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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하루 po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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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Nov 18. 2024

깃발

낡고 닳아 헤진 연말 부록같이

너저분한

몸뚱아리가 되어

펄럭거린다.  

   

단, 한번도

표지에 오르지 못한

뒷장에

붙어있는 이름으로   

펄럭거리며 

안간힘으로 붙어서 날린다.     


앞장에서 스며오는

빗물에 젖어

그 은은한 온도에

단, 한 번도

세상을 직관하지 못한 채로

낡고 헤진 그대로

억수로

퍼덕거리며 여기에 왔다.    

 

시간은 나를 때리는 바람,

바람을 시간처럼 맞으며

실눈 뜨고, 고개 처박고

뵈는 것 없이 살아왔으므로   

  

바닥없는 독 속에

앞장 없는 뒷장으로 

퇴색되어

꿉꿉하고

더럽게

더께더께 두꺼워진 채

어느 분리수거장에

낱장으로

갈갈이 찢어진 나의 시대 속에서

찢어진 더미 속에서

최초로

눈 떠보는,

뒤채듯 펄럭, 펄럭

인공호흡 같은

밭은 기침 조여내듯 펄럭거려야만 하는,

남은 숨만큼이나

가빠오는

시간과,

존재와,

낡은 이름과

헤진 옷자락 사이로 비치는 불어터진 속살과

훈장처럼 길게 단 몇 가닥의 실밥으로

저 강을 건너야 하므로   

  

흔들리지 않도록

나부끼지 않도록

부여잡고 가야 할     


나의 생명이여,

나의 정신이여,

나의 주의로 얼룩진

몸동가리,

나의 깃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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