운>의 김혜수는 여성 캐릭터의 상징과도 같았던 아름다움, 관능적인 모습을 모두 지웠습니다. 여성 김혜수가 아닌, 그냥 김혜수가 서 있었고, 조직의 보스로서 묵직한 카리스마를 보여줬죠. 하지만 <미옥>의 김혜수는 아름답고, 관능적인 매력을 뽐내는 캐릭터였으며, 모성에 묶여 제 역할을 잘하지 못한 조직원이었습니다. 과거로부터 요구되던 여성스러움을 벗지 못한 캐릭터였죠. 영화에서 현정이 ‘미옥’이라는 이름을 버렸을 때, 여성에게 요구되던 고전적 여성성도 벗어버렸다면, <미옥>은 훨씬 좋은 느와르가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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