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강가에서

역지사지

by 이성룡

역지사지


이 성 룡


참 더운 하루였습니다.

오랜만에 학교연구실을 벗어나

민원실 몇 개와 은행 등

잡다한 일들을 하고 다녔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시간에 쫓기는 일도 하면서...


잊고 있었습니다.

무더위 한낮에 일하며 돌아다니는 것이

숨 막히는 일이란 걸.


새삼 느꼈습니다.

시계 보며 번호표 뽑고 대기자 숫자와

여유롭게 일 처리하는 근무자를

번갈아 바라보는 것이

엉덩이를 들썩 거리게 한다는 걸.


인생 경험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뙤약볕에 시멘트도 날라보았고

혹한기 야외 취침 후

살얼음 국에 꽁꽁 언 밥도 먹어보았지요.


둘도 없는 친구와도.

기둥이었던 아버지와도

대책 없는 이별도 했습니다.

죽음 문턱에도 가보았었지요.

그러고 보니 참 많은 일들을 극복하며 살았네요.


새삼 깨달았습니다.

행복도 시련도 지나가면 무심해진다는 걸.

일상생활의 패턴이 조금만 달라져도

도전의 새로운 삶이 나탄다는 걸.


끓어오르는 아스팔트 언덕길을

폐지 리어카 끌고 힘겹게 오르는 할머니를

시원한 에어컨바람으로 무장한

그랜져 안에서 바라보며

정말 짜증나는 이 무더위를

투덜대는 나를 다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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