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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기#034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1)

왜 그녀인가?

시작부터 쫄깃함을 주던 영화는 ‘그때’부터 두려워진다. 케이트(에밀리 블런트)가 작전을 종료하고 현장을 정리하던 중, 폭탄이 터지는 바로 그 순간. 이보다 더 깜짝 놀랄 순간이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은 관객에게 강렬하게 말하고 있다. “끝난 줄 알았던 그 순간, 뭔가 터질지 몰라. 그러니 늘 긴장해”


왜 그녀인가?

<시카리오>에서 케이트가 맡은 역할은 무엇일까. 영화의 시작 부분, 미국 국경 내에서 작전이 펼쳐질 때 그녀는 부대의 전면에 나서 작전을 지휘했다. 그리고 자신의 총으로 적을 제압한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땅굴로 들어가는 장면은 어떤가. 그녀는 어느 정도 진압이 완료되면, 뒤에서 따라갈 뿐이다. 이러한 수동적 행위의 조짐은 후아레즈의 도로에서 펼쳐지는 총격전부터 있었다. 그녀는 미국이라는 국경을 빠져나온 뒤부터 주도권을 잃은 것 같다. 작전 전면에 나서지 못했고, 또한 작전의 방향에 동의하지 못했다. 그래서 물어봐야 한다. 왜 맷(조슈 브롤린)과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는 작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케이트를 데려가려 했을까.


케이트를 ‘이상적 명분’이라 표현한 안시환(안시환의 영화비평, 씨네21 1305호) 비평가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알레한드로가 법의 경계 밖에 있는 방법을 추구하지만, 이 방법이 정의를 추구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받기 위해서는 이를 인정해줄 상징적 ‘정의’가 필요했다. 그는 ‘정의’보다 사적 ‘복수’라는 더 강한 동기와 동력이 있고, 이를 위해서는 폭력적인 수단을 마다치 않는다. 물고문을 위해 거대한 생수통을 동원하고, 증언을 듣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게 알레한드로였다.


그가 보여주는 법과의 줄타기는 영화 후반부 부패 경찰과 무장해제된 조직원을 죽이고, 복수 대상의 가족들에게 총구를 겨눌 때 끝난다. 법이 아닌 그 스스로 한 판단과 그의 손으로 직접 행한 처형. 사적 복수를 위한 동기와 수단이 법이라는 과정을 생략하고, 초월해 버린 것이다. 케이트는 ‘정의’의 명분이자 알레한드로의 광기를 잡아줄 안전고리였을 수도 있다. 그녀가 없을 때, 그의 피 튀는 살육이 일어났으니까.


그녀가 가진 속성 – 강인함. 그리고 외톨이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어진다. 그녀는 정의라는 명분으로 선택되기 위해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맷은 그녀를 선택한 이유가 ‘현장 경험이 있고, 이런 일을 할 준비가 되어서’라고 대사로 밝혔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 그 이유는 잘 맞지 않아 보인다. 실상 그녀는 두 남자가 쫓는 인물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더불어 현 사건과 연관된 마약 팀에서 일한 적이 없고, (그녀는 납치 대응 담당이었다) 현장에서는 알레한드로의 방법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맷이 말한 케이트의 경험은 무엇이고 이런 일을 할 준비란 대체 무엇일까.


겉으로 보기에 케이트에게 두드러지는 점은 건조함이다. 영화의 전반부, 작전을 마치고 샤워를 하는 장면을 보자. 죽음의 경계에 섰던 그녀는 물로 먼지를 씻어내려 한다. 그런데 그때 머리에 입었던 상처에서 피가 나고, 얼굴로 흘러내린다. 사선에서 느낀 공포감에 눈물을 흘릴 법도 하지만, 그녀는 눈물 대신 피를 흘리고 있었고, 그 피는 쓰라린 고통과 함께 온몸을 휘 감싼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케이트는 스스로 그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 그녀는 아픔이라는 감상에 젖지 않고서, 묵묵히 상처를 봉합하고 마음을 다잡는, 그런 유형의 인간이었다.


메마르고, 차가운 그녀의 표정에서 테러라는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고 버티는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거기엔 묵묵히 다음 전투를 대비하는 강인한 여인의 모습도 있다. 그녀는 상처에 잠시 아파했지만, 이런 일을 벌인 주범들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잡을 수 있다는 믿음에 자발적으로 맷의 팀에 지원하고, 알레한드로와 합류한다. 이 작전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녀의 의지였다. 그리고 잔혹한 사건 앞에 굳히지 않는 그녀의 분노와 정의를 향한 마음이 그녀가 선택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케이트에게는 더 흥미로운 속성이 있다. 맷이 케이트를 처음 만나 자신의 팀으로 데려가는 장면을 보자. 맷은 케이트를 자신의 팀에 데려가기 전에 몇 가지 묻는데, 그 질문이 조금 뜬금없다. 그는 케이트에게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케이트는 이혼했으며, 아이는 없다고 대답했고, 그렇게 그들의 최종면접은 끝난다. 맷이 그녀를 알레한드로와의 작전에 데려가는 걸 보면 그게 좋은 답이었나 보다. 그리고 이 질문과 답 안에는 이 영화의 주제가 긴밀히 연결되어있다. ‘혼자’인 케이트는 그들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속성이자 조건이다. 이 조건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가야 할 시간이다. 먼저 이 영화가 보여주는 멕시코부터 관찰하겠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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