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캔디’같은 사랑
첫눈, 크리스마스, 캐럴, 산타, 코트, 패딩점퍼 등등 이 계절을 연상시키는 것들은 많다. 그 많은 것 중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최근 충격적인 모습으로 대중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킨 <나홀로 집에>의 케빈? ‘크리스마스 시즌=판타지’라는 공식을 정립한 <해리 포터> 혹은 <반지의 제왕>부터 이어진 톨킨의 작품들? 이들과 함께 겨울이면 우리 곁을 찾아오는 제작사가 있다. 워킹 타이틀.
워킹 타이틀은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브리짓 존스의 일기>,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 등의 영화는 어떤가. 이들에겐 로맨틱 코미디, 그리고 휴 그랜트라는 공통분모 외에도 워킹 타이틀의 작품이라는 인장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워킹타이틀은 12년 <레미제라블>, 13년 <어바웃 타임>, 14년 <사랑에 대한 모든 것>까지 대기의 온도가 내려가고, 누군가의 체온이 간절한 이 계절에 한국에서 꾸준히 영화를 개봉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 시간을 뛰어넘는 남자, 그리고 천재 우주학자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룸에도 이들이 워킹타이틀의 손을 타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어떤 시공간, 관계 속에서도 워킹 타이틀은 ‘사랑’이라는 것이 들어갈 틈을 찾고, 그 틈을 파고들어 관객에게 감동을 던져줬다. 올해는 어떨까. 이번에 개봉한 <레전드>는 영국의 전설적인 갱 크레이 형제가 등장한다. 따뜻함을 초월해 뜨거운 피를 뿜을 갱스터의 세계에서 워킹 타이틀은 어떤 사랑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레전드>의 쌍둥이 형제는 외모 외에 거의 모든 것이 반대 항을 이룬다. 형 레지는 이성적이며, 안정적인 사업을 추진해 조직을 유지하려 한다. 반대로 로니는 감정적이며, 가만히 있으면 몸이 근질거리는 행동파다. 더불어 레지는 지적이고, 로니는 나사가 반쯤 풀린 느낌을 준다. 그래서 레지가 등장하면 묵직한 긴장감이, 로니가 등장하면 언제 터질지 모를 묘한 불안감이 생기고는 한다. 끝으로 차가운 형과 뜨거운 동생은 성적 취향마저도 다르다.
하나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속성을 반반 나눠서 소유한 것 같은 형제. 이 형제가 실제로는 한 인물이었다면 어떨까. ‘널 죽일 수는 없으니까’라는 레지의 절규, 그리고 ‘형제의 싸움에 참견 마’라는 대사를 듣고 있으면, 이들의 대립은 한 개인 내면에서 일어나는 싸움과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정말 하나의 인물이었다면 데이비드 핀처의 <파이트 클럽>처럼 되지 않았을까.
워킹 타이틀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자 주인공은 무엇인가 한계가 있거나 부족하고, 때로는 지질함이 있었다. 에디 레디메인이 연기한 스티븐 호킹은 육체의 장애가 있었고, 이는 한 남자의 내적 상처로 이어졌다. 휴 그랜트가 연기했던 남자는 사랑에 실패하고,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소심남이었으며, 돔논 글리슨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음에도 수 없이 사랑에 실패했던 남자다.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고백을 위해 쓴다는 것도 귀엽다. 돈과 명예를 위해 쓸 방법도 있었을 텐데)
<레전드>를 워킹 타이틀의 계보로 이해한다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을 로니 크레이로 봐도 괜찮을 것 같다. 로니는 살짝 덜떨어진, 그래서 독특한 남자이지 않았던가. 1인 2역을 소화한 톰 하디도 로니 크레이라는 역을 연기할 때가 더 흥미롭다고 밝힌 걸 보면, 로니는 영화화되면서 매력을 뿜어내는 지점이 있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영화를 로니 크레이 중심으로 읽으면 어떨까. <레전드>는 프랜시스(에밀리 브라우닝)에게 빼앗겼던 자신의 형을 되찾는 로니의 로맨스 영화로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이렇게 읽는다면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점이 재미있게 읽힐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레전드>를 집 나간 형(가장)이 가정으로 돌아오는 귀환 서사시로 봐도 흥미로울 것 같다.
