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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맘 쑥쌤 Mar 01. 2023

술 먹은 엄마의 전화

두 개의 마음

저녁 9시가 다 되어가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이상하다. 엄마도 나도 표현에 어색해서 전화통화를 잘하는 편이 아닌데.. 게다가 평일 저녁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일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엄마가 서운하지 않게 받아야지 마음먹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술 취한 목소리가 슬슬 들려오는데 그럼에도 술 먹었다고 전화할 엄마도 아닌데..


“내일 ㅇㅇ(첫째 이름) 입학인가?”

“에이, 엄마 내일 공휴일이거든? 내일 모레지”

“어, 근데 입학이라 뭐 해주려고 했는데 못해주겠다. 주말에 장례식장 다녀왔어. 오늘 발인했어.”

“뭐?!! 아니 왜 갑자기?!!”

“교통사고래- 너네도 운전 조심해. 너네 아빠 때문에 안 그래도 힘드니깐 말 안 했는데 이모가 서운해 할 수도 있어. 엄마도 일 있어서 오늘 이모랑 삼촌이 발인했어.“


뭔가 돈을 주고 싶으셨나.. 장례식비용은 또 얼마나 든 건가.. 육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대체 우리 엄마는 무슨 인생을 저리 고달프고 슬프게 태어난 건가.. 짧은 통화에 만감이 교차한다.


공사장 일 끝나고 얼마나 마셨는지 술김에 전화한 목소리도 듣기 싫고, 그렇게 술을 마시고 이 밤에 또 무슨 차가 안 잡힌다는 건지 택시비도 저렇게 쉽게 못 쓰고 불쌍한 인생을 엄마가 만드는 것을 알고나 있는 건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길게 얘기하지 않고 알았다 했다.


동생에게 엄마는 잘 들어왔는지 카톡을 보내 확인했다. 오늘은 왠지 꼭 확인을 해야겠다 싶었다. 나랑 몇 살 차이도 안나는 사촌오빠가 이렇게 갑자기 교통사고라니.


잠시 거실에 나가 남편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내 모습은 누가 보면 덤덤하다 하겠다. 난 아이가 다쳤다는 어린이집 소식을 듣고도 그랬다. 그리고 아이 눈 위를 꼬매는 것을 붙잡고 있다 응급실에서 눈이 보이지 않아 쓰러졌다 일어났던 적도 있었다. 오늘은 새벽 1시까지 중요한 강의 준비를 만들어야 해서 지루하지 않게 한 쪽 모니터엔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은 채로 엄마와 통화를 마치고도 멀쩡해보였다. 근데 울컥 울컥 뭔가 올라올듯 하니 그저 잠이 오지 않아 와인을 다 마시고야 누웠다.


엄마도 이래서 술을 마시는건가
꾹꾹 삼키고 눌러내려고?


나에게는 행복보다 슬픔과 놀람이 더 일찍 있었기에 작은 행복에는 놀라도 슬픔에는 잘 놀라지 않는다. 육남매의 맏이인 엄마는 일찍 아버지를 잃고, 할머니는 갑자기 하루아침에 쓰러지고 뇌수술을 받더니 요양원에 계시다 몇 년 전 하늘로 가셨다. 첫째 삼촌은 일찍 떠났고, 한 명은 사업이 망하고, 이모부는 하루 아침에 쓰러지더니 이모는 갑자기 가장이 되었다


이 때만 해도 어릴 적이다보니 큰 슬픔 없이 지나간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나에게는 스무 살이 시작이었다. 가장 친한 언니가 하루아침에 심장마비로 떠나고는 슬픔에서 한참을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스무살부터 기숙생활을 하고 혼자 견뎌온 나에게는 친구들이 전부였는데, 그 중 가장 나와 잘 맞던 언니를 잃은 것이다. 친구들은 내가 걱정된다며 찾아왔고 시간은 또 지나갔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선배가, 할머니가 또 하나둘 떠났다. 우리라도 살라고 아버지를 데려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렇게 아버지 때문에 떠났고, 마지막 병원에서 할아버지는 약 때문에 말이 나오지 않아 할머니에게 겨우 말을 했다고 했다.


내가 잘못 선택한 것 같아


내가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메세지는 이렇게 내 삶에서 만들어졌다. 죽으려고 했던 할아버지는 정작 떠나기전 후회했다. 돌이키기에 할아버지는 너무 강한 약을 드셨다.


난 종종 유체이탈하듯이 마음과 몸을 분리했었다. 내 과거의 인연과는 달리 아직 한참 어리고 순수한 아이들이 나를 보고 웃고 내가 좋다고 기대고 “엄마”를 찾는다. 책을 읽어달라고 태권도 다녀와서 신나게 떠들고 까불고 혼이 난다. 그러고도 좋다고 엄마 옆, 아빠 옆 하나씩 붙어서 잠이 든다.


이미 술김에 전화하는 사촌오빠들의 연락을 안 받은 지 오래, 행복하고 싶어서 힘들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만 가득인 가족의 연락을 아이를 낳고 끊어왔다.미리 소식을 들었어도 고민했을 텐데 엄마 덕분에 핑계를 얻었다. 아니, 아빠 때문에 얻은 핑계려나? 오늘도 아빠는 좀 더 입원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며 남편에게 전화하며 화를 내는데, 나는 누구에게 미안하다 하고, 누구에게 화를 내도 되는 걸까? 난 그럼에도 내일을 살아갈꺼다. 슬픔은 물려주지 않을 작정으로.



삶이 무한하다 생각지 마세요.
부정적인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지
마세요.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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