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가?
흔히들 우리는 고통의 바다를 헤매며 살고 있다고들 한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모르는 상태에서 현재 내 앞에 주어진 일들이 버겁기 때문 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위도식을 꿈꾸며 사는데, 이미 그렇게 사는 일부 유한계급의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고통스러운 현실의 무게감으로 짓눌리게 된다. 우리가 매일 매순간 고통스럽지만은 않은데 왜 삶은 고통이라고 이야기 하며 우리는 살아갈까? 이에 대한 기본적인 해답은 우리의 생존전략에 담겨 있다. 우리는 침팬지로 부터 분리되어 만물의 영장이 된 현재까지 약 600백만 여 년 동안 세 가지 생존전략으로 진화해왔다.
1) 분리 : 자신과 세상을 구분 짓고, 주인공으로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함.
2) 안정 상태 유지 : 심신의 건강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함.
3) 기회 추구와 위험 회피 : 생존과 번식을 위함.
이 세 가지 전략은 우리 인류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이 우리의 생존전략에 맞추어 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우리와 상관없이 운행하기 때문에 실제와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 생존전략에 대한 현실 세상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1) 연기 : 세상 만물은 WWW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
2) 제행무상 : 세상만사 뿐 아니라 나 자신 조차도 끊임없이 변화함.
3) 기회추구는 대부분 충족되지 않고, 무수한 위험이 상존하고 있음.
비록 우리의 생존전략이 생존을 넘어 우리를 만물의 영장으로 성장 시켜 주었지만, 이상 언급한 바와 같이 현실 세상과의 괴리는 그 간극의 정도에 상응하여 우리의 안정 상태를 깨거나, 우리를 불만족하게 만들고 위기에 노출시켜, 우리의 신경망이 통증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아 고통에 괴로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행복에 더 매달리게 되고 행복을 잡기 위해 기회 추구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쾌락과 즐거움 등과 같은 행복을 느낄 때 도파민 레벨이 활성화된다. 여기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성취할 때마다 쾌감 물질이라 불리는 엔돌핀, 옥시토신 등이 활성화고 이들이 도파민과 상호 협동하여 기쁨을 만들어내고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기회 추구 행동을 점점 더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회 추구, 즉 행복 쫓기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동기부여, 성장과 성취 등 삶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 쫓기가 과도하여 탐욕이 되면, 오히려 고통의 원인이 되어버린다. 무언가 원하는 것을 바라는 “갈망”은 그 자체로 불만족스러운 경험인데다가 사실 이의 대부분은 충족되지 않는다. 충족된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보상이 기대 이하가 대부분이다. 설사, 보상이 기대 이상인 경우에는 이를 성취한 보상에 비하여 비용 또는 대가가 매우 큰 것이다. 악전고투 끝에 마침내 갈망이 충족되고, 그것이 기대 이상의 보상도 얻고, 비용도 크지 않아서 만족을 얻는 경우에도 이제는 그 결과가 영원하지 않다. 이 때문에 다시 불만족 상태가 되어 또 다른 “갈망”이 솟아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시지프스의 바위 굴리기”의 굴레에 빠져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만족”이라는 탐욕 브레이크가 작동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 세상에서 무작정 풍요를 포기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탐욕에 맞설 수 있는 7가지 기본재(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 조화, 우정, 여가)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가질 수 있는 최소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정도에서 만족(滿足)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만족은 머리까지 꽉 채우는 것이 아니라 다리까지 채우는 것이다. 이것이 힘들다면 계획한 시간의 20%를 투입 하면 프로젝트의 80%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파레토 효과를 적용해 보자. 우리가 계획한 결과의 80%에 만족할 수 있다면 20%의 시간만 투입하면 되고 80%의 시간 여유를 확보하게 된다. 만족의 여유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궁력거중 불능위용이다. 행복은 자신의 능력 안에서 만족의 여유를 확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한편, 우리는 무한정 기회추구 전략에만 매달릴 수 없다. 기회 추구를 하는 과정에서 생길 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고, 심신의 건강과 균형을 위하여 위험 회피 전략도 수행해야 한다. 이 또한 우리의 생존뿐 아니라 심신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 우리의 생존전략은 기회 추구 보다 위험 회피 본능이 우선 작동하도록 특화되어 있다. 덕분에 우리는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험 회피 본능이 너무 과도하게 작동하면, 안정이 지나쳐 우울에 빠지게 되고, 여기에 회상용이성편향 그리고 감정예측오류까지 과잉 작동하게 되면 우울증을 넘어 고통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균형을 이루어야하듯 기회추구와 위험회피 전략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핵심 또한 스스로 “만족의 여유”를 확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제 우리의 인식체계를 한번 살펴보자. 우리는 감각하거나 지각하는 정보를 우리의 인지처리모듈이 그동안 교육과 학습, 경험을 통해 확보되어 있는 암묵기억의 방대한 정보를 활용하여 시뮬레이션을 통해 해석한 결과를 인식하는 체계를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인식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실제와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은 실제 보다 훨씬 더 근사하게 느껴지고, 싫어하는 것은 더 처참하게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인식체계는 우리의 생존과 관련 없는 상황에서도, 심지어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시뮬레이션을 수행한다. 우리가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꿈을 꾸거나 잡념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체계는 우리 앞에 직면한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진화한 것으로 오늘날 우리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여러 훌륭한 생존전략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는 직관 오류가 과도할 때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점화효과, 후광효과, 진실착각, 과신의 직관 오류에 노출되어 있고, 이 오류가 확증편향 되어 회상용이성 편향과 감정예측오류와 상호 작용하여 증폭되게 되면, 우리를 실제 현실로 부터 과도하게 유리시키고 몽환포영(夢幻泡影)의 망상에 빠뜨려 진정한 보상(만족, 내적 평화 등)을 얻을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불교에서 어리석음에 탐욕과 분노에 빠져 들어 과도하게 집착하기 때문에 고통의 바다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는 가르침과 일치한다.
이상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원인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를 종합하면,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고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의 원인은 첫째, 우리의 생존전략이 현실 세상과의 괴리, 둘째, 기회추구와 위험회피 전략 실행에 따른 불만족, 셋째 인식체계 상의 오류로 실제와 괴리된 허상의 집착, 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고통의 바다에서 나와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첫째, 우리의 생존전략이 현실 세상과 괴리가 있음을 깨달아, 탐욕과 분노를 줄여 이 괴리의 간극을 지혜롭게 유지시키고, 둘째, 불만족, 즉, 탐욕과 분노를 감소하고 이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위해 만족의 여유를 확보하고, 셋째 인식체계 상의 직관오류와 회상용이성 편향 등을 감소시키기 위해 자아상을 재확립하고 slow thinking을 통한 합리적 이성을 소환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괴리의 간극을 감소시킨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 간극을 줄인다는 것이 아니라 간극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조화와 균형을 통해 하지 않아도 될 고통에 빠지지 말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고통의 바다에서 빠져나와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함께 알아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