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과학 잡설

아빠가 수염이 난 이유

아이들에게 과학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by 허준영

딸아이를 재우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낮에 집안 곳곳에 출몰하며 날듯이 뛰어다녔으면 피곤할 만도 한데 쉽게 잠드는 법이 없다. 재우려고 침대에 데리고 누우면 잘 생각은 안 하고 책을 읽어 달라고도 하고, 스무고개를 하자는 경우도 있으며, 끝말잇기를 하자고 떼를 쓰며 끊임없이 재잘거리기도 한다. 나도 재미있게 같이 떠든다지만, 5분만 지나면 피곤함이 몰려온다. 모든 8살짜리 여자아이가 이렇지는 않을 텐데. 오해는 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누구보다 딸아이를 사랑하니 말이다.


"아빠! 그런데 아빠는 왜 수염이 이렇게 난 거야?"


며칠 전 일이었다. 딸아이를 재우다가 지쳐 먼저 잠들기가 예삿일이라 막 잠이 들려는 찰나였다. 딸아이가 내 빰을 만지며 묻는다. 간단히 대답해주고 빨리 꿈나라로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땅히 대답할 만한 말이 금방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차 성징, 호르몬, 유전자 같은 종류의 단어를 쓸 수는 없었다. 쏟아지던 잠에서 깨버렸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도 마땅히 대답해 줄 수 없었다. 바로 답을 해주기가 어려운 질문들이 가끔 있다. 고민이 계속되는 사이 딸아이가 다시 묻는다.


"아빠는 남자라서 그런 거야?"


맞다. 정답이었다. 내 딸은 천재 일지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잠시 한 후에 겨우겨우 몇 가지를 설명했다. 남자하고 여자는 몸에 몇 가지 다른 점이 있고 그런 것들이 다른 신호를 준다고 그래서 어른이 되면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나 목소리, 체형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딸아이가 다시 말한다.


"아 나 같은 여자는 여자답게 예쁘게 변하는 거구나"


여기서부터는 내 영역이 아니다. 성 정체성과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이야기 하기에는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물론 과학도 그렇지만 넘어가기로 한다. 딸아이에게 여자는 아름답고, 남자는 멋있다는 말이 보통 맞긴 하지만 여자도 멋있을 수 있고, 남자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얼버무리고 어깨로 토닥였다. 머릿속이 복잡한 아빠의 사정을 알기라도 한 듯 딸아이는 스르륵 눈꺼풀을 내리고 다행히 잠에 빠졌다.


엄마라면, 아빠라면 이런 경험이 모두 있을 것이다. 아이가 왜? 어떻게? 뭐지? 라고 물을 때는 그 질문은 대부분은 과학과 관련이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 성 정체성과 같이 가치와 관련된 것도 있지만 그건 배제하고 생각해보자. 과학적 내용에 관해 묻는 아이의 질문에 대한 부모들의 답변은 2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건 정말 안 된다.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이의 생각, 사고 자체를 막아버리는 방법이다. 창의력, 창의성,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시는 교육 전문가들이 많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생각과 사고, 질문과 해답을 끊임없이 찾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질문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두 번째 답변 유형은 아이가 아는 것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오는 답변이다. 예를 들어 아빠는 왜 수염이 나느냐는 질문에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때문이고 테스토스테론의 작용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는 식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다시 묻는다.


"방금 아빠가 뭐라고 했어? 남성 호르몬 이름이 뭐라고?"


필자의 기준에서는 이 역시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을 다녀오면 꼭 '오늘 뭐 배웠어?'라고 묻는 버릇이 있다. 꼭 뭘 머릿속에 넣어와야 할까? 얼마나 머릿속에 넣어왔는지 테스트해야만 할까? 그건 아니다. 이런 식의 대응은 아이들이 짜증과 실증을 유발한다. 어쩌면 이때부터 과학이 어려워지고 그냥 하기 싫어질 수도 있다. 이제는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지식이 있느냐 보다 여러 가지 정보를 어떻게 취사 선택해서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느냐, 어떻게 동료들과 협업할 줄 아는가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아이를 대하는 방법을 바꿔보자.


필자의 경우에는 될 수 있으면 과학적 용어를 배제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어려운 말이나 용어는 나중에 때가 되면 학교에서 배울 거라고 설명한다. 물론 고민이 없을 수 없다. 특히 아이의 머릿속에 잘못된 개념을 심어주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다. 보통 비유를 쓰게 되는데 비유라는 녀석을 써서 설명하면 잘못된 개념이 아이의 머릿속에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쉬우면서도 잘못된 개념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하나 신경 쓰는 것은 그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도록 기다려주려고 노력한다. 핵심은 바로 호기심이다. 우리는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면서 호기심을 잃어간다. 호기심을 잃는 시간을 조금씩만 늦출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방법이 아닐까? 그리고 질문하고 고민하는 그 과정 자체가 '과학적' 으로 살아가는데 밑바탕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좋은 아빠고, 교육을 잘 신경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고백하자면 지금도 집사람과 교육문제로 자주 다투고 있으며, 말을 안 듣고 너무 떼를 부리는 딸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리고 나면 늘 반성하고 후회하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도 한 가지 정도는 신경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아이를 과학자로 키우자는 말이 아니다. 아이라면 누구나 가진 호기심을 조금이라도 길게 유지해 주자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것과 조금은 친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것이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잘못된 개념 약간은 괜찮다. 아이들은 누구보다 커다란 가능성을 가진 존재들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과학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걱정하지 말자. 부모라면 아이보다 과학에 대해 늘 더 많이 알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과학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있다. 주입식 교육의 힘이지만 이건 팩트다. 자신감을 갖자.


(Photo by SnapwireSnaps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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