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개발] 귀한 곳에 누추한 사람

무제한 복지라는 파라다이스, 그 뒤편의 유배지


이 글은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입니다.

특정 기업이나 인물을 지칭하지 않으며, 일부 내용은 서사를 위해 재구성되었습니다.




01. 달콤한 유혹: AI라는 이름의 순풍


그 회사는 잘 나가는 AI 개발사였다.

당시 서비스하던 프로덕트는 높은 평가와 폭발적인 사용자 증가율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고,

급격히 늘어나는 사세에 발맞춰 경영지원실이 새로 세팅되는 중이었다.

나는 그 자리, 오피스 매니저(Office Manager) 포지션에 지원했다.


두 차례의 면접은 모두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화면 너머로 주고받는 대화가 어색하던 시절이었지만 다행히 좋은 평가를 받았고, 연봉 협상도 순조로웠다.

코로나19로 채용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때였는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모든 것이 결정됐다.


개발자가 전체 인력의 90%를 차지하는 조직은 처음이었다.

당시 실력 있는 개발자를 붙잡기 위해 파격적인 복지를 무기로 내세우는 회사가 많았는데, 이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제한 휴가, 자율 출퇴근, 식대 무제한.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설레게 한 건 도서 구매 지원이었다.


출퇴근에 하루 3~4시간을 쏟아부었