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기#081 미나리
<미나리>는 잔혹한 영화다. 가족의 사랑을 보여주고 그 의미를 말하는 따스한 면이 있지만, 제이콥(스티븐 연)이 겪는 실패의 연대기에 더 예리한 메시지가 있다. 제이콥에 관해 생각할수록 <미나리>엔 미국인의 배타성이 짙게 보여 갑갑해진다. 미국 땅 자체는 호의적인 면이 있지만, 미국인과 그 사회는 제이콥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야기. 내게 <미나리>는 그런 영화였다.
관객은 아칸소로 오기 전의 제이콥에 관해서는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그는 거대한 가든을 꿈꾸는 이상주의자고, 그 꿈을 위해 뿌리도 없는 집에 가족을 살게 하는 이기적인 남자로 등장한다. 영화 속 모니카(한예리)와의 대화를 통해 최소한의 안정을 포기하고 트레일러로 왔다는 것을 추가로 알 수 있다. 이 트레일러는 여러 가지로 상징적인데, 불안정하게 떠돌 수밖에 없는 이민자의 상황을 암시하고, 영화의 제목이면서 어디서든 뿌리를 쉽게 내리는 ‘미나리’와 대조되기도 한다. 이런 정보로 볼 때 제이콥은 안정보다는 모험을 즐겼고, 그 결과 척박한 땅에 이사를 오게 된 듯하다. 무모하고, 어쩌면 무능해 보일 수 있는 남자다.
하지만 영화에서 노동하는 제이콥의 모습은 이런 인식을 바꾸게 한다. 병아리 감별사로서 그는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고, 상사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우수했다. 농사할 때는 부지런하고, 재배와 수확도 능숙하게 해낸다. 제이콥이 정직하게 노동하는 근면 성실한 인간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물을 찾을 수 있는 지혜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유능한 인간이고, 실패할 이유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그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 속에 <미나리>의 메시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제이콥은 왜 실패했을까? 혹은 어떤 결함이 있었던 걸까?
<미나리>에서 제이콥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건 ‘가족관’에 있다. 그는 아이들 앞에서 성공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성공을 위해서는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도 있다 말한다. 가족은 함께해야 한다는 모니카의 생각과는 대조적이다. 영화는 종종 제이콥의 이런 가부장적인 태도를 가정의 분열이자 위기로 바라보는데, 그래서 제이콥은 책임이 막중한 가장이자 가족을 와해시키는 빌런처럼 보인다.
모니카와 제이콥은 종교에 관해서도 갈등한다. 모니카는 미국 공동체와 종교활동을 하려 했고, 제이콥은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내를 위해 참여하기도 하지만, 종교에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십자가를 들고 걷는 폴(윌 패튼)을 보며 보이는 태도나, 순자가 아플 때 모니카가 종교적인 방법으로 치유를 시도하는 방법을 탐탁지 않아 하는 걸 볼 수 있다. 제이콥이 가진 신에 대한 불신, 이건 실패의 또 다른 원인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는 ‘물’을 찾는 그의 태도에서도 볼 수 있다. 제이콥은 물에 돈을 요구하는 미국인의 요구를 거절하고 직접 물을 찾아 나선다. 가뭄으로 위기가 닥쳤을 때도 물을 사는 방법 대신 가정에 공급되는 물을 끌어와 이용한다.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자원을 구해 농사하고 있던 이런 방식을 비합법적인 혹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본다면 제이콥의 결함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선택한 농작물을 볼 필요가 있다. 미국 농작물을 재배하자는 제안을 거부하고, 제이콥은 한국 농작물을 심어 팔겠다고 한다. 이는 미국 땅에서 수요와 공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잘못된 판단으로 생각할 수 있고, 다가올 실패의 원인이라면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언급한 실패의 원인은 제이콥으로서도 변호할 여지는 있다. 성공 지향적인 가부장적인 자세는 미국에서 그의 아이들이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할 수 있다. <미나리>에서 미국인이 제이콥의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은 편견이 짙고, 그들을 타자화한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제이콥은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걸 넘어 미국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성공이 필요충분조건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물은 미국이 아닌, 자연이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그의 태도는 오히려 대범했고, 끝내 종교는 순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이콥은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논리적인 인간이라 변호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수요와 공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부분도 충분히 반박할 수 있는데, 제이콥은 결국 거래처를 찾아내고 자신이 재배한 상품의 가치와 타당성을 인정받는 데도 성공한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제이콥이 성공할 수 없던 이유는 단 하나로 귀결된다. 가부장적인 태도, 종교에 대한 무관심,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물, 한국 농작물에 대한 고집. 이 모든 건 제이콥이 미국 사회의 방식이 아닌 자신, 혹은 한국적인 가치관을 추구했던 결과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했고, 자신도 미국인을 타자화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심판이 불타는 헛간이었다. 그가 한국적인 방식으로 추구했던 건 미국 땅 위에서 모두 불타 없어진다.
<미나리>는 미국 땅에 온 정착민과 이주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과거의 서부극을 생각할 수도 있다. 서부 영화에는 무법자라는 존재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사회의 제도와 법 밖에서 자신의 정의를 추구하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돌아올 집이 없고 떠도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했다. 미국 사회의 가치관 밖에서 자신의 의지를 밀고 나가고, 정착할 집이 없는 존재. 이는 제이콥에게도 해당하며, 그래서 제이콥이 서부극의 무법자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이콥은 일하러 갈 때 늘 빨간 모자를 쓴다. 이는 혹독한 이민자 정책을 펼친 트럼프 대통령을 연상하게 하는 부분일 수 있지만, 서부극 주인공들의 시그니처가 모자였다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결국, 제이콥이 미국 땅에서 사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미국 사회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그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면서 정착하거나, 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미국 사회의 가치관 밖에서 떠도는 것. 미국인과 무법자, 그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그렇다면 제이콥은 어떤 결정을 했을까?
엔딩에서 그는 과거와 다른 방법으로 물을 찾고 있었다. 그는 잘 차려입고 있었고, 모자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과거에 순자가 심은 미나리가 자리 잡은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무법자가 될 수 없던 제이콥은 결국, 그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수정하며 미국에 뿌리를 내렸다. 미나리처럼. <미나리>는 미국 사회의 배타성을 잘 보여준 갑갑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