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잡썰 Ep14. 자이언츠보다 먼저 경험한 우승
지난주 롯데는 가을 야구와 두 계단 더 멀어졌다. 5할이 5강의 마지노선(물론, 5할만으로는 장담할 수 없다)이라고 했을 때, 갈 길이 바빴던 자이언츠는 승차 마진 -2를 기록하며 팬들을 더 절망하게 했다. 지난주는 운도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슈로 주전이 대거 이탈했기에 정상적인 경기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늘마저 버린 느낌. 작년까지 에이스 역할을 해준 스트레일리의 복귀 소식, 새 외국인 타자 렉스의 활약에 아주 잠깐 가을 야구를 꿈꿨을 롯데 팬의 꿈에 찬물을 끼얹은 주였다.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도 있었다. 올 시즌 기대보다 부진하지만, 여전히 팀의 든든한 필승조로 기대를 받고 있는 최준용이 투구 중 고통을 호소하며 마운드를 떠났다. 다행히 주중 경기에 복귀해 공을 던졌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투구폼의 수정, 피로 누적 등 추측되는 요인들이 있다. 왜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인지 철저히 분석해 선수의 건강을 잘 체크해주길 바란다. 자이언츠의 젊은 투수, 그러니까 미래를 책임질 이들은 이런 아찔한 순간을 결코 경험해서는 안 된다.
그밖에도 수 많은 야구 팬에게 조롱을 받을 만한 플레이도 나왔다. 런다운 도중 일어난 포수의 악송구에 이어 홈 베이스가 비어있던 탓에 헌납한 1점. 그리고 이어진 2루 베이스에서의 포구 실책. 하나의 타구에서 팬들을 환장하게 하는 플레이가 두 개나 나왔다. 이후 진행된 이닝의 수비에서는 베이스가 비어 주자에게 진루를 맥없이 허용하기도 했다. 선수도 사람이다 보니 송구 실책은 종종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베이스가 비어있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사회인 야구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자리에서 수비를 할 때, 베이스를 비우는 실수가 종종 나온. 그러나 프로에서는 나와서는 안 될 장면이다. 잘하고 못 하고의 문제가 아닌, 기본적인 플레이가 되지 않는다는 건 뼈아프다. 이는 현재 롯데 자이언츠의 수비 조직력이 어떤 상황이지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플레이였다. 주전의 이탈로 갑작스레 경기를 하게 되었다고 해도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수비 쉬프트 중에 베이스가 비어있고, 이를 유기적으로 백업하는 선수가 없는 모습에선 의문도 가지게 된다. 팀 전체가 쉬프트 수비에 대한 이해도나 적응력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수비 쉬프트를 적극 활용하고 싶다면, 볼 배합과 수비의 유기적인 이동 등을 함께 고려해주길. 선수의 위치만 옮긴다고 좋은 수비가 나오는 건 아니다.
이런 기본적인 것들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팀이 가을 야구를 넘본다는 게 욕심인 것만 같아 답답하다. 너무도 인정하기 싫지만, 이미 자이언츠는 22년 가을야구와 헤어질 결심을 한듯하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속 대사로 이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면 이렇다.
- 롯데 수비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 가을 야구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 화내는 롯데 팬이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 롯데 팬은 팀이 가을 야구 못 한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아니더라고요)
롯데의 시즌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던 어떤 하루. 나와 광견이 속한 사회인 야구팀은 상반기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소화하고 있었다. 이미 지난 경기에서 우승을 확정했기에 부담은 없었지만,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던 경기였다. 그러다 운 좋게 광견 감독의 배려로 마지막 이닝에 공을 던질 기회를 얻었다. 재미있게도 이 날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질 때 조금도 긴장되지 않았다. 아마 크게 기울었던 승부 탓이겠지만, 조금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과거가 오버랩되는 듯한 재미있는 순간을 만났다고나 할까.
10년도 더 전에 이 팀 마운드에 서 있을 땐 막내였다. 그런데 이제 서른이 넘었고, 우리 팀엔 그때의 내 나이와 비슷한 대학생 막내들이 뛰고 있다. 과거엔 팀에 투수가 부족해 자주 마운드에 올랐다면, 지금은 굳건한 에이스와 빠른 공 던지는 친구들이 잔뜩 있는 팀. 그런데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내 뒤의 유격수 자리엔 아직 광견이 있다는 거다. 우리 팀 마운드에 오를 때 내 기준으로 우측 타구엔 언제나 '숏'을 콜 했다(그게 심지어 홈런 일지라도). 재미있게도 이 마지막 경기에서도 내 우측으로 향하는 타구가 나왔다. 언제나 그랬듯 신나게 '숏'을 외쳤고, 대개는 그랬듯 리그 최고의 유격수 광견은 송구 에러를 범했다.
아쉬운 플레이였지만 재미있는 의미가 있던 에러다. 지난 10년간 우리 팀에 변하지 않은 게 있다는 걸, 광견은 그 익숙한 플레이로 말하고 있었다. 지난 시간을 결산할 만한 기념비적인 날, '아, 우리 이 팀에서 이런 플레이 자주 했었지'라고 우리 팀의 역사를 되새김질할 수 있던 순간이다. 그래서 에러였지만 이상하게 즐거웠다. 그래, 이래야 우리 팀이지. 다행히 실점 없이 이닝을 끝냈고, 우리 팀은 꽤 긴 여정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누군가는 작은 우승이라 말하겠지만, 그래도 좋았다. 우승이니까.
우승이 전부가 아니고, 스포츠 최고의 가치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같은 시간을 돌아보고, 함께 고생했던 시간을 웃으며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승만큼 짜릿한 순간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우승까지 걸린 시간이 길수록, 돌아볼 기억이 많기에 그 기쁨도 클 것만 같다. 팀이 하나라고 생각하게 하는 많은 순간이 있지만, 이만한 감동과 결속을 가져오는 건 역시 우승밖에 없을 거다. 자이언츠 우승의 순간에 선수들은 어떤 시간을 돌아보게 될까. 그리고 팬들은 어떤 시간을 공유하며 울고 웃을까. 막연하지만, 조금 더 그 순간을 동경하게 되는 날이었다. 그런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