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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반하별 Apr 02. 2024

다 먹고 살기 힘들어 그런 거라고요

바다 갈매기의 변(辯) 그리고 공존하는 방법

끼룩끼룩~

영국 해안가에 가면 시원한 바람, 짠내 나는 바다냄새와 함께 들려오는 갈매기 울음소리가 있다. 오감을 깨우며 내가 지금 바닷가에 왔음을 느끼게 한다. 변덕쟁이 대서양바다 옆 영국 섬은 항상 바람을 함께 하기 마련인데 이 갈매기들은 웬만해서는 끄덕 없이 자유로운 비행을 즐긴다. 그 모습이 멋져 넋을 놓고 바라보기도 한다.


이 멋진 바다 갈매기는 내 손에 먹을 것이 들리는 순간 사냥꾼으로 변신한다. 호시탐탐 한 손에 들린 피시 앤 칩스이건 크리스피 감자 스낵이던 날아와 채갈 준비를 한다. 바닷바람 맞으며 먹는 튀김맛이 일품이건만 음식용기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파수꾼 노릇하느라 먹어가며 내 밥 지키느라 바쁘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오래간만에 가족들이 모여 바닷가 피크닉을 계획한 터라 손에는 접이식 의자, 피크닉 음식들로 두 손 가득. 콧노래 부르며 모래사장을 걷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갈매기가 애한테 달려드는데 당신이라면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꽥 소리를 지르는 한 남자의 옆을 온몸으로 갈매기를 끌어안은 채 지나가는 여성이 보인다. 보아하니 텐트 앞에서 간식 먹던 아이에게 갈매기가 달려들었고, 아이 아버지가 냅다 갈매기 머리통을 때렸나 보다. ‘갈매기한테 너무하다’부터 ‘나라도 그랬을 거다’까지 다양한 이야기들로 한동안 웅성웅성하더니만 사람들은 다시 자신들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내 조카는 제일 좋아하는 맛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갈매기에 빼앗긴 적이 있다고 한다.


갈매기 수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지 않냐는 이야기를 할 때면, 한 때 서울 시내 한복판 비둘기수가 늘어난 것 같지 않냐며 친구와 수다 떨던 옛 기억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영국 여름 해변을 즐기는 사람들


오늘 BBC 아침 뉴스에 그 갈매기 이야기가 나온다. 예상과는 달리 그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어서 걱정이라는 조류학자의 인터뷰다. 아니나 다를까 자연환경 변화, 해변 주변 지역의 도시화 등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자연적으로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던 갈매기들은 이제는 가정집 굴뚝에 집을 짓고 있고, 자연에서 먹을거리가 부족하니 사람 음식을 채간다는 것이다. 조류지만 비교적 영특하다는 갈매기가 음식을 보면 사람에게 접근하게 된 데에는 갈매기 잘못이 아니라 먹을 것을 아무 데나 버리고 밖에서 무방비하게 먹는 사람들이 만들어준 습관이라고 한다. 동물은 누구나 음식을 얻게 된 경험을 반복하는 본능을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우리 옆집 지붕 위 굴뚝에는 몇 년째 갈매기 가족이 살고 있다. 알을 낳고 길러 새끼 갈매기들에 나는 연습을 시키고 한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알을 깐다.  이 갈매기 가족은 올해도 어김없이  다시 돌아와서 같은  자리에서 알을 품고 있다. 이제는 끼룩거리는 요란한 소리도 익숙하고 반갑다.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느라 바쁜 기러기 가족이 자식 키우며 세상 따라가느라 바쁜 내 자신과 같구나 싶다.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들을 보호하고 공생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결국 인류가 건강하게 살아갈 방법이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 그리 거창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기 먹은 거 깨끗이 잘 치우는 것도 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이다.

우리 가족은 한달에 한번씩 '조류 관찰 그룹'에 참여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고 관련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저절로 환경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딸이 집에 돌아와서는 '저 오리가 어떻게 잠을 자는지 아느냐'며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듣기 좋다. 관심을 가진다면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까 하는 방법도 보이게 마련이다.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적당하게 서로 공존해 가는 것.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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