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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Mar 14. 2021

[모리타니안] '자유'의 나라가 감췄던 역겨운 진실

Appetizer#166 모리타니안

미국은 어떤 나라일까. 최근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규정을 통해 그들의 배타성을 목격했고, 그들이 말하는 자유와 평등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인종의 용광로라 불리지만, 실상은 인종차별로 분노도 용광로처럼 끓고 있는 나라. 이들에 대한 환상은 한 권의 책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한 번 더 무참히 박살 났다.

<모리타니안>은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이 책은 '모헤마두 울드 슬라히'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을 폭로한 증언록으로 미국 정부가 감추고 있던 충격적인 진실을 담고 있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쿠바 남동쪽 관타나모만의 미국 해군 기지 내에 있는 수용소로 9·11 테러 이후엔 테러 용의자를 수감한 곳이다. 명확한 증거와 재판 없이 구금을 진행했고, 고문과 인권침해의 증거가 발견되면서 이슈가 되었던 곳이다.


영화는 9·11 테러의 용의자로 6년 동안 재판 없이 수감되어 있던 슬라히에게 유죄를 선고하려는 측과 무죄를 증명하려는 측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 <모리타니안>은 긴 시간의 사건을 다루고 있어, 이를 압축하면서도 슬라히가 느꼈을 감정을 온전히 전달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원 데이 인 셉템버>로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던 '캐빈 맥도널드'가 연출을 맡았고, 덕분에 실화가 가진 힘과 이에 연루된 인물들의 생생한 감정이 잘 살아있는 영화가 될 수 있었다.

영화 <모리타니안> 스틸 컷(출처: (주)디스테이션)

<모리타니안>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흐름이 확연히 구분된다. 전반부는 미지의 인물 '슬라히'에 관해 알아가고, 그를 의심하는 스릴러/추리 영화의 분위기가 있다. 영화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은 슬라히에게서 거리를 두고 있다. 이는 이 사건 밖에서 관타나모에 관해 정보를 얻는 다른 국가들의 위치이자 우리의 시선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적인 느낌도 있는데, 다큐멘터리와 다른 건 사건과 관련된 정확한 팩트가 하나도 제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건의 전말이 폭로되는 후반부엔 전개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모리타니안>은 다양한 팩트와 이미지로 쉴 새 없이 공포와 분노를 느끼게 한다. 미국 정부가 만든 '관타나모의 테러 용의자'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슬라히'의 경험에 집중하면서 한 인간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했다. 여기서는 전반부와 달리 '극 영화'의 느낌이 물씬 나는데, 일반적인 극 영화와 다른 건 허구가 아닌 사실로 쌓아 올린 감정이라는 데 있다.

영화 <모리타니안> 스틸 컷(출처: (주)디스테이션)

굳이 <모리타니안>에서 아쉬운 점을 꼽자면, 영화의 전반부에 있다. 사건의 양상과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데, 여기서 이야기가 늘어져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후반부 진실 앞에서 인물들의 감정적 변화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필요했던 부분이지만, 중심 사건 이외의 것으로 시선이 분산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부분을 잘 넘어간다면, 요동치는 극의 긴장감에 빨려 들어갈 것이다.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9·11 이후 미국은 '타겟'이 필요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들은 불안과 분노의 시대를 견뎌내기 위해 관타나모를 타겟을 생산하는 극장처럼 사용했다. 이 극장은 한 인간의 자유를 동력으로 운영되었고, 너무도 많은 악행이 있었다. 자유의 나라가 누군가의 자유를 억압해 운영되었다는 불편하고 진실. <모리타니안>은 역겨운 진실을 조명하는 뜨거운 영화이며, <제로 다크 서티>, <스노든> 등의 영화처럼 테러의 시대를 통과한 미국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었다.

영화 <모리타니안> 스틸 컷(출처: (주)디스테이션)


P.S <모리타니안>은 '모리타니아 사람'이라는 뜻이다. 수용소 안에서 '슬라히'라는 개인은 없었고, 그래서 정체성과 '이름'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었다. 미국이 만든 용의자라는 틀 안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남자. 그렇게 개인이 상실된 슬라히의 상황을 제목에 표현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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