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전설'과 '스즈메의 문단속'의 공통점?

001. 신카이 마코토와 팔콤의 JRPG

최근 백수골방님과 팟캐스트, GV, 그리고 식사 자리에서 <스즈메의 문단속>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백수골방님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창기부터 관심이 많았기에 많은 걸 새롭게 알 수 있었던 시간인데요. 한 감독의 세계관과 관심사를 관통하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무척 흥미로웠죠. 특히, 장편에서 더 뚜렷하게 보였던 '세카이계'라는 세계관에 관심이 많이 생겼는데요. 주인공들의 관계가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서사, 어린 친구들이 거대한 사명을 짊어지는 설정 등이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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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설정에 눈이 갔던 건 기시감 탓입니다. 어떤 작품에서 이런 세계관을 봤었나 고민하다 결국 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이 아니었죠. 90년대 팔콤(Falcom)에서 출시했던 '영웅전설'의 세 번째 이야기 '하얀마녀'에서 유사한 설정을 봤었습니다. 약 25년 전에 플레이했던 게임이라 기억이 완벽하진 하지만, 한 소녀가 세계의 존속을 위해 희생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 생각해보니 영웅전설과 이스 등 팔콤 내 게임이 이런 세계관 안에서 서사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팔콤 뿐만이 아니라 당시 일본 RPG엔 이런 요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있음에도 어린 주인공들이 세상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서사들 말이죠. 최근 재미있게 즐겼던 '영웅전설 영/벽의 궤적'에도 이런 설정이 있었는데요. 이 시리즈의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몇몇 상황과 대사에서 신카이 마코토의 <날씨의 아이>가 많이 겹쳐 보였습니다. 한 사람의 희생을 통한 세계의 평화와 행복. 이에 관해 팔콤과 신카이 마코토는 유사한 선택을 합니다. 대학을 졸업했던 1995년, 신카이 마코토가 커리어를 시작한 곳이 팔콤이었기에 어쩌면 그도 팔콤과 일본식 RPG의 공기 안에서 여태 이야기를 만들어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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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객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에서 개연성과 당위성, 캐릭터 설정에서의 디테일에 의문을 던져왔습니다. 갑작스러운 인물 간의 감정 및 관계 변화는 운명론적 세계관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죠. 팔콤과 일본식 RPG도 이런 경향성을 갖고 있지만, 게임은 긴 플레잉 타임으로 빈 부분을 보완합니다. 유저는 오랜 시간 게임 속 시공간을 여행하면서 그 세계관에 몰입하게 되죠. 거기서 게임 속 서사는 많은 개연성을 획득하거나, 획득하는 것 같은 환상을 만듭니다. 애니메이션의 상영 시간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게임의 플레잉 타임보다는 턱 없이 짧죠. 그래서 일본식 RPG와 유사한 설정과 세계관을 공유함에도 애니메이션에서 서사적 결함이 비교적 더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것 같네요.


게임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RPG 게임에서 필드 위를 뛰어다니는 시간은 이야기 전개에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세계관과 유저를 동기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그 세계 속에 빠져드는 과정이 그 지루한 이동 안에 있을 수 있죠.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에서도 그런 효과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경험을 주지 못하면 꽤 지루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옛 감성을 복원한다는 점에서 '영웅전설 영/벽의 궤적'을 재미있게 즐겼지만, 이 게임에 몰입했던 건 결국 이미지가 아니라 후반부 몰아치는 이야기에 있었죠. 때문에 팔콤이나 과거 RPG를 향한 추억이 없는 현재의 게이머에게 이 게임을 쉽게 추천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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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와 <스즈메의 문단속>, 그리고 '영웅전설 영/벽의 궤적' 의 엔딩을 보고 난 뒤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팔콤 혹은 일본식 RPG의 세계관에서 신카이 마코토가 벗어나는 순간, 그의 하나의 시기가 끝나고 새로운 시기로 들어가는 문이 열릴 것만 같은 기대. 어쩌면 그의 작품 진화에 있어 마지막 문지기가 팔콤의 게임일 수도 있겠네요. 그의 새로운 단계를 기대하면서도, 또 한 번 팔콤에서 작업을 해주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