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잡썰 Ep22. 조선의 4번 타자를 보내며
좀처럼 펜이 움직이지 않았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지난 영상을 되돌려 보고 있는 중이다. 예고되었던 은퇴였지만 직접 마주한 그 순간의 무게감은 달랐다. 지난 20년동안 자이언츠에서 거대한 존재였던 이에 관해 조금 더 잘쓰고 싶으면서도, 이 글이 끝나면 나의 한 시절에도 마침표를 찍게 되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롯데를 응원했던 대부분의 시간, 그는 거기 있었으니까. 그래서 '은퇴식'이란 말이 괜스레 짜증나기도 했다. 한 선수와 나의 한 시절을 칼로 도려내듯 끝장내버리는 것 같아서.
이대호의 데뷔는 1999년 롯데 자이언츠를 한국 시리즈로 이끌었던 요란한 외국인 타자 '호세'와 얽혀있다. 지금도 가끔 언급되는, 경기장에서 배영수를 때린 일로 호세는 징계를 받았고 그때 콜업된 선수가 이대호였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 생활. 그의 커리어 초반은 나의 수험생활과 겹쳐 많이 볼 수 없었다. 신문 스포츠면을 통해 간간히 봤던 정도다. 그 시간을 지나 08년부터 다시 야구를 진득하게 볼 수 있던 내게 이대호는 언제나 4번 타자였다. 9경기 연속 홈런, 타격 7관왕, 올림픽/아시안 게임 금메달 등 인상적인 홈련도 많이 때렸다.
이대호가 FA 계약으로 일본에 진출하게 되었을 때, 떠난다는 아쉬움도 컸지만 설렘도 컸었다. 우리의 4번 타자가 더 큰 리그에서도 통할까라는 의문이 있었지만, 이대호라면 무대를 가리지 않고 담장을 넘길 거라 기대했다. 그리고 그는 보란듯 소프트뱅크에서 일본 시리즈 2회 정상을 밟았고, 이후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서도 홈런을 때렸다. 더는 '롯데의 4번 타자'라는 단어는 그를 품을 수 없었다. 이대호는 명실상부 조선의 4번 타자였다.
그런 선수가 정상급 기량을 유지한 채 다시 롯데에 돌아왔고, 우리 곁에서 6년을 더 함께했다. 모두 알듯 여섯 번의 우승 도전은 실패했지만, 그의 성적만큼은 여전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그는 늘 자이언츠의 중심에 있던 타자였다. 은퇴를 앞둔 올해도 도루를 제외한 타격 부문 상위권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늘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던 선수를 이제 볼 수 없다는 건 어색하고,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내년 개막전에서 그의 흔적을 경기장 안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때, 그의 시대가 끝났다는 걸 인정할 것 같다. 그때 마주할 허전함이 벌써 두렵다.
10월 8일 사직구장의 분위기는 오묘했다. 평소엔 야구 경기를 본다는 설렘뿐이던 공간엔 짙은 아쉬움이 섞여 부유하고 있었다. 일단, 이번 시즌이 마무리되는 경기였다. 긴 시즌 울화통에 못 이겨 욕하던 팬들은 이날 이런 생각을 한다. '내일 6시 30분부터 난 뭘 해야 하지?' 그러고는 깨닫는다. 자신이 야구를 참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는걸. 동시에 이날은 우리의 4번 타자와도 영원히 이별하는 날이기에 팬들의 마음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한 선수의 은퇴는 일반 직장인의 은퇴와 그 느낌이 조금 다르다. 한 선수는 수많은 팬과 함께 호흡한 순간이 있다. 그가 등장할 때마다 뭔가를 기대했던 순간도 있을 거다. 그런 순간들이 선수의 퇴장과 함께 시간의 저편으로 넘어가고, 우리의 사랑이 그라운드 안에서는 끝났다는 걸 공표하는 이정표가 은퇴다. 이때 한 팀에서 오래 뛰었던 선수일수록 그 이별의 여운이 짙다. 프로 스포츠에서 '원클럽맨'이란 단어가 점점 낭만이 되어가는 시대에 부산 토박이로 롯데 자이언츠에서만 선수 생활을 한 이대호는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일본과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해지만, 그때도 '롯데의 이대호'였기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응원할 수 있었다. 그는 팀 밖에 있어도 자랑할 수 있던 그런 선수였다.
