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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Jan 11. 2024

'진 여신전생'에서 느낀 상실감과 동료애

002. 진여신전생 V 포켓몬스터

뒤 늦게 <진 여신전생 5>에 빠져 지냈습니다. 모처럼 얻은 휴가로 떠난 일본에서도 닌텐도와 함께했었죠. 게임의 무대가 되는 곳에서 플레이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으로 가져갔지만, 공항에서 대기할 때에만 편하게 게임을 했던 것 같네요. 식당에서 대기줄이 길 때 사용해도 좋을 것 같은데, 아무튼 그 정도로 게임의 세계관에 몰입해서 즐겼습니다. 70시간 넘게 무너진 도쿄에서 방황했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서야 긴 여정이 끝났네요.


닌텐도 스위치판 '진 여신전생 3'의 엔딩을 본 게 오래되지 않았기에 오버랩이 많이 되었습니다. 다시 만난 악마들이 반가웠고 월등히 향상된 그래픽이 신기했었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진 여신전생 3'은 리마스터 버전이라고 해도 2003년 '플레이스테이션 2'에서 활약한 게임이 베이스였습니다. 과거의 흔적을 완전히 지울 수 없었던 거죠. 더불어 '진 여신전생 5'에서는 현대적인 감각과 편의성 부분에서의 업그레이드도 많이 볼 있었습니다. 다만, 여전한 것도 있었어요. 필드에서 길 찾는 게 너무도 번거로웠습니다. 미니맵엔 높낮이 표현이 안 되어 있어 헤맬 일이 많았고, 이동 중 아래로 떨어지기도 해서 혈압 오를 일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망가지고 절망뿐인 게임 속 세계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었네요. 단언컨대 게임의 진짜 악마는 미니맵입니다.


# 편리해서 상실하는 것들

'진 여신전생 3'과 비교해서 그래픽의 발전만큼이나 인상적인 건 필드에서 적을 만나는 방식의 차이였습니다. 전 편은 필드를 돌아다니다 확률적으로 적과 조우하게 됩니다. '랜덤 인카운터'라고도 부르는 방식이죠. 반면, 이번 편은 필드에 적이 보이고 이들과 부딪힐 때 전투가 일어납니다. 전투를 선택하고 예측할 수 있게 변경된 거죠. 이런 방식을 '심볼 인카운터'라고 합니다. 요즘은 심볼 인카운터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진 여신전생'은 3편과 5편을 짧은 기간 내에 같이 즐기면서 두 방식의 차이를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전엔 기술력의 한계로 대부분의 JRPG가 랜덤 인카운터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언제 전투를 하게 될지 몰라 긴장해야 했었죠. 마을에 가서 회복을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의 전투는 악몽 같았고, 간절히 전투에서 빠져나오길 바라며 '도주' 키를 눌러봤을 분들이 있을 겁니다. 무사히 마을에서 회복하고 저장하면 그렇게 행복했는데, 기억하시나요? 그리고 랜덤 인카운터는 몇 칸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전투가 이어져 지치고 짜증나는 면도 있었습니다. 찾는 까다로운 게임일수록 스트레스는 더 했죠.


그때는 대안이 없어 당연하다 생각하며 이겨냈었습니다. 하지만 심볼 인카운터의 편의성에 익숙해진 지금은 어떨까요. 더 쾌적한 방식이 있다는 걸 알기에 불편함을 호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전의 그런 방식에 익숙한, 지금은 올드 게이머라고 불리는 분들이 아니라면, 참기 힘들 겁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시절 랜덤 인카운터에서 느꼈던 감정과 성취감도 서서히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심란했습니다. 추억이기에 보정된 부분이 있나 봅니다. 불편함도 추억이라고 그걸 잃는 게 싫은 걸까요. 그렇게 싫었던 것들이 막상 없어진다 그러면 그리워지는 건 무슨 심보인지.


#도구화된 동료

진여신전생은 필드에서 만나는 악마를 포섭해 동료로 맞이해야 합니다. 이들과 함께 여행하며 적과 싸워야 하죠. 악마라는 소재가 특이할 수 있으나 이건 게이머들에게 굉장히 익숙한 방식입니다.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포켓몬스터' 시리즈도 필드에서 몬스터를 잡고 동료로 함께 싸우죠. 동료의 육성과 성장은 JRPG를 대표하는 특성으로 개인적으로는 유년기부터 좋아했던 장르입니다. 그런데 유독 '진 여신전생' 시리즈에서만 느끼는 공허함 같은 게 있어 기록해 둘까 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포켓몬스터'와 '진 여신전생'의 골격은 비슷합니다. 적의 상성을 고려해 유리한 타입의 동료를 구성해야 하는 것도 그렇죠. 그러나 육성 과정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포켓몬스터는 몬스터를 성장시키다 '진화'라는 걸 통해 능력을 향상시킵니다. 이와 달리 '진 여신전생'은 '합체'를 통해 악마들을 조합해 더 강한 악마를 소환해 내죠. 더 강한 동료가 된다는 건 같지만 성격은 완전히 다르죠. '포켓몬스터'의 진화는 기존의 몬스터의 외형이 조금 더 성숙하게 변하는 반면, '진 여신전생'의 합체는 기존의 동료와는 전혀 외형과 성격을 가진 악마가 생성됩니다. 이전 악마가 가지고 있던 기술을 전달하는 것 외엔 두 악마 간의 연속성이 거의 없죠.

이런 연속성이 없던 탓에 '진 여신전생'의 동료에게 유대감과 친밀감이 쌓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게임을 즐기는 다양한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에게 이입하고, 그의 시점에서 상상의 세계를 체험하는 데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RPG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이런 게임에 이입하다 보면 함께 여행하는 동료에게 친밀감을 느끼고는 합니다. 예를 들면 '포켓몬스터'에서 스타팅 몬스터에게 유독 애정을 느껴, 그 몬스터의 능력치가 낮더라도 끝까지 함께하는 편이죠. 수십 시간을 함께 여행하면서 정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진 여신전생'은 초반에 얻은 동료로 끝까지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난이도도 너무 높아 보였습니다. 무난한 진행을 위해 저는 더 강한 악마를 포섭해 기존 동료를 대체하거나, 기존의 동료를 조합해 더 강한 악마를 소환했습니다. 이때, 여태 같이 있던 동료를 제물로 바치는 듯해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자본주의 속에서의 계산적인 인간관계와 거대 조직의 폭력적인 시스템이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하더라고요. 동료들이 도구적 존재로서만 가치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JRPG의 동료들이 서로 친구나 라이벌, 멘토 등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과 분명 달랐죠.

특히, 엔딩에서 느끼는 감정이 달랐는데요. 타 JRPG는 오랜 시간 같이 한 동료와의 여행이 끝나는 느낌이었다면, '진 여신전생'은 엔딩에서 '아오가미'라는 존재가 늘 함께하기는 했지만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아 공허했습니다. 함께 추억을 돌아볼 이들이 없는 듯했죠. 게임에 너무 과몰입하는 걸까요?


잡다한 이야기를 많이 털어놨네요. 결론은 턴제 RPG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분들에게 '진 여신전생 5'를 추천드린다는 겁니다. 네, 그냥 이걸 공유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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