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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기#030 사우스포

그가 왼손을 선택한 이유

‘사우스포’란 야구, 권투 등에서 왼손잡이를 뜻하는 말입니다.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보다 드물어서 여러 가지로 유리한 점이 많다고 하죠. 야구에서 왼손의 강속구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권투에서도 왼손잡이는 희귀해서 오른손잡이 선수가 꽤 고전한다고 합니다. 평소 싸워오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낯선 방법으로 싸워야 한다고 하죠. 그리고 상대의 펀치가 날아오는 거리도 평소와는 다를 것이기에 더 까다롭겠죠. <사우스포>는 권투 소재의 영화로 주인공은 오른손으로 무패기록을 이어오던 챔피언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결투에서 그는 사우스포로 경기에 임하죠. 그는 왜 왼손을 선택했을까요.


한 번의 패배와 두 번의 승리

<사우스포>엔 빌리호프(제이크 질렌할)가 치르는 세 번의 권투경기가 있습니다. 10라운드에 화끈한 KO로 승리하는 경기, 시작부터 무진장 두들겨 맞다가 첫 패의 수모를 당하는 경기, 그리고 12라운드 끝에 판정승을 거두는 경기. 같은 사각의 링이지만 세 경기를 치른 빌리는 모두 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한 번도 진 적 없는 오만한 남자,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 그리고 지켜야 할 것을 위해 인내하는 도전자가 저마다의 경기장에 서 있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 경기의 결과는 같지만 서로 다른 남자가 서 있는 것. 이 차이가 <사우스포>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었고, 빌리가 선택한 방법이 성장과 성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승리했다는 것 외에도 한 번의 결정타로 경기가 끝난다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 한 방이 훅 들어오는 과정엔 큰 차이가 있었죠. 이번 글에서는 패배를 기점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승리의 차이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첫 번째 승리: 도발 후 한 방

무패의 사나이 빌리의 경기는 화끈합니다. 가드를 내리고, 상대의 주먹을 굳이 피하려 하지 않죠. 그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지만 그는 오히려 즐거워 보입니다. 광기가 느껴지는 제이크 질렌할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죠. 역시 올해 개봉했던 <에베레스트>에서도 제이크 질렌할은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정상을 향해가는 스캇 피셔를 연기했습니다. 그는 목숨이 소멸해가는 순간을 향해 가면서도 밝고, 유쾌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 역시 광기 어린 모습으로 볼 수 있죠. 최근 들어 제이크 질렌할은 유난히 제 몸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목표를 향해가는 광적인 캐릭터에 끌리나 봅니다. (<나이트 크롤러>에서도)


지킬 것이 전혀 없는, 잃을 것이 전혀 없는 파이터 빌리는 상대의 주먹을 맞으면서 버티다, 엄청난 한 방으로 경기를 끝냅니다. 얼마나은 유효타를 맞았든, 피를 얼마나 흘렸든 큰 한방이 중요했던 거죠. 인생은 한방, 로또의 정신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것도 전략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빌리는 큰 계산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저 자신의 피를 보면서 점점 미쳐가고, 자신의 분노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후에 폭발하는 것처럼 보였죠. 아무튼, 그 결과는 화끈 한 KO. 원초적이고 감정적인 경기 운영이었습니다.


두 번째 승리: 인내 후 한 방

잃을 것 없는 미친개처럼 싸워왔지만, 사실 빌리는 잃을 것이 정말 많았습니다. 자신의 감정 폭발이 불러온 참사 이후에야 그는 자신이 지켜야 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죠. 아내(레이첼 맥아담스)를 잃은 뒤 도미노가 넘어가듯, 그녀와의 추억이 묻어있는 집을 뺏기고, 딸과는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더불어 한 번도 패한 적 없기에 잃어본 적 없는 챔피언 타이틀까지 빼앗기며 완벽히 밑바닥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최후의 경기는 그가 잃었던 것을 되찾는 혹은, 그가 지켜야 했던 것들을 위한 경기가 됩니다.


이 경기에서 그는 철저히 방어하며 틈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전엔 한 방을 노리던 스타일을 벗어나 잽을 이용해 유효타를 쌓아가고, 착실히 점수를 쌓아가는 방법을 선택하죠. 코치 틱 윌스(포레스트 휘태커)는 방어를 하며 자신을 돌보라 말합니다. 그가 훈련장에서 가르쳤던 것도 주먹을 피하는 것이었죠. 역전을 노리는 짜릿한 한 방이 아닌, 12라운드를 모두 견디면서 점수를 획득하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운영을 합니다. 물론, 이 경기에서도 한 방은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한 방은 전에 보여줬던 분노와 광기가 만든 주먹과 다르죠. 마지막 라운드 10여 초를 남기고 빌리는 상대의 실수를 기다렸다가 제대로 한 방을 먹입니다. 먼저 달려들지 않고 인내하며 기회를 기다렸던 거죠.


패배를 경계로 대조되는 빌리

아내의 죽음과 첫 번째 패배를 경계로 빌리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승자라는 것, 그리고 챔피언 타이틀을 가졌다는 것 외에는 거의 모든 것이 변했죠. 오른손 복서는 사우스포(왼손 복서)가 되었고, 방어를 모르던 챔피언은 이제 가드를 최고로 중시하는 운영을 합니다. 그리고 늘 그의 곁을 지키던 아내의 자리는, 딸이 대신하고 있죠. 그의 옆에 있던 친구들의 자리도 틱 윌스가 채워주고 있습니다.