이날 이대호는 시구 때 포수를 시작으로 1루수, 그리고 8회엔 드래프트 당시 포지션이었던 투수까지 소화하며 22년간의 프로 생활을 압축해서 보여줬다. 투수 등판이 꽤 인상적이었는데, 고우석은 올해 올스타전에서 이대호와 에피소드가 있었기에 다양한 의미가 있던 대결이었다. 상대 팀 LG도 팀의 마무리 투수 고우석을 타석에 세우며 흥미로운 상황을 연출했다. 고우석은 올해 올스타전에서 이대호와 에피소드가 있었기에 여러 의미가 있었다. 서로가 잃을 게 없는 낯선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해 승부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필사적으로 배트를 돌렸던 고우석 덕분에 잘 던지고, 잘 치고, (이대호가) 잘 잡은 멋진 승부가 나왔다.
그 밖에도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다. 평범한 아웃처럼 보이는 플레이에 이대호가 비디오 판독을 요청한 거다. 추측이긴 하나, 그 비디오 판독은 이대호가 마지막 경기를 좀 더 붙잡아 두려는 시도 같았다. 20년을 넘게 뛴 선수에게도 여전히 머물고 싶은 곳. 그곳이 팬들이 옆에 있는 야구장인 게 아닐까.
그런 순간들이 쌓여 마지막 회까지 왔고, 그땐 만감이 교차했다. 3:2로 앞서고 있어 아웃 카운트 하나만 더 잡으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1점을 내주면 동점이 되지만, 말 공격에서 이대호의 타석을 볼 수 있었다. 승리냐, 그의 타석이냐, 혼란스러웠다. 그의 은퇴식을 승리로 끝내고 싶지만 그를 붙잡고 응원가를 한 번 더 불러보고도 싶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김원중은 팀의 시즌 마지막 승리를 지켰고 이대호 인생 마지막 경기도 그렇게 끝이 났다.
이대호는 역대급 커리어를 가진 선수지만, 왠지 거리감을 느껴야 했던 선수다. 무뚝뚝하고 과묵해 보이는 성격을 가진듯해 친근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잘할 때가 훨씬 많았지만, 느린 발 탓에 많은 병살타를 치고, 홈에 들어오지 못해 탄식했던 적도 있다. 그래도 늘 거기 있는 게 당연한 롯데의 4번 타자라는 생각으로 긴 시간을 봐왔다. 그런데 올해 은퇴 투어가 확정되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저 큰 선수가 내년에 없다고? 저 응원가를 다시는 경기 중 부를 일이 없다고? '당연함'이 사라진다는 건 큰 충격이었다. 올해 유독 야구장을 많이 갔던 건, 다시는 못 부를 그 응원가를 한 번이라도 더 부르기 위함이었고, 자이언츠 역대 최고의 타자를 한 번 더 눈에 담기 위함이었다.
그의 마지막 시즌을 보며 느낀 건 지난 20년 롯데는 패배에 더 익숙한 팀이었지만, 그의 타석만큼은 승리에 더 익숙했다는 거다. "아무나 와라. 우린 이대호 있다!"라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던 선수. 어쩌면 누군가는 이대호를 팀보다 위대한 선수라고 할 거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을 싫어할 것 같다. 긴 시간 응원했던 입장에서 정리하자면, 그는 팀이 주지 못한 뭔가를 줬던 선수다. 무능한 구단이 만들어 주지 못한 멋진 순간을 수도 없이 만들어 준 선수. 이대호는 늘 우리의 자부심이었다.
지난 22년간 부산과 자이언츠에서 함께해줘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다음 세대의 야구팬들은 사직구장에 걸린 10번으로 당신의 존재를 어렴풋이 말하는 날이 오고야 말겠지만, 자이언츠 야구를 보는 내내 자랑할 겁니다. 그때 롯데엔 최고의 타자가 있었고 팬과 호흡했었다고, 우리 팀은 이대호를 한국에서 유일하게 가져봤던 팀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