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그렇게 추억으로 남는다.
‘금성, 목성, 토성, 천왕성...
크고 작은 행성들이 자신의 궤도에 따라 자전도 하고, 공전도 한단다. 어린 시절, 실제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게 만들어 놓은 행성 모형을 바라보면서 '참 아름답다'라고 생각했다. 먼지처럼 작은 행성도 있지만 토성처럼 큰 행성도 있다. 이 모든 행성들의 중심에는 태양이 있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부모님과의 첫 만남이 있었을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 동료들. 배우자와의 귀한 만남 덕분에 또 다른 나의 가족들이 생겼고 귀하디 귀한 자식을 만나기도 했다.
예전에 나는 주위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내 몫이 아닌 상대의 감정까지도 잘 보살피고 싶은 욕심을 부린 때도 있었다. 그리 곱게 만들어온 인연과 헤어지기라도 할 때면 아쉬워서 눈물을 찍어내기도 하고 그 인연을 놓기 싫어 편지나 메일 등을 수시로 보내 보기도 했다.
부모님과 영원한 이별을 하고 보니 혈육마저도 그 순간의 만남일 뿐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별 직후의 서러움, 그리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또한 하나의 나의 자전 속도 안으로 묻어 들더라. 살아있는 한 내 행성의 공전을 계속될 것이고 또 그렇게 그 순간 나의 주파수와 맞아떨어진 다른 행성들과 접속했다가 끊어지기를 반복한다.
나에게는 서로를 알게 된 지 20년이 넘은 친구가 있다. 그저 이야기하면 좋고, 만나면 반가운 사이다. 요즘 내가 해외에 살다 보니 서로 만나기가 쉽지 않고, 각자의 사정을 모르니 예전같이 ‘탁 하면 턱 알아차리는’ 호흡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래간만에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그 친구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고 한다. 얼마나 가슴 아플지 너무나 잘 알기에 섣불리 위로를 할 수도 ‘잘 될 거야’ 밑도 끝도 없는 긍정 응원을 하기도 조심스럽다. 혹시나 괜한 말에 상처나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말 걸기가 조심스럽다. 전화통화 할 적당한 시간을 찾기 어려워서 문자를 몇 번 보내 보지만, 매번 같은 이야기 밖에 할 수 없어 속상하다.
불가능한 일을 욕심내고 있음을 깨닫는다. 때로는 그렇게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태양계의 순리인데 말이다.
서로의 궤적을 따라 돌고 도는 행성들은 서로 그 옆을 살짝 스치기도 하고, 상대의 밝은 빛에 내 눈이 부시기도 한다. 태양과 나 사이를 가로막은 ‘그 행성’ 때문에 나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순간, 각자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다 보면 멀어지고 변해가기 마련이다.
이제는 경험으로 안다. 상대와 얼마나 오래인가 보다는 함께 하는 ‘그 순간’을 어떻게 귀하게 보낼 것인가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서 내 에너지의 총량이 줄어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아예 그저 스치기만 해야 할 행성과 좀 더 서로에게 주파수를 맞춰봐야 할 행성을 미리 고민해 보는 인생의 노하우도 생긴다. 귀한 행성에 집중하려면 당연한 순리이기도 하다.
지금 그대와 내가 나누는 눈빛, 이야기, 이해할 수 없는 아리송함, 공감의 마음. 주파수를 맞춰 가는 행성과의 만남은 무엇이든 긍정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들어본다. 느껴본다.
인연이라는 그 수명이 다할 때, 서로가 헤어질 때임을 알게 되면 상대를 편히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한다. 붙잡는다고 붙잡아지지 않고, 보낸다고 추억마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궤도를 그리며 살아가는 운명이다. 귀한 만남의 순간들은 글로 최대한 적나라하게 적어봐야겠다. 생의 어느 날, 그 좋은 때를 묘사한 글을 읽으며 곱씹는 좀 더 나이 든 나 자신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