내적으로도 변한 것은 많습니다. 이전에 빌리는 모든 것을 아내에게 의존했죠. 중요한 결정은 아내가 내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죽고, 패배를 경험한 뒤 그는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의 곁에 있을 코치를 직접 찾고, 평소 아내에게만 맡겨왔던 딸에 대한 양육에도 신경을 쓰며 능동적인 인간이 됩니다. 그리고 더 많은 피를 흘리며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던 독불장군은 자신과 자신의 주의를 바라볼 줄 알게 되면서 스타일의 변화를 수용하는 복서로 진화했죠.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인간이 된 것입니다.

<사우스포>는 분명 감동을 주지만,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아쉬움이 남는 영화입니다. 챔피언의 몰락과 재기라는 플롯은 진부한 편이고, 특히 영화의 전반부는 집중하기 힘들었습니다. 인물의 욕망이 드러나지만, 감정과 영혼이 빠져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이 영화의 전반부는 43승 무패의 잘 나가던 주인공이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설명적, 작위적으로 배치된 장면 같았습니다. 후반부에 가서야 관객은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에 빠져들고, 주인공 빌리의 동기와 목적이 분명해 지면서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를 얻을 수 있죠.


그렇다면 대체 왜 영혼 없는 전반부가 이 영화에 필요했을까요. 앞서 두 승리를 비교했듯, 패배를 경계로 거울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빌리를 보여주고, 대조하기 위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외형은 같지만, 속이 다른 이 남자를 대조하기 위한 방법이란 것이죠. (오른손-왼손, 한방-인내, 무방비-가드 등) 물론, 이 선택이 좋았다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목적이 있는, 당위성 있는 선택이었다고 옹호해주고 싶네요.


사우스포와 성장 혹은 장례식

대조의 의미 외에도 ‘사우스포’ 전략은 흥미롭게 바라볼 구석이 있습니다. 경기에서 빌리는 왼쪽 눈이 자주 찢어집니다. 사우스포는 이 왼쪽 눈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이해할 수 있죠. 왼쪽 어깨로 왼쪽 얼굴을 감싸고, 상처를 보호하며 싸우는 것입니다. 이는 찢어진 곳을 더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의도이며, 결국 자신이 인생에서 입은 상처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저항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빌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고 성숙해졌다고 볼 수 있죠.


<사우스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성장영화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스포츠 영화가 성장을 모티브로 하고 있기에 특별한 부분이 아닐 수도 있죠. 그런데도 이 영화가 보여주는 성장이란 주제는 묵직하게 한 방 먹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건 <사우스포>의 캐릭터의 성장을 이끄는 것이 ‘죽음’이라는 매개체였기 때문이죠. 빌리는 아내의 죽음 이후에야 삶을 돌아보고, 지켜야 할 것을 깨닫고, 자신의 몸을 위해 가드를 올리는 능동적인 인간이 됩니다.


더불어 그를 지도하는 틱 윌스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틱 윌스는 체육관에서 아이들을 지도하지만, 프로로 내보낼 생각이 없습니다. 자신이 잃어버린 한쪽 눈에 대한 트라우마가 영향을 주고 있는 듯하죠. 그래서 빌리를 지도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체육관에서 지도하던 소년의 죽음을 맞이하고서 마음을 바꾸죠. 틱 윌스는 그가 할 수도 있었지만, 신경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끝나버린 인생을 목격하고서야 빌리를 돕겠다고 합니다. 빌리의 인생을 구원하기 위한 코치가 된 거죠. 그 역시 소년의 죽음을 매개로 다시 링으로 돌아온, 능동적인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 죽음이라는 매개체 때문에 <사우스포>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사람, 남겨진 자의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죽은 이들과 이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로 볼 수 있는 거죠. 사각의 링은 망자를 떠나보내기 위한 장소가 되고, 권투는 일종의 제의가 됩니다. 빌리가 판정승을 거두고 아내를 향해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내를 찾는 듯했던 그 외침은 오히려 아내를 떠나보내기 위한 의식으로 볼 수도 있죠. 아내가 떠나버린 자리는 딸이 대신할 것이고, 빌리는 그녀를 위해 새로운 인생을 준비해야할 것입니다. 산자는 어떻게든 살아야 할 테니까요.


마지막 질문을 하며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다시 챔피언이 된 빌리는 권투를 계속할까요? 죽은 아내는 그가 링에서 내려오기를 바랐고, 안정을 찾으며 가족과 함께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빌리는 거부했고, 결국 아내를 잃었습니다. 이번엔 어떨까요. 다시 딸을 되찾고, 안식처인 집으로 돌아간 빌리. 다양한 예측이 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은퇴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보여준 첫 번째 승리 당시, 빌리는 10라운드에서 KO승을 거두죠. (레이첼 맥아담스가 에로틱한 대사로 2라운드가 남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대결은 12라운드의 공이 울리고 끝이 납니다. 더는 라운드가 남아있지 않죠. 이제 그에겐 사각의 링이 아닌, 집에서 지켜야 할 것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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