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기#039 헤일, 시저!(2)

영화사 겉핥기: 두 번째,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 엿보기

스튜디오 시스템 – 스타

송강호, 하정우, 전도연, 김혜수…. 출연하면, 기대되는 배우가 있다. 어떤 장르인지, 어떤 이야기인지 생각하기 전에, 많은 관객이 먼저 인식하는 것은 스타 배우의 출연 여부다. ‘흥행 보증 수표’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스타는 티켓 파워를 의미하고는 한다. 이처럼 지금 익숙한 ‘스타’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었다. MGM, 워너브라더스, 20세기 폭스 등의 거대 제작사는 스타를 보유하고, 그들을 출연시켜 흥행을 유도했다.



<헤일, 시저!>는 이 스튜디오의 기둥, ‘스타’를 중심에 둔 풍자극이다. 돈, 시나리오, 감독도 있지만, 베어드 휘트록(조지 클루니)이라는 배우가 없기에 영화제작이 마비되는 상황. 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스타의 존재감을 알 수 있다. 베어드 휘트록이 납치된 후, 공산주의자들은 매닉스에게 어마어마한 금액을 요구하는데, 매닉스는 순순히 그 거래에 응한다. 큰 고민 없이 응할 수밖에 없는 매닉스의 선택을 통해, 이 영화는 한 명의 스타가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는지 상상하게 한다.


하지만 <헤일, 시저!>는 스타 시스템을 곱게 묘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스타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모습을 통해 이 시스템을 비꼰다. 그리고 이를 통해 드러나는 익살스러움과 유머가 <헤일, 시저!>의 재미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외설적인 사진을 찍는 여배우가 보인다. 매닉스는 이 여배우를 거칠게 끌고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프로듀서가 스타 시스템을 유지하는 방법이 드러난다. 매닉스는 외설적인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을 없애기 위해 여배우에겐 가명을 말해 현장을 떠나라 하고, 이 사건(?)이 공식적인 일이 되지 못하게 경찰에게는 돈을 준다. 그는 거짓말과 검은돈으로 스타의 이미지를 지키는 중이다.



베어드 휘트록은 어떤가. 스타 배우인 그는 스크린에서 카리스마 있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카메라 밖에서의 모습은 배역이 가지는 이미지, 아우라와 거리가 다. 현실 속 베어드 휘트록은 여자관계가 복잡한 난봉꾼으로 관계자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다. 그리고 그가 납치된 뒤에 보이는 행동은 순진하다 못해, 나사가 하나 빠진 듯했다. 공산주의를 해석하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을 보라.


호비 도일(엘든 이렌리치)은 어떤가. 그는 서부극 액션 스타다. (그의 배경을 통해 앞서 말한 스튜디오의 ‘장르’에 대한 선호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대사를 말해본 적 없고, 연기도 전혀 되지 않는 놀라운 배우이기도 하다. 그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감독이 안쓰러울 정도로 그는 연기를 심각하게 못 한다. (그의 발연기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 중 하나다) 그리고 그는 영화 속 건강한 이미지와 달리 틀니를 착용하고 있다. 환한 미소조차도 결국 틀니라는 거짓 속에 만들어진 이미지였던 것이다.



스타 시스템의 유지, 이미지의 보존

이쯤 되면 스타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감이 올 것이다. 이미지. 대중이 ‘보는’ 이미지가 이 시스템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코언 형제가 다양한 스타 우스꽝스럽게 표현함으로써 말하고 싶었던 것도 스타의 적나라한 맨얼굴을 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헤일, 시저!>는 스타 시스템이 가지는 허구성과 대면하게 한다. 대중에게 사랑받고, 제작사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화려한 스타. 스타의 이미지는 자본을 지켜주는 존재이다.


그리고 자본도 스타를 지키려 한다. 디애나 모란(스칼렛 요한슨)을 보자. 주목받는 여배우인 그녀는 싱크로나이즈 영화의 주인공으로 인어를 연기하고 있다.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배우 덕분에 외적 아름다움이 더 강조되고 있는데, 스타 시스템이 요구했던 이미지를 우리 시대의 섹시 아이콘으로 보여주는 재미있는 배치다. 하지만 그녀는 카메라가 꺼지면 살이 쪄서 옷이 작다는 이야기, 복잡한 남자관계 이야기 등을 꺼내며 맨얼굴을 드러낸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개인적 문제까지 제작사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녀의 이미지는 보이기 위해 조작되고 통제받는 중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이미지와 실제 그녀의 간격은 조셉 실버맨(조나 힐)의 등장으로 극대화된다. 비공식 매니저로 모든 포탄을 맞는 이 남자는 할리우드가 만든 아름다움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보여주는데, 그는 피로한 표정으로 이 시스템을 향해 시니컬한 태도를 보인다.