앞서 로니 크레이를 주연으로 영화를 읽었지만, 관객은 안다. 이 영화가 누구의 시점에서 진행된 영화였는지. <레전드>를 시작하고 끝을 맺는 것은 프랜시스의 독백이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 이후, 두 형제는 철창으로, 영화의 스크린도 서둘러 어둠 속으로 퇴장한다. (프랜시스의 죽음과 동시에 레지의 인생에서 빛이 사라졌고, 그의 전설적인 이야기도 내리막길에 접어든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레지 크레이 혹은 프랜시스가 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프랜시스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하며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레지 크레이와 프랜시스의 첫 만남부터 줄곧 등장하는 것이 있다. 달콤하면서도 신맛이 강한 레몬 캔디. 프랜시스가 먹던 캔디를 레지가 입에 넣는 장면에서 관객은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우선 레지가 프랜시스에게 관심이 있고, 로맨틱한 관계를 원한다는 것을 사탕 키스를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레몬캔디의 속성은 그다음 대사에 등장한다.
프랜시스는 캔디를 씹어 먹는 레지에게 그렇게 먹으면 안 된다며, 자신은 녹여 먹는다고 말한다. 이에 레지는 어떻게 먹으나 똑같다며 가볍게 받아친다. 철학적인 듯 보이는 그의 말이 맞다. 어떻게 먹으나 캔디의 맛은 똑같을 테니까. 이 둘의 차이는 언제, 어떻게 레몬의 쓴맛을 느끼게 되냐는 것이다. 레지와 프랜시스는 이 차이만큼 달랐으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결말도 결국엔 쓴맛이었다.
레몬 캔디를 깨부수면 단맛과 쓴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레지는 프랜시스에게서 사랑의 단맛을 느끼면서, 갱스터 세계의 쓴맛을 동시에 맛보는 인물이다. 그는 단맛과 쓴맛을 분리할 수 없는 세계에서 살고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캔디는 부셔 먹으면 더 빨리 없어진다. 캔디를 빨리 소모하듯 그들의 사랑을 먼저 깨버린 인물, 즉 항상 문제를 먼저 만드는 인물도 레지였다.
레몬 캔디를 녹여 먹으면 단맛과 쓴맛을 따로 느끼게 된다. 프랜시스는 레몬 캔디의 단맛과 쓴맛을 분리해야 했듯, 갱스터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를 결코 합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캔디는 녹여 먹으면 아주 천천히 없어진다. 레지가 감옥에 가고, 많은 실망을 안겨줌에도 그녀의 사랑은 없어지지 않았고, 최대한 유지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결국, 레몬 캔디가 안겨주는 것이 쓴맛이듯 그녀의 사랑도 아프게 끝난다.
레지가 말했든 레몬캔디는 어떻게 먹든 결국 똑같다. 그들이 어떻게 캔디를 먹든 쓴맛이라는 본질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이 사랑하는 방법이 달랐음에도 마지막은 이별로 귀결된다. 영화엔 레지가 프랜시스에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몇 번 있다. 하지만 그는 변하지 못했다. 쉽게 변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마는 그에겐 혈육의 문제가 간섭한다. 그가 동생을 죽이지 못하는 것처럼, 그는 자기의 세상에 속한 부분 하나를 완전히 불태워버릴 수 없었다. 로니 크레이가 그의 동생이었다는 것이 비극이다. 그가 안고 가야만 하는 속성 로니 크레이, 그것이 사랑의 장애물이었다. 혹은 프랜시스가 레몬 캔디를 깨물어 먹지 못한다는 것이 비극이다. 어쨌든 본질은 같다. <레전드>는 레몬 캔디의 쓴맛으로 기억될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