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맴도는 세 가지 - 1

1. 생각에 대한 생각

by 이성룡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세 가지로 정리되어 설명하는 것, 즉, 우리의 생각을 맴도는 세 가지 들이 참 많다. 예를 들면 “세상에 없는 것 세 가지”, “마지막에 남기고 가는 것 세 가지”, “인간의 생존전략 세 가지”, “세상의 세 가지 독, 탐진치” 등 참 다양한 세 가지가 있다. 이처럼 우리의 생각에 떠다니는 세 가지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해 보고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삶의 과정에 우리가 헤매고 있는 고통의 바다에서 빠져 나와 우리 인생의 목적인 행복한 삶을 실현하는 방법에 대하여 논의 해 보도록 하자.


먼저, “1. 생각에 대한 생각”에서는 누가, 무슨 목적으로, 왜 태어나게 했는지 모른 채 탄생(Birth)해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혼자, 빈손으로 죽음(Death)을 맞이해야 하는 삶은 B와 D사이의 C일 텐데, 어떤 C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 한다. 다음에 “2.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우리가 필연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죽음, 그때 마지막에 남기고 가는 것 세 가지를 심도 있게 생각해 본 다음, 단 한번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논의 하고 바람직한 자아상을 제시한다. 다음, 우리의 삶이 그저 본능적으로 살아도 고통스러운데, 스스로 확립한 자아상대로 살기는 더 어렵다. 그래서 “3, 사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가?”에서는 우리 삶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해결 방법도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4. 행복하게 사는 법“에서는 3장에서 검토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들을 기반으로, 이를 실현하여 삶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 해 보고자 한다.



생각을 맴도는 세 가지 - 1


1. 생각에 대한 생각


우리는 생각하는 동물이다. 석가모니는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 중에 헛된 가르침 세 가지가 있다고 설파하였다. 이는 다음과 같다.


1) 타고난 운명이 있다.

2) 모든 것은 신의 뜻이다.

3) 원인이 없다. -석가모니-


만약 이 세 가지가 헛된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자유 의지가 아닌 누군가가 정해놓은 프로그램대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이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일갈하면서 세상은 “인연과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선언한다. 이는 현대 학자들에 의해 행동결정론(Behavioral determinism)으로 수렴되었다.


우리는 “누가, 무슨 목적으로, 왜” 탄생시켰는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어 본질을 규정할 수 없는 실존이다. 덕분에 우리에겐 자유가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자유 의지와 목적으로 원인이 되는 “인연”을 만들면서 산다. 여기에 세상의 “우연”이 더해져서 “결과”를 얻는 것이다. 따라서 삶은 결과 보다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왜 사는가?”가 아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에 대한 노자의 가르침을 한번 살펴보자.


생각을 조심하라. 생각은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하라. 말은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하라. 행동은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하라. 습관은 인격이 된다.

인격을 조심하라. 인격은 운명이 된다. -노자-


생각이 자신의 운명을 만든다는 것은 알겠는데, 무얼 어떻게 생각하며 살라는 것인지 막연하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세상에 없는 세 가지”를 생각해 보자. 세상에는 정답, 비밀, 공짜가 없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이를 줄여서 “정비공”이라고들 한다. 정비공이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기 유지보수(self-maintenance), 즉 정비공이 없으니 자기 삶은 자기 스스로 만들고, 운전하고, 고치면서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무위도식(無爲徒食)”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유위도식의 자세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삶의 기본자세는 “성실”이다. 이를 바탕으로 “세상에 없는 세 가지”에 어떻게 대응하고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 알아보자.


1) 정답이 없다.