이렇게 <헤일, 시저!>는 고전기 영화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당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엿 보는 재미를 준다. 광활한 스튜디오 사이를 걷는 매닉스의 모습을 통해 영화산업의 거대한 몸을 보여주고, 다양한 스타를 조명해 이 산업의 속을 비춘다. 그냥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양파의 껍질을 까듯 보여준다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이 영화는 스크린 앞에서의 얼굴과 스크린 뒤에서의 얼굴을 비교하며 스타의 허상을 풍자하고 있는 영화다. 거기에 스캔들 보도에 목매는 대커 자매(틸다 스윈튼)의 행동까지 보면, 할리우드가 만든 영화 시스템이 언론까지 황색으로 물들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스템을 유지하려던 자들은 스타라는 제조된 이미지에 열광하는 대중을 보며, ‘대중은 개, 돼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영화를 향한 애정

배우를 때리고, 감독에게 지시할 수 있는 프로듀서 매닉스. 가장 강력할 것 같았던 그도 투자자 앞에서는 몸을 한껏 낮춘다. 호비 도일이 재앙에 가까운 연기를 해도 써야 한다. 투자자가 원한다면 호비 도일은 의심할 수 없이 가장 적합한 배우이니까. 이런 그에게 영화의 작품성은 고려대상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그는 그저 영화로 돈을 버는 장사꾼일까. 영화에 대한 애정보다 자본 그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일까. 꼭 그렇지마는 않다. 매닉스는 그 나름의 방식대로 영화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영화 중간에 매닉스가 이직을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그는 많은 보수를 약속하는 원자폭탄 회사 록히드의 제안에 흔들린다. 더 많은 돈, 그리고 밤낮없이 일하지 않아도 되기에 가족과의 시간도 더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영화를 선택한다. 이윤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그였지만, 그는 더 적은 보수를 받고, 더 고된 영화판을 택했.


영화를 향한 그의 사랑이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이직 때문에 진행된 미팅 도중 ‘영화는 가볍다.’, ‘영화판은 문제아들’ ‘서커스 판의 노동자’라는 조롱을 듣고 분노하는 장면 말할 수 있다. 그에게 영화는 상품이지만, 가볍지 않은, 관객에게 꿈을 줄 수 있는 환상적인 상품이다. 매닉스에겐 수익이 나는 영화, 대중이 많이 보는 영화가 진정 좋은 영화고, 그는 대중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다.



매닉스가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의아하다. 배우를 때리고, 경찰에게 뒷돈을 주는 등의 ‘진짜’ 사죄해야 할 항목들은 하나도 말하지 않는다. 그가 집착하는 것은 ‘담배를 피웠다’는 행위 따위였다. 할리우드 시스템의 진실을 덮는 등 시스템 유지를 위한 그 어 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그가 담배를 찾을 때가 영화 제작에 차질이 있는 순간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영화제작 차질→ 담배→사죄. 단순화하자면 그는 영화 제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을 사죄하고 반성한다.


이런 그에게 ‘영화’는 신,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절대 선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절대자의 자리에 영화가 있다. 우리 세계의 신을 묘사하는 방법 대해 토론하는 신학자들 사이에서 매닉스가 취하는 태도를 보면, 그가 가진 신앙심을 추측할 수 있다. 그는 이 세계의 신이 어떻게 묘사되든 관심이 없다. 그저 상영 중에 논란이 없게 표현되기를 바랄 뿐이고, 논란 없이 많은 관객에게 영화를 상영하기를 바랄 뿐이다.


익살스럽고 지독한 풍자극 <헤일, 시저!>를 보며 따뜻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영화의 성장기를 본다는 느낌 때문이 아닐까. 혹은 고전기 영화에 품었던 막연한 동경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일까. 매닉스라는 현실주의자가 효율성을 추구하면서도 영화 그 자체를 아끼고 있었기에, 영화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기에 이 영화는 봄날처럼 따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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