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내용은 드라마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처 : MBC 《옷소매 붉은 끝동》 공식 홈페이지 현장 포토
소설책 한 권으로 동궁 궁녀들의 이목을 집중하게 한 명랑한 궁녀가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성덕임이다. 덕임은 어릴 때부터 역적의 아들로 몰린 오라비를 구원하겠다는 일념으로 백 냥의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동궁 내에서 소설책을 맛깔나게 읽어주는 이야기꾼으로 유명한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덕임은 소설책을 읽어주는 일 외에도 궁녀들 사이에서 우수하게 평가받는 필체로 소설책을 필사해 돈을 벌기도 했다. 여느 때와 같이 동궁의 서고에서 부업(?)을 하며 백 냥을 거의 채워가려던 그때, 웬 사내 한 명이 동궁의 서고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 남자, 몇 마디 나눠보니 자신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거만했고 성격은 왜 이리 까탈스러운지. 덕임은 본업으로 돌아와 소금을 뿌리며 남자를 내쫓는다.
얼떨결에 소금에 절여진 갈치가 돼 내쫓긴 남자는 당황스러웠다. 이 서고는 내 것인데 웬 명랑한 궁녀에게 면박을 받으며 내쫓겼다. 그렇다, 이 남자는 누구도 쉬이 건드릴 수 없는 조선의 왕세손 이산이었다. 심지어 동궁 소속 궁녀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내쫓았다. 지금으로 본다면 직원 한 명이 대표에게 소금을 뿌리며 내쫓은 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산은 덕임이 괘씸했다. 그래도 이번 일은 심히 당황스러워서 그냥 넘어가려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덕임은 모든 궁녀가 두려워하는 왕세손에게 또 사고를 쳤다. 결국 덕임은 벌 받을 것이 자명해졌고 그녀에게 마침내 내려진 극형, '반성문 써오기'. 이야기꾼이자 필사 장인으로 나름 궁녀들 사이에서 문인으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생각한 덕임은 반성문 쓰는 것을 쉽게 생각하며 안심했다.
출처 : MBC 《옷소매 붉은 끝동》 공식 홈페이지 현장 포토
덕임은 기고만장해하며 쓴 반성문을 들고 왕세손을 알현하러 갔다. 반성문과 함께 엎드려 있는 덕임을 보고 서고에서 자신을 소금으로 절인 궁녀라는 사실을 알아챈 왕세손, 덕임이 걸작이라 생각했던 반성문에 시뻘건 붓으로 찍찍 긋고 다시 써오라는 명을 내린다.
사실 왕세손이 내리는 반성문이라는 벌은 혹독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왕세손의 누이였던 공주들이 덕임에게 도움을 주려 했으나 반성문을 쓰는 벌이 주어졌다는 덕임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질색하며 포기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래도 덕임은 왕세손의 명이니 계속 고쳐서 제출했지만, 내용이 흡족하지 않았는지 수없이 빨간 선을 그으며 덕임을 되돌려 보냈다. 그렇게 수없이 세손의 피드백을 받고 돌아가며 마침내 반성문 미션에 성공한 덕임. 남은 것은 자기가 모시는 세손을 미워하는 감정뿐이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분명 세손이 미운데, 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세손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아팠고 신경 쓰였다. 왕세손도 이상함을 느낀 건 마찬가지였다. 분명 어릴 때부터 궁녀를 싫어했기 때문에 멀리하기에 바빴는데, 덕임은 왜 계속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일까. 개와 고양이처럼 겉으로는 서로 싸우기 바쁜 이 둘, 과연 어떻게 될까?
출처 : MBC 《옷소매 붉은 끝동》 공식 홈페이지 현장 포토
최근에는 《구르미 그린 달빛》, 《백일의 낭군님》 등 사극 로맨스 장르의 드라마가 꽤 나왔던 지라 《옷소매 붉은 끝동》이 인기가 있었다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몇 가지 특색 있는 점을 살펴볼 수 있었기에 조금 색다르게 봤었던 것 같다.
우선 궁녀였던 덕임의 이야기가 뻔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덕임은 동궁 소속 궁녀였기에 동궁 이외의 남자와 그리는 일상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덕임은 이 기구하고도 잔인한 궁녀의 운명에 순응하며 동궁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결말도 결국 지존으로 즉위한 세손의 후궁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크게 깨진 않았다.
하지만 덕임은, 후궁이 되고 싶으면서도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제조상궁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의 궁녀들은 기구한 운명에서 그나마 벗어나기 위해 왕에게 간택되는 후궁이 되기를 원하지만, 덕임은 마냥 이렇게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작중에서 드러나듯, 후궁이 되면 다른 궁녀들과 달리 궁 밖을 벗어날 수 없고 거의 갇혀 지내듯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을 겪으며 무료하게 살아야 한다는 점이 덕임에게는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궁녀들의 운명은 심히 가혹하다. 힘든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오직 자신이 섬기는 사람에게만 한정돼야 하고, 설사 이게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억압된 자유'를 누려야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억압된 자유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어머니의 모습에 투영된 것 같았다. 수많은 여성은 자신의 꿈을 펼치며 살아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경력 단절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커리어 우먼의 위상을 잠시 내려놓고 육아에 전념하다 일터에 되돌아가는 그 당연하면서도 위대한 공백을 아직 우리 사회가 곱게 바라보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점이 아이 낳기 좋은 세상이 아닌 이유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출처 : MBC 《옷소매 붉은 끝동》 공식 홈페이지 현장 포토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포인트는 정조의 내면을 그렸다는 점이다. 세종과 장영실처럼 정약용과 함께 조선의 발전을 이룩한 성군 정조의 외면적 모습은 역사 만화책을 조금만 읽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정조는 정사를 돌보며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이다. 선왕 때부터 신하들은 파를 나누어 대립하기에 바빴고, 정조는 탕평으로 중재와 화합에 애썼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 속에서 지친 정조는 위안을 가족 즉,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찾고자 했다는 내면적 이야기를 그렸다. 산이 덕임에게 마음을 전할 때도 가족이 되고 싶다는 말을 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정조가 바쁘게 정사를 돌보는 와중에도 시간 나는 대로 덕임을 찾아 내적 평안을 얻은 것처럼 성군으로만 비친 정조도 그저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하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미워하는 것도 아니옵니다.
그저 다음 생에는... 신첩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것이옵니다.
이것이, 과거라 해도 좋다. 꿈이라 해도 좋아. 죽음이어도 상관없어.
오직, 너와 함께하는 이 순간을 택할 것이다.
그리고 바랄 것이다. 이 순간이, 변하지 않기를.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덕임과 산의 사랑은 이뤄졌다고 봐야겠으나, 어쩌면 엇갈린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기 마련이다. 사랑보다 개인의 자유로운 일상이 더 소중했던 덕임과 사랑하는 가족을 통해 삶의 위안을 얻으려 했던 산의 가치관에는 차이가 존재했다. 산도 덕임이 자신과 가족이 되면 자신의 이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권력으로 덕임과 강제로 가족이 될 수 있었음에도 굳이 그러지 않았다. 덕임의 입장을 존중해 스스로 마음을 돌릴 때까지 정조는 그저 기다린 것이다.
정조, 조선 역사에서 필두로 다뤄야 할 성군이다. 하지만 정조를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로 그린 이 드라마, 정조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 것 같다. 이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사랑의 제약을 보여주며 마지막까지 본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바랐던 덕임의 모습도 마음 한구석에 와닿는다. 부디 이들의 순간이 찬란한 영원이 되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