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잡썰 Ep19. 이제 고민이라도 시작해야 할 때
매년 이 때면 야구팬은 무한한 설렘을 가진다. 팀 성적에 관계없이 모두 평등하게 장밋빛 미래를 꿈꿔볼 수 있는 시간. 리그 최고의 타자와 에이스가 될 재능을 가진 신인 선수를 뽑는 신인 드래프트가 열린다. 역대급 재능을 가진, 제2의 레전드가 될 수 있는 재목들을 보며 팬들은 응원 팀의 약점을 보완하고, 조만간 이 선수가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해주길 기대한다. 물론 야구를 오래 본 팬들은 안다. 주목받았던 선수 중 그 기대를 충족할 만큼 성장한 선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그래도 기대를 버릴 수는 없다. 아직 기록되지 않은 팀의 내일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채워볼 수 있는 시간이니까.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버틸 수 있는 시즌이 있으니까.
이번 드래프트엔 총 1,165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고교, 대학교(얼리 드래프트 포함) 졸업 예정자, 해외 아마 및 프로 등 그 출신도 다양하다. 여기서 110명의 선수가 10개 구단의 지명을 받았다. 긴 시간 야구만 보고 프로 입단을 위해 달렸던 많은 선수의 꿈이 이뤄지고, 더 많은 선수의 꿈이 잠시 유예되는 시간.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고 저마다의 위치에서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자리가 드래프트 현장이다. 여기에 올해는 특별한 이슈가 하나 더 있었다. 학교 폭력 이슈로 징계를 받았던 선수의 드래프트 참가. 팬들 사이엔 이미 이 선수를 뽑는 것과 관련해 많은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
이 화제의 중심에 있던 건 고려대 '김유성'으로 이미 2020년에 NC 1차 지명을 받았던 선수다. 하지만 중학생 시절 학교 폭력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NC는 지명을 철회했고, 김유성은 1년의 징계를 받은 뒤 올해부터 공을 던질 수 있었다. 1차 지명 선수를 철회한다는 건 구단으로서는 엄청난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당시 NC의 선택은 놀라웠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런 사연을 가진 선수가 이번 드래프트에 참여했고, 보란 듯이 2라운드에서 일찌감치 선택받았다. 야구계 안팎으로 많은 고민이 던져진 순간이었다. 두산은 즉시 전력감이라는 평가를 바탕으로 이 선수를 택했다. 구단의 어려운 상황 속에 전력 상승을 위한 합리적이고 확실한 선택이라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 선택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야구장 안에서 성적만 좋으면 된다. 야구적인 데이터 외엔 필요 없다. 우리에게 선수는 야구하는 기계다.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지금 제도 내에선 이런 이슈는 계속될 것이다. 학고 폭력, 음주, 약물 등 야구장 밖에서 선수가 했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고, 그에 관한 의견도 다양할 것이기에. '빌리 빈' 단장의 머니볼 이론 이후 선수를 평가하는 데엔 데이터가 더 중시되는 경향도 있다(그래서 이런 질문이 흥미로운데, '빌리 빈'이라면 김유성을 뽑았을까?) 영원히 그 행위를 용서하지 못하는 팬이 있고, 선수도 인간이기에 잘못이나 실수를 반성하고 만회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팬도 있을 거다. 몇 년 전만 해도 '야구로 보답하겠다'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많은 매체를 통해 선수의 사생활이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시대에 이런 말은 공허한 말이자 헛소리다. 이젠 그들도 선수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팬들 앞에 서고 교감하고 있다. 야구 실력이 그들의 인격을 보완해줄 일은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야구는 야구고 인간은 인간이다.
야구계는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징계를 주고 선수는 그에 따른 처벌을 받는다. 그리고 처벌을 다 받은 선수는 경기장을 돌아올 수 있다. 일부 팬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들은 다시 경기장에서 뛰며 다수의 응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공식적인 절차와 시스템이 있기에 징계를 소화한 선수가 뛰는 데엔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 그 징계 안에 그 건에 관한 건 모두 정리가 되고, 그 일로 다시 문제 삼지 않겠다는 합의가 있다. 공식적인 징계 안에는 그런 힘이 있는 거다. 극악한 범죄를 다루는 법에서도 이런 경우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다시 처벌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KBO가 중복 징계를 할 일은 절대 없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야구를 보고 사랑하는 팬들의 여론이다. 법적 문제가 없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냐고 물을 수 있지만, 프로야구의 주인은 팬이다. 법도 야구장 안에서 만큼은 팬들을 완벽히 납득시킬 수 없다. 야구단에게 팬이 뭐길래? 야구단의 목표는 우승이겠지만, 우승만이 그 구단의 존재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야구단은 이익집단이기에 이윤 창출이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 우승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들의 활동 중심에 팬들의 마음이 있다. 하나의 구단을 응원하며 맺게 되는 팬들의 소속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스포츠라는 것이 주는 감동 역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고 팬들을 미치게 한다. 이렇게 팬들은 그 구단에 애정을 갖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된다. 이 관계를 바탕으로 팬들은 자연스럽게 지갑을 열고, 모기업 홍보도 된다.
