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읽남의 벌책부록 -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인형을 거꾸로 매달고 놀림을 받는 소년, 그의 이름은 유우지입니다. 아이들의 놀림에도 멈추지 않는 이 행동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유우지는 인형을 거꾸로 매달면 비가 올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가 오면 누군가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죠.
물의 계절에 돌아올 거라 약속한 그녀, 그녀의 이름은 미오입니다. 귀여운 아이 유우지의 엄마이며, 어딘가 똑 부러지지 못한 타쿠미의 아내죠. 미오는 1년 전, 유우지를 아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떠나기 전 유우지에게 책 한 권을 남기는데, 거기엔 미오가 ‘물의 계절’에 돌아온다고 적혀 있었죠. 여기서 ‘물의 계절’이란 장마 기간을 뜻하는 시적인 의미입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을까요. 믿기 힘든 일이지만, 타쿠미는 미오가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라며, 그녀가 돌아올 것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기다리던 물의 계절이 시작되고, 타쿠미와 유우지는 약속의 장소로 갑니다. 두 사람은 미오를 만날 수 있을까요?
일본 영화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꼭 듣게 되는 영화 중 하나가 오늘 이야기할 <지금 만나러 갑니다>였습니다. 이 영화는 일본 멜로 영화 특유의 서정성과 한여름의 푸른 이미지, 그리고 우중충한 날씨가 예고하는 비극적 느낌과 빗소리가 만드는 쓸쓸함이 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줍니다. 그리고 이 비밀스러운 판타지 영화는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로맨틱함까지 담고 있죠. 이제 영화에 관해 스포일러가 있는 이야기를 할 텐데,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미리 보신 뒤 읽으실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약속의 장소에서 타쿠미아 유우지는 정말로 미오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미오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죠. 두 사람은 그런 미오를 집으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한 가족이라는 걸 알려주죠. 그때부터 세 사람은 같이 살며 예전의 행복한 시간을 다시 찾으려 합니다. 그런데 미오는 어떻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요. 이 질문은 조금 뒤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돌아온 생활에 적응하던 미오는 타쿠미와 자신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묻습니다. 둘은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타쿠미는 미오를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다시 만났다고 하죠. 그러다 병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던 타쿠미에게 미오가 찾아오며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좀 더 집중해서 봐야하는 건, 두 장면 정도가 있는데요. 하나는 미오가 배 속의 아이를 남자아이라고 확신하는 장면입니다. 그녀는 어떻게 유우지를 남자아이라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 다음 장면은 병을 앓던 타쿠미가 무리해서 미오를 찾아가던 장면입니다. 비 오던 날의 이 사건은 많은 것의 복선이 되는데, 이 두 가지에 관해서도 조금 뒤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타쿠미와 유우지는 예감하고 있습니다. 미오가 곧 떠날 것이란 걸 말이죠. 미오가 죽기 전 남겼던 책 속엔, 물의 계절이 끝나면, 그녀가 다시 돌아갈 것이라 적혀있습니다. 유우지는 더 많은 인형을 거꾸로 매달며 비가 계속 오기를 바라죠.
미오 역시, 자신의 일기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떠날 준비를 하죠. 미오는 유우지에게 음식을 만들고, 빨래하는 방법을 가르치는데, 이 장면에선 <8월의 크리스마스>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영화엔 자신이 죽는다는 걸 아는 한석규가 아버지에게 리모컨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슬픈 장면이 있습니다. 남겨질 가족을 걱정하는 이런 장면은 말로 전하기 힘든 감정을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그 날, 장마가 끝나는 날이 오고 유우지와 타쿠미는 미오를 한 번 더 보기 위해 집으로 뛰어갑니다. 몸이 약한 타쿠미는 간절한 마음을 안고 미친 듯 달려 다행히 미오를 한 번 더 볼 수 있었죠. 그리고 다시 이별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영화 내내 궁금했던 점들이 드러나죠. 타쿠미는 미오가 남긴 일기를 읽고 그가 여태 모르던 진실을 알게 됩니다.
우선, 타쿠미는 혼자 짝사랑했던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미오도 그를 짝사랑하고 있었죠. 그리고 비가 오던 그 날, 미오도 타쿠미를 따라갔고 거기서 사고를 당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미오는 그때 미래를 봤다고 말하죠. 그래서 미오는 유우지가 태어나고, 자신이 죽은 뒤 다시 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던 겁니다. 비는 타쿠미와 미오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그리고 비가 오던 날 타쿠미가 아픈 몸을 이끌고 그녀를 보기 위해 갔었기에, 이번엔 미오가 비가 오는 날 돌아온 거라 볼 수도 있겠네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서로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 하나뿐인 사랑에 관해 말하는 영화입니다. 미오가 죽을 것임을 알면서도 타쿠미를 만나러 간다는 건 ‘사랑’이라는 말 이외에는 설명할 수 없죠. 그리고 영화는 이 사랑을 운명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한국에서 손예진, 소지섭 주연의 영화로 제작 중입니다. 촬영이 끝났다는 기사도 최근에 확인할 수 있었죠. <연애소설>,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의 작품에 출연한 손예진의 멜로 복귀는 정말 오랜만의 일이라 더욱 기대되는 영화입니다. 정통 멜로는 극장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일본의 명작이 한국 멜로의 부흥을 다시 가져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