우리는 우리를 만든 목적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본질을 규정할 수 없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실존이다. 서로를 즉자가 아닌 대자로 대해야만 한다. 그러니 0과 1, 선과 악처럼 디지털식 이원론으로 구분하여 주인공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규율권력을 만들며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인연생기(因緣生起 : 연기)로 태극, 음양처럼 존재하는 일원론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게다가 세상은 얼핏 보면 꽉 차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세상이든 이를 이루는 물질의 기본인 원자든 내부의 99%는 텅 비어 있다. 이는 아무 것도 없음(Nothing)이 아니라 엔트로피(Entropy)가 극대화된 상태임을 의미한다. 세상은 완전한 자유도를 가진 그래서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 인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현소포박(見素抱樸)이다. 우리도 세상 따라서 마음을 비우려 노력한다. 역설적으로 마음 비움의 목적은 무념무상의 평온을 넘어서 세상으로 채움이어야 한다. 이것이 상선약수(上善若水)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언제나 모두가 싫어하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니 생이불유(生而不有), 위이불시(爲而不恃), 장이부재(長而不宰)하는 물의 모습이 삶의 롤 모델이 되어야 한다. 노자는 세상을 사는데 비록 정답은 없지만, 흐르는 물의 모습처럼 살라고 한다.


2) 비밀이 없다.

세상엔 금고도 비밀번호도 없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세상은 천지불인(天地不仁)이고 화광동진(和光同塵) 한다. 태양은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비춰준다. 양지를 택하든 음지를 택하든 각자의 자유이다. 세상은 나에게만 또는 다른 누구에게만 은밀하게 혜택을 주거나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일 뿐이다. 그러니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3) 공짜가 없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세상에 내가 뿌린 씨앗(원인, 인연)에 대한 인과응보(因果應報)가 비용(책임)으로 따라 온다. 이를 우리는 고통으로 인식하지만, 사실은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 삶의 지혜를 터득하며 산다. 인과응보에 대응하는 정답은 없지만 삶의 지혜는 있다. 대추나무에 염소를 묶어두는 지혜 말이다. 염소의 대소변이 거름이 되어 대추 수확을 늘리고, 염소는 대추나무를 흔들어 떨어지는 대추를 먹으며 체력을 키운다. 한편 대추나무는 부실한 대추를 떨어뜨리고 선택과 집중으로 대추를 실하게 한다. 둘 다 윈-윈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염소가 너무 힘이 세면 대추나무가 죽는다. 그러니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마치 연날리기 할 때 연을 더 높이 날리려고 연줄을 끊으면 더 높이 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추락하는 것처럼 말이다. 불행을 없애면 행복할 것 같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살다보면 걸림돌이 디딤돌이 되기도 하고 디딤돌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인생 만사 새옹지마이다. 과유불급이다.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세가지_1_Gemini.png 생각에 대한 생각 by Gemini

결론적으로 상선약수, 흐르는 물처럼 세상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살라는 것이다. 무슨 소린지는 알겠는데 좀 추상적이어서 실천하기는 좀 막연하다. 더군다나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시대에 탐욕을 버리고 만족하며 살라니 받아드리기 버겁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하여 우리가 모르는 것 세 가지와 아는 것 세 가지를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이에 반하여 우리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1) 우리는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

2) 결국엔 혼자 죽는다.

3)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세 가지이다.


우리는 누가, 무슨 목적으로, 왜 탄생 시켰는지 모르지만, 두 주먹 불끈 쥐고 호령하며 태어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면서 제 멋대로 살다가 결국엔 빈손으로 돌아 가는 것이다. 어차피 빈손으로 가는 것인데, 무한경쟁하며 아등바등 탐욕에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 만족할 줄 알며 흐르는 물처럼 살아 보자.


그러므로 삶은 결국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의 C이다. 그것도 Choice(선택), Conduction(실천), and Check(성찰)의 세 가지 3C를 수행하며 사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정비공이 없는 세상을 스스로 어떻게 선택과 실천하고 성찰하며 사는 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자유의지와 목적으로 이 3C를 “어떻게 수행할 것이냐” 이다. 이 “어떻게”는 앞에서 언급한 정비공이 없는 세상의 세 가지 내용을 종합해 보면 유위도식의 자세로 “실랑손”을 잡는 것이다. 즉,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은 “성실, 사랑, 겸손” 이 세 가지이다. 삶을 성실하게 실천(Conduction)하고, 겸손한 자세로 성찰(Check)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지혜롭게 선택(Choice)하면서 살아가자는 것이다. 이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이어나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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