그렇다면 야구단이 만든 야구라는 즐거움을 보는 것에 돈을 쓰는 데, 왜 그 이후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야구를 오래 보면서 많은 팬을 봤고,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있다. 세상에 많은 사랑이 비대칭이겠지만, 야구단을 사랑하는 팬의 마음만큼 비대칭적인 게 없는 것 같다. 야구를 잘하든 못하든, 한번 정한 팀을 매일 같은 시간 응원하려 TV 앞에 모이는 사람들. 매일 화를 내다가도 야구가 없는 날에도, 야구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 우승이란 목표에 매번 실패해도 한결 같이, 일 년 내내 그 구단을 목이 쉴 때까지 외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 그러니까 야구단은 팬들의 마음을 갖고 하는 비즈니스이기에 이익만큼이나 팬들의 마음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이익집단이면서 거창하게는 사회 환원까지 고민해야하는 복잡한 조직. 그래서 이번 드래프트로 혼란스럽고 화가 난 팬에게 구단은 책임을 져야만 한다.
앞으로도 이번 드래프트처럼 이슈가 되었던 선수가 나올 거라는 건, 이런 일이 당연해져야 한다는 게 결코 아니다. 이후에도 있을 일이니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는 거다. 징계를 주는 단체, 징계를 받은 선수, 징계를 받은 선수를 받아들이는 팬까지 모두가 의견을 내며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 누군가의 꿈을 밟고서 꿈을 이룬 선수, 누군가의 땀과 노력을 무시하고 조명받은 선수, 누군가에게 물리/정신적인 고통을 준 선수를 야구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크게 두 가지 아닐까. 이런 사례에 관한 징계를 대폭 강화하거나, 징계를 받은 선수와 관련된 일에 관해 징계를 준 시스템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조금 더 생각해보자. 팬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하고, 스포츠의 감동을 전하는 프로 스포츠에서 이런 선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완고한 입장과 함께 아주 강력한 징계를 마련하는 방안이 있을 거다. 이런 일과 얽힌 선수를 야구계 밖으로 밀어내는 것. 그렇다면 인간이기에 누구나 실수는 하고, 한 번은 이걸 만회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 문제가 있던 선수를 경기장에서 뛸 수 있게 하는 범위 내에서 징계를 준다면, 그 이후까지 책임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임이란 그 해당 선수와 그 리그를 앞으로 보게 될 팬들에 관한 책임이다. 문제적 선수도 리그에 섞일 수 있는 다수의 동의와 그런 프로세스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이런 단어가 어울릴지 모르겠으나, 이를 '용서의 프로세스'라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용서란 피의자 혼자만의 후회와 반성으로 끝날 수 없다. 자신의 저질렀던 일과 관련된 피해자, 그리고 그의 행동 때문에 상처받은 팬들이 이 선수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용서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 그냥 그 리그에서 뛰어도 용인할 정도의 합의라고 하자. 합의의 프로세스.
이런 혼잣말을 장황하게 쓰면서도 안다. 쉽지 않은 일이고, 답이 나올 수도 없는 문제라는 걸. 하지만 이번 드래프트 이후에도 야구는 계속된다. 모든 야구 선수가 착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착하다는 것 자체가 주관적이고, 착하다고 야구를 잘하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자주 보는 데도 대비를 하지 않는 건 방관이며 무책임이다. 야구인 선배들이 야구를 정말 아낀다면 그 야구의 존속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후배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런 문제에 방어적으로 나올 때마다 팬이 떠나고 야구가 무너진다. 야구계 선배들은 누구에게 사랑받았는지 꼭 돌아보길 바란다. 상처받고 떠난 마음을 돌리는 건, 공 던지고 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