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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Sep 21. 2024

드라이브 마이 카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의 변주

소설은, 전부 일곱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야기집이다. 이중, '드라이브 마이카, 세헤라자드, 기노, 여자 없는 남자들'이 네 작품이 영화를 만든 직접 원전이 된다. 이들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어떤 이유에서 건 한 여자를 잃어버린 남자의 이야기다. 잃어버리기 전엔 몰랐다. 그것이 사랑이었던 줄, 그것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인 줄을. 그래서 남자는 더 이상의 여자가 없다.


이 소설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드라이브 마이 카

  -남자를 바꿔가며 정기적으로 외도하는 아내, 그녀에 대한 몰이해와 분노, 상처가 닿는 곳.

  -여자한테는 그런 게 있어요. 그건 병 같은 거예요.(p.59)

2. 예스터데이

  -기타루와 그의 여친 구리야 에리카의 이야기, 찻집 알바생으로 만난 다니무라에게 기타루는 구리야를 소개하고 사귀어보라고 한다. 에리칸 다니무라와 만난 후 학교선배와 섹스를 하게 됐고 기타루는 다니무라와 관계한 것으로 오해하고 다니무라 곁을 떠난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기타루는 해외를 떠돌며 사랑을 잃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기타루는 다니무라를 통해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꿈이라는 건 필요에 따라 빌리고 빌려줄 수 있는 거야.(p.110)

3. 독립기관

  -내 의지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기관이 있는데, 그걸 여자들의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거짓말에 도카이 역시 독립기관인 사랑이 움직였고, 그래서 기교가 없는 삶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50이 넘도록 혼자 살며 사랑 없는 나날을 즐기고 있는 도카이의 삶, 주인공 의사 도카이, 서술자 다니무라.

4. 세헤라자드

  -전생에 칠성장어였다는 세헤라자드의 첫사랑 이야기, 빈집. 기괴한 결말에 대한 예고. 결국 그녀와 하바라는 칠성장어가 되어 있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 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p.214)

5. 기노

  -외도한 아내를 용서하는 법. 출장 후 돌아온 집에서 정사를 벌이고 있었던 아내에 대한 이야기.

6. 사랑하는 잠자

  -카프카의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였다가 다시 인간으로 원상 복구했다는 가정을 현실화한 사건을 그린 소설, 잠자는 모든 것이 낯설다. 사랑도 세상도, 순수한 잠자의 모습, 모든 것을 처음 배우는 잠자를 묘사한 이야기다.

7. 여자 없는 남자들

  -14살 때의 첫사랑이 죽었고 그로 인해 얼마나 큰 상실감을 맛보아야 하는지, 사랑을 사랑하지 않은 죄에 대한 자문의 글이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 후 그녀가 어디론가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p.330)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가 엮어낸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가후쿠는 유명 연극배우다. 그의 아내는 TV탤런트다. 남편은 출장 일정이 변경되어 집으로 돌아오고 거실에서 아내의 정사를 목격한다. 상대는 출연 중인 드라마의 상대배우다. 그런 식으로 아내는 4명의 남자와 외도를 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고 아내가 자신을 싫어하거나 생활에 싫증으로 인한 일탈로 보이지는 않는다. 단지 드라마를 촬영하는 상대 배우들과의 호흡의 일종으로 본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드라마가 끝나면 아내는 그들과의 관계도 끝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제대로 상처받았어야 했다.'


 가후쿠는 후회한다. 아내의 외도장면을 목격한 순간 어떤 식으로든 분노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밝혀냈어야 했다. 그렇지 못한 그는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아내에 대한 애도도 하지 못하고 자기만이 알고 있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이 된 것이다.


신분적 천대를 받는 재일교포
 미사키를 운전수로 고용하면서 그녀의 상처를 알아내고 공감한다. 어쩌면 가후쿠의 마음속에는 그런 아무것도 아닌 여자(재일 한국인이라는 외국인)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내면에 생겼을 수도 있다. 아내의 정부 다카츠키를 그의 연극에 주인공으로 발탁하고 가까이서 그를 관찰한다. 역시 그는 부도덕한 전력을 지닌 연예인에 지나지 않았고, 역시 폭력 사건으로 경찰에 잡혀가면서 주인공에서 하차되고 자연스럽게 연출을 하던 가후쿠가 주인공 역을 맡고 연극은 계속된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연극의 대사를 통해 가후쿠는 상처를 치유받고, 이제 SABB 900 터보는 미사키의 차가 되어 있다. 미사키의 얼굴은 지금까지와 같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아니라 편안하게 풀어진 얼굴이다. 한국에서 SABB와 함께(뒷좌석에 개도 한 마리)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관계가 주는 상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영화다. 끝내 아내의 속마음을 알지 못한 채, 아내의 죽음을 맞아야 했던 가후쿠는 미사키의 대사를 통해 정리하고 있다.


 여자한테는 그런 게 있어요. 그건 병 같은 거예요.


 이건 소설 속의 대사고, 영화에서는 미사키의 사연이 등장한다. 자신을 괴롭히던 어머니에 대한 미움으로 산사태가 난 집 안에 갇힌 어머니를 구하지 않고 방치한 '간접살인자'라고 자신을 말한다. 가후쿠 역시 자신이 아내를 죽인 거라 말하고 둘은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건 아마도, '제대로 상처받'지 않은 공감이었을 것이다. 제대로 상처받지 않았다는 것은 일본어식 표현으로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여 감정을 표현하는 일본인 특유의 수동적 감정표현 방식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그때 나는 참지 않고 분노했어야 했다.'는 것으로 읽힌다.


국화를 베어야 하는 일본인의 이중성

 이런 식의 영화를 3시간 동안 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 일본 특유의 밋밋한 전개방식을 사용하고 있고, 어디에고 드라마틱한 긴장은 없다. 심지어 가후쿠가 목격하는 아내의 외도장면에서도 관객은 은밀한 장면을 엿본다는 어떤 관음적 흥분도 전달하지 않는다. 사실은 꿈틀거리는 감정선들이 요동을 쳐도 모자를 영화 소재들인데, 이런 식이다. 이걸 일본인답다고 말하면 어떨까 싶다. 안으로 삭히기,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억누른 감정으로 대화하기 기타 등등을 우리는 '예의 바른 일본'이라고 말한다. 그 묘한 잔잔하고 밋밋한 분위기, 웃어도 웃은 것 같지 않고, 울어도 운 것 같지 않은 그런 일본인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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