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기#080 조조 래빗
<조조 래빗>은 영화의 패배로 시작해 영화의 가능성을 말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논란의 작품이 있다. <조조 래빗>의 도입부엔 선전 영화가 있고, 이후 나치에 열광하는 소년이 등장하며 둘의 상관관계를 말한다. 이 선전 영화는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이며, 이 영화는 최고의 다큐멘터리이자 최악의 선전물이라는 명성을 함께 가진 괴이한 걸작이다. 이번 글은 문제적 작품인 <의지의 승리>로 <조조 래빗>을 읽는 시도를 할 것이다.
<의지의 승리>는 히틀러의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레니 리펜슈탈은 나치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당시엔 구현하기 힘든 스펙터클을 필름에 기록했다. 카메라는 어디든 위치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는데, 대회장을 담은 하이 앵글 샷 등은 현대 영화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의지의 승리>는 영화 기술의 큰 성취였다. 하지만 나치에게 큰 동력을 제공하며 ‘영화의 패배’를 말하는 영상물이기도 했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의지의 승리>의 클립을 가져와 쓰면서 무엇을 말하고 있었을까. 이 영화는 히틀러에게 아우라를 만들어 줬고, 당시의 대중이라면 이 강렬한 이미지에 매혹되기 쉬웠다. 대중매체가 막 등장했기에 영상 등의 선전물이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던 시기다. 그 결과물이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였다. 극 중 로지(스칼렛 요한슨>는 조조가 이전엔 순수했던 소년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순수하고 순진할수록 세뇌당하기 쉬웠고, 이 소년에겐 매스 미디어가 낯설었던 순수한 대중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로지는 조조에게 ‘사랑’이 아름답고 위대한 거라 말한다. 나치에게 세뇌당해 히틀러 중독상태인 조조는 엘사(토마신 맥켄지) 덕에 사랑이란 해독제를 구한다. 그리고 그 덕에 유대인 및 세상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혼자 신발끈을 묶지 못하던 소년은 유대인 소녀의 신발끈을 묶어주며 그녀가 새로운 세상으로 걸어갈 수 있게 한다. 그렇게 소년은 성장했고, 황폐한 땅 위에서 두 사람이 춤추는 영화적인 장면으로 <조조 래빗>은 이야기를 끝낸다.
그렇게 <조조 래빗>은 사랑이 폭력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말한다. 그리고 타이카 와이티티는 이 사랑을 담아낼 수 있는 매개체를 영화라고 말하고 있었다. 타이카 와이티티는 레니 리펜슈탈이 초래한 영화의 패배를 차용해 영화의 가능성을 말한다. 영화가 짓밟혔던 순간을 가져와 이를 전복시킨 감독에게 미국 영화 아카데미가 각색상을 준 건 고마움의 표현이지 않았을까.
나치마저 영화의 소품으로 영리하게 활용한 영화. 잔인하고 참혹한 시간을 가져와 동화적인 색채로 사랑을 말한 영화. 죽음의 시간을 조명하면서도 새로운 시작과 생명성을 담은 영화. 폭력의 시대마저 사랑의 자양분으로 삼은 영화. 그리고 영화의 패배를 무한한 가능성으로 전복한 영화. 끝으로 과거 세뇌당한 대중을 영화적으로 위로해주는 영화. <조조 래빗>은 영화라는 것으로 이 많은 걸 해낸다. 이 영화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