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앞에서 정답, 비밀, 공짜가 없는 세상을 스스로의 자유의지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Choice, Conduction, and Check 이 세 가지를 “성실, 사랑, 겸손”의 마음으로 수행하자고 논의 하였다. 이를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하여 단 한번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하면 후회하지 않고 의미 있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든 마지막에는 사랑을 얼마나 베풀고 살았는지, 얼마나 품위 있게 살았는지, 내 것이 아닌 운명을 얼마나 영광스럽게 포기하고 살았는지, 이 세 가지만 남기고 간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관점을 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살아가고자 하는 자유의지와 목적 그리고 행동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인가를 판단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의 후회하지 않는 삶, 가치 있는 삶을 위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하여 이 세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1) 사랑을 얼마나 베풀고 살았는가?
애플 창시자 스티브 잡스는 전성기 시절 “진정한 만족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워커홀릭이었고 부와 명예 모든 측면에서 업적을 쌓은 인물이다. 이런 잡스가 질병으로 56세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했는데, 죽음을 앞두고 중환자실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남긴 말이 “평소 가까운 사람들과 좀 더 많이 사랑을 나누며 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라고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성공적인 인생을 산 잡스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후회한 것이다. 이러한 예는 평범한 일반인들도 같은 생각인 것 같다. 뉴스를 장식하는 비행기 추락 등의 재난 상황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마지막 SNS가 “엄마 사랑해”인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삶의 진정한 의미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사랑인 것이다. 우리에게 단 한 번 주어진 인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매순간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사는 것이다. 진정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은 풍요가 아니라 사랑인 것이다.
2) 얼마나 품위 있게 살았는가?
사람이 품위가 있다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것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실천하고 사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우리의 가치 있는 삶의 실천 규범을 알아보기로 하자.
• 인(측은지심[惻隱之心])
공자는 인을 설명할 때 사람을 사랑하는 것(애인[愛人])이라 하였다. 이는 위 첫째 항과 같은 내용이므로 여기선 생략한다.
• 의(수오지심[羞惡之心])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다. 한마디로 선의후리(先義後利 : Think the justice and the profit), 즉 이익을 계산하기 이전에 정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 정의를 생각할 때 기계적 공정만이 아닌 선천적으로 주어진 재능과 배경, 사회•문화적 혜택까지를 반영하여 형평(Equity)을 반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 예(사양지심[辭讓之心])
예는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공자는 이를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으로 설명한다.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며 예를 행하는 것이 바로 인의 실천 규범이라고 설파했다. 구체적으로 내가 욕심나지 않는 것,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이 하도록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예수가 “나는 섬김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설파한 것과 일치한다. 우리가 인의(仁義)의 마음으로 실천하며 산다는 것은 사랑, 그것도 섬김의 사랑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 지(시비지심[是非之心])
세상을 살면서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이다. 공자는 지혜를 이야기 하면서 배움의 목적은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하는 것이 아니고, 활쏘기의 목표는 명중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저마다의 능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시비지심을 위해 기본적으로 호학(好學), 즉 배우는 것을 좋아하며 지호락(知好樂)하며 살라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知)은 좋아하는 것(好)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樂)만 못한 것이다. 그러니 먼저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인자지 자지자명(知人者智 自知者明), 사람을 아는 자는 단지 지혜롭지만, 자신을 제대로 아는 자가 명철한 것이다. 자기 능력의 최대 한계를 명확히 알고, 좋아하며 잘 할 수 있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다(知). 궁력거중 불능위용(窮力擧重 不能爲用), 전력을 다해 무거운 것을 들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탐욕에 맞설 수 있는 7가지 기본재(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 조화, 우정, 여가)가 최소 기준을 충족한다면 만족(滿足)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만족은 머리까지 꽉 채우는 것이 아니라 다리까지 채우는 것이다. 머리까지 채우면 숨도 쉴 수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니 주어진 삶을 긍정하고 만족의 여유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好),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樂) '지호락'의 자세로 사는 것이 삶의 지혜라는 것이다.
3) 내 것이 아닌 운명을 얼마나 영광스럽게 포기하고 살았는가?
여기서 말하는 운명은 미리 정해진 사주팔자 같은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누구는 머리가 좋고, 누구는 운동을 잘한다. 운동 능력이 없는 사람이 손흥민 같은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것은 무모한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운명)을 명확하게 알고 능력에 맞는 일을 즐기며 사는 것이 지호락이요, 삶의 지혜인 것이다. 메멘토모리(Memento Mori),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 한번 뿐인 인생이다.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죽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겸손하게 자신을 제대로 알도록 하자. 아모르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타고난 재능은 바꿀 수 없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하자. 카르페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주어진 재능은 어쩔 수 없지만, 바로 지금 더 가치 있는 미래를 위한 원인을 만들 수는 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답을 얻기 위해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았던 마지막에 남기고 가는 것 세 가지를 살펴보았다. 이를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는 지호락, 만족의 여유, 섬김의 사랑이다. 이 중에서 으뜸이 “섬김”이라 생각한다. 섬기는 것은 섬김 받는 것보다 매우 어렵다. 그렇긴 하지만 섬김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어야 사랑도, 만족의 여유도, 지호락도 실천할 수 있다. 그러니 섬김에 대해 좀 더 깊게 살펴보기 위해 다음 이야기를 음미 해보도록 하자.
우리에게 오는 모든 기쁨은 행복을 함께하며, 서로 나누는데서 오고, 우리에게 오는 모든 고통은 자기 혼자만의 행복을 움켜쥐는데서 온다. 또 연민은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고, 친절은 누군가의 행복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다. 천국과 지옥의 긴 젓가락 이야기처럼 연민과 친절의 기쁨으로 행복을 누리는 천국은 섬김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무엇을 채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무엇을 비우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에릭 시노웨이-
탐욕으로 마구 채워 얻는 풍요 보다는 마음을 비워내어 얻는 섬김의 사랑을 실현하며 사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삶,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이다. 그럼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내가 강가에서 깨달은 것은
참는 것과 듣는 것,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다. -싯다르타-
여기서 참는 것은 자기 수용성(Self-acceptance)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삶이다. 그러니 삶은 주어진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있다. 기왕에 일어난 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만족의 여유로 즐겁고 현명하게 대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듣는 것은 관계(Positive relations with others)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만 행복을 움켜쥔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삶은 나 혼자 무엇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행복을 함께하며 섬김의 사랑을 서로 나눌 수 있는 누가 있느냐에 달려있다. 사랑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받을 만 하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 이것이 섬김의 자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은 만족의 여유로 섬김의 사랑을 실현하며 지호락을 꿈꾸는 것을 자아상으로 정립하고 삶의 이정표로 삼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삶에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 말, 시간, 인생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한번 뿐이다. 지금은 영원히 다시 올 수 없다. 한번 뿐인 삶을 후회하지 않고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바로 지금 우리의 생각이 중요하다. 생각이 운명이 된다. 과거는 흘러간 물이다. 바꿀 수 없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로 지금 아름다운 미래를 위한 원인의 인연을 만들어 낼 수는 있다. 지금 만족의 여유로 섬김의 사랑을 실현하며 살자. 그러는 과정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세 가지가 있다.
1) 나쁜 일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우리는 천지불인한 세상의 우연 속에서 살아간다. 살다보면 내 생각대로만 살 수 없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좋은 일도 생길 수 있지만, 나쁜 일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좋은 삶은 나쁜 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대처하는데 달려있다. 그러니 행복한 삶은 만족의 여유에서부터 출발한다.
2) 내가 주인공이라 착각하며 산다.
우리는 세상과 분리해서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세상은 나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과 WWW(World Wide Web)처럼 연기(緣起)로 얽혀 있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내 자유의지와 목적으로 “인연”의 원인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세상으로 인한 “우연”이 더해져서 “결과”를 얻는 것이다. 그러니 삶은 결과 보다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섬김의 사랑을 실천하며 한걸음씩 걸어가는 것이다.
3)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하늘의 뜬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처럼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세상뿐 아니라 내가 나의 주인이라 생각하는 나의 자아조차 변화한다. 제법무아요, 제행무상인 것이다. 그러니 내 손에 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아니 좋아하는 일, 싫어하는 일, 빠져드는 일에 어리석게 집착할 필요가 없다. 지호락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만족의 여유로 섬김의 사랑을 실현하며 지호락 하자. 이걸 우리가 몰라서 실천 안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600만년 동안 우리를 진화시켜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준 생존전략과 이로 말미암은 두 번째 화살이 우리를 고통의 바다에 빠뜨려 버린다. 우리가 누구인가? 만물의 영장 아닌가? 다음 장에서는 우리가 고통에 빠지는 원인을 알아보고 그런 다음 그 고통의 바다에서 빠져나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