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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기#032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1)

오리지널, 그 다른 뉘앙스에 대하여

‘디렉터스 컷’이라는 용어가 있다. ‘감독판’이라고도 하는 이 단어는 다양한 분야, 작품(감독이라는 직책이 있는 수많은)에서 사용된다. 영화에서는 상영 시간, 심의 등의 요소가 발목을 잡아 감독의 표현을 제한하고는 한다. 이때, 감독이 미처 다 말하지 못했던 부분을 재편집해 표현한 버전을 ‘디렉터스 컷’이라 부른다. 영화의 작가를 감독이라 한다면, 이 감독판을 그의 진짜 의도가 온전히 담긴 영화로 봐야 할 것이다.


늘어난 50분, 혹은 줄어든 40분의 뉘앙스

대개는, 아니 항상 영화의 디렉터스 컷은 DVD 등의 2차 생산물에 선물처럼 들어있었다. 그래서 이번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의 개봉은 특이하다. DVD가 제작되기 전, 그리고 아직 본판의 상영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감독판을 연달아 상영하는 것은 <내부자들>이 최초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임에도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음을 자축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감독이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던 것일까.


우민호 감독의 최초 편집본은 3시간 40분이었다고 한다. 개봉된 <내부자들>은 2시간 10분이었으니 1시간 30분이 잘렸다는 건데, 이는 웬만한 영화 한 편 분량이다. 상영 시간 확보를 덕분에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은 본 편의 거친 호흡을 보완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전개의 속도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위험 요소도 안았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영화를 더 뜯어볼 시간적 여유를 얻었다는 점, 그리고 본 편과 ‘오리지널’의 차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관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늘어난 50분은 이 영화를 전혀 다른 뉘앙스로 바꿔놓았다. 이 글은 뉘앙스의 차이에 대해 잡담할 것이다.


영화 생산자들의 이야기

1) 자신의 영화를 개봉하려는 욕망

<내부자들>은 노골적으로 ‘영화’를 자주 언급한다. 안상구(이병헌), 이강희(백윤식)는 자신들이 계획하는 작업을 영화에 비유한다. 안상구가 비장하게 ‘너 나랑 영화 한 편 하자’라는 대사를 말하는 것을 기억하는가. 그는 극본을 짜고, 배우를 캐스팅하고, 억대의 돈을 투자하며 개봉을 고대하는 영화 제작자(놀랍게도 1인 제작자다)였다. 이번 감독판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안상구의 영화에 대한 내레이션인데, 그는 로만 폴만스키의 <차이나타운>을 언급한다. 몰디브와 모히또를 구분 못 함에도 고전 영화에 대한 지식, 혹은 애정은 유독 돌출되어 있지 않은가.


안상구가 영화 제작자였다면, 이강희는 원고지에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다. 그가 쓰는 글은 현실이 되고, 그의 원고지는 전지전능한 예언서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강희의 회사 조국 일보는 이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는 제작사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영화의 투자자는 조국 일보의 광고주, 미래 자동차의 오 회장(김홍파)이며, 이 작품은 정치인 장필우(이경영)가 주연을 맡았다. 오 회장에게 ‘배우를 바꿔야 할 것 같다’며 건의하는 이강희의 대사에서 그가 자신의 글, 더 나아가 현실을 영화로 바라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안상구, 이강희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영화를 개봉하려 했다. 그리고 이들의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현실이 된다. 영화관이 아닌 현실에서 개봉되는 영화. 안상구는 자신이 직접 출연해, 교도소에 가면서까지 자신의 영화를 개봉하려 했다. 그리고 이강희는 자신의 사무실에 있는 큰 창 안에 청와대를 배치하고, 거기에 자신의 시나리오까지 첨가해 현실로 만들고 싶어 했다. 정리하자면, <내부자들>은 자신의 영화를 개봉시키고자 했던 욕망을 가진 두 남자의 이야기로 볼 수 있겠다.


그래서였을까. 두 사람은 닮은꼴이다. (거울처럼 마주 보는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도 <내부자들>의 재미있는 관람 방법이 될 것 같다) 두 사람은 순서만 달랐을 뿐, 결국 같은 처지가 되었다. 이강희를 믿었던 안상구는 그에게 뒤통수(이 맥락에서 조 상무가 안상구의 뒤통수를 때리는 장면은 꽤 재미있게 읽힌다)를 맞고 오른팔이 잘린다. 그리고 이강희의 영화가 개봉되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이후 칼을 갈았던 안상구는 우장훈을 이용해 이강희를 속이고, 오른팔을 잘랐다. 그리고 안상구의 영화가 개봉된다. 두 남자는 서로의 영화를, 오른팔이 잘린 채, 의수에 담배를 꽂고서 바라보는 영화광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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