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잡썰 Ep15. 우리가 하나의 팬으로서 느끼는 감정
언젠가 롯데의 2022년을 돌아본다면 이런 단어로 기록되어 있지 않을까. 이른 이별. 여전히 리그 최정상급 기량을 뽐내는 리빙 레전드의 은퇴, 그리고 며칠 전 전달된 믿기 싫었던 이별 통보. 사직 할아버지로 유명한 '캐리 마허' 교수님이 우리 곁을 떠났다.
종종 야구장에서 캐리 마허 교수를 볼 수 있었다. 그와 따로 약속을 했던 건 아니다. 롯데 경기가 있는 곳이라면 그가 늘 거기 있었을 뿐이다.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꾸준히 보러왔던 캐리 마허는 중계에 잡힐 만큼 유명해졌고 사직구장에서 시구를 하기도 했다. 이밖에 그에 관해 아는 게 많지 않았고 나와 많은 것이 달랐지만, 우린 자이언츠로 통하고 있었다. 낯선 존재와 경기장 안팎에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자이언츠를 통해 유대감을 느낄 수 있어 든든했던 사람. 자랑스러웠다. 우리 팀 팬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게. 못난 우리 팀이었지만, 낯선 이방인까지 열광할 정도로 우리팀이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캐리 마허 교수는 나보다 훨씬 선수들의 이적에 아쉬워했고, 늘 열정적으로 자이언츠를 응원했다. 그렇게 긍정적이고 뜨거운 모습을 한결같이 보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팬, 혹은 좋은 팬이 맞는가 고민을 해본 적도 있을 정도니까. 그런 존재가 이제 없을 거라고 한다. 엄청난 공허함이 파도가 되어 모든 걸 삼켜버렸고, 그 자리엔 또 하나의 질문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는 왜 자이언츠 야구에 열광했는가. 야구가 뭐길래. 푸른 눈을 가진 이방인의 마음까지 훔칠 수 있었을까.
그러다 그런 생각에 닿았다. 이 팀을 좋아하는 데엔 어떠한 자격도 필요없었다는걸. 나이, 성별, 국가, 계층 등은 야구팬이 되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이렇게 자이언츠로 하나가 된 이들은 일주일에 여섯 번 같은 걸 보고 희로애락을 공유한다. 이 감정에도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다. 우리는 같은 팀의 팬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 순간에 뭔가를 계속 주고받는다. 끝없이 외로움을 양산하고 강요하는 시대의 한 가운데서 우리는 자이언츠라는 못난 거인 아래서 지독한 소속감을 선물 받았다. 자이언츠를 다른 팀, 스포츠로 바꿔도 비슷할 거다. 이 소속감 안에서 야구를 보며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되는 쓸쓸함을 대신해 이 괴로운 즐거움을 기꺼이 택한 게 아닐까.
'야구잡썰' 댓글에서 그런 글을 봤다. '야구는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오랜 기간 하위권에 있지만, 팬들의 사랑은 넘치도록 받았던 롯데 자이언츠. 우리는 어두운 시기를 함께했고 그 어둠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에 더 끈끈한 뭔가가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며칠 전, 캐리 마허라는 뜨거운 끈 하나가 지상에서 끊어졌다. 물론 화요일 6시 30분이 되면 우린 다시 서로의 존재를 느낄 거다. 뜨거운 자이언츠 팬으로서 말이다. 그래도 더 이상 경기장에서 그를 볼 수 없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를 위해 슬프지 않을 거라 다짐하지만, 이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늘 그 자리에 있던, 있을 것만 같은 대상과의 이별은 낯설다.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시간이 지나도 가끔 그 빈 자리를 느낄 때, 아쉬움은 밀물처럼 우리를 덮친다. 이후엔 공허함만이 그 위를 부유할 거다. 캐리 마허 할아버지의 빈 자리도 그렇다. 그래도 늘 사직엔 그를 위한 자리가 있을 것만 같고, 함께 롯데를 외치고 있을 것만 같다. 패배의 쓴맛을 더 많이 줬던 팀일 수도 있지만, 늘 그랬듯 사직에 자주 놀러 와 주시길. 언제가 자이언츠가 우승하는 그날 우리 곁에서 함께 기뻐해 주시길. 앞으로도 함께 자이언츠를 응원하며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기를.
캐리 마허 교수님! 롯데 자이언츠와 함께해주셔서, 우리와 함께 기꺼이 미친 롯데 팬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