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닳아 헤진 연말 부록같이
너저분한
몸뚱아리가 되어
펄럭거린다.
단, 한번도
표지에 오르지 못한
뒷장에
붙어있는 이름으로
펄럭거리며
안간힘으로 붙어서 날린다.
앞장에서 스며오는
빗물에 젖어
그 은은한 온도에
단, 한 번도
세상을 직관하지 못한 채로
낡고 헤진 그대로
억수로
퍼덕거리며 여기에 왔다.
시간은 나를 때리는 바람,
바람을 시간처럼 맞으며
실눈 뜨고, 고개 처박고
뵈는 것 없이 살아왔으므로
바닥없는 독 속에
앞장 없는 뒷장으로
퇴색되어
꿉꿉하고
더럽게
더께더께 두꺼워진 채
어느 분리수거장에
낱장으로
갈갈이 찢어진 나의 시대 속에서
찢어진 더미 속에서
최초로
눈 떠보는,
뒤채듯 펄럭, 펄럭
인공호흡 같은
밭은 기침 조여내듯 펄럭거려야만 하는,
남은 숨만큼이나
가빠오는
시간과,
존재와,
낡은 이름과
헤진 옷자락 사이로 비치는 불어터진 속살과
훈장처럼 길게 단 몇 가닥의 실밥으로
저 강을 건너야 하므로
흔들리지 않도록
나부끼지 않도록
부여잡고 가야 할
나의 생명이여,
나의 정신이여,
나의 주의로 얼룩진
몸동가리,
나의 깃발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