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기#067 미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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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GO>, 혹은 <미스터,고> 등의 영화 탓일까, <미쓰백>의 제목은 흥미롭지 않았다. 제목보다 눈에 띄는 건, 짙은 화장에 걸쭉한 욕을 날리고, 한 많은 담배 연기를 뿜고 있는 한지민의 이미지였다. ‘한지민의 파격 변신’ 등으로 <미쓰백>은 꽤 큰 주목을 받았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배급사에서 쓸 수 있는 최고의 배우이자, 홍보 그 자체가 그녀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런 이미지보다 생각해봐야할 건, 왜 그런 변신을 시도하면서까지 이 영화에 출연했냐는 거다. (이 글은 그녀의 캐스팅을 무한한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본 ‘편향적인 글’임을 미리 밝힌다)
<미쓰백>은 한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녀가 자신의 이름 대신, 무수히 많은 ‘미스 백’ 속에 숨으려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전과자’라는 표면적 이유가 제시되지만, 이 범죄가 일어나기까지 그녀 홀로 견뎌내야 했던 시간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때, 과거를 덮고 도망가는 그녀에게 ‘지은’(김시아)은 봉인된 시간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그 열쇠를 통해, 과거와 마주하는 백상아(한지민)는 그때 두고 온 응어리를 풀어나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지은은 미쓰백이 “아줌마가 아니라” 말한다. 그리고 그 뒤엔 말이 없다. 그녀가 알고 있던 ‘미쓰백’이란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이 장면은 이제 ‘백상아’가 그렇게 불리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으로 읽힌다. 지은은 그렇게 박제된 과거 때문에 미래마저 불투명했던 그녀의 이름을 되찾아줬다. 이는 지은이 의도했던 일도, 쉬운 일도 아니었을 거다. 그녀도 자신의 상처를 드러냈어야 하니까.
이 영화의 중심엔 ‘아동 폭력’이 있다. 미쓰백이 봉인했던 폭력의 기억은 현재의 폭력 피해자(지은) 앞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 앞에 나약했고 달아나려 했다. 그때 지은이 살려달라 손을 뻗은 것이다. 그리고 미쓰백은 움직인다. 미쓰백은 자신의 기억을 묻어 버리는 선택 대신, 지은에게 그런 기억을 쌓지 않게 해주려 했다.
흥미롭게도 그녀가 지은을 도우려 할수록, 버려둔 자신의 인생에 목표와 동기가 생긴다. 그리고 과거의 상처와 기억도 매듭이 조금씩 풀린다. 백상아는 소녀를 안으면서, 자신도 안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서로의 곁에서 서로를 구원하는 두 존재를 보면, 이 영화를 단순히 모성과 여성성 등의 주제로 한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대신, <미쓰백>을 ‘연대’에 관한 이야기라 보는 입장에 큰 공감을 하게 된다.
아동 폭력의 충격적 장면 속에 <미쓰백>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는 백상아와 지은이 선 채로, 서로를 마주하며 바라보는 풀 샷이다. 수평적, 평면적으로 찍힌 이 장면은 두 사람의 키 차이가 두드러짐에도 ‘대등한 존재 간의 마주함’으로 보인다. 더불어 이는 어른과 아이, 과거와 현재 등이 서로 마주한 느낌을 준다. <미쓰백>은 이 대등한 존재 간의 소통과 연대가 구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줬다.
<미쓰백>은 음지에 있던 사건을 양지로 가져오는 한편, 구원의 서사를 완성한다. 실화 바탕이라는 문구를 통해 주목받지 못한 이슈를 세상에 알렸고, 감독은 자신의 바람과 이상향을 영화 속에 제시했다. 현실을 모방하는 ‘재현’의 속성, 그리고 필름이란 도화지에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상상력’이란 속성을 가진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장점을 모두 잘 살린 게 <미쓰백>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내외적으로 더 빛날 수 있던 건, 무리해서라도 한지민 덕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 영화계에 이 역할을 맡을 수 있는 배우는 한지민 외에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이는 한지민의 연기력을 논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녀만큼 이 역할이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미지를 가진 배우는 몇 없다. 그래서 영화가 더 주목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지민은 기존 이미지를 배반함으로써 이 사건과 영화를 조명받게 했고, 이 변신은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미쓰백> 속 공권력과 이웃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하다. 한 달 동안 방치된 시체를 시작으로 헐벗고 다니는 소녀가 귀신처럼 돌아다님에도 모두가 방관한다. 과한 설정이다. 하지만, 어딘가에선 현실일 지도 모를 충격적인 설정이다. 더불어, 가정 내 아동 폭력의 문제는 타인이 손을 뻗기에도 한계가 있다. 자식에게 극성인 부모가 이슈가 된 만큼, 누군가의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부담스러운 시대다. 그래서 더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 사건들이 많지 않을까. 이런 사각지대에 자신의 이미지에 비친 빛을 반사해 밝힌 게 한지민이다. 그녀라서 고마웠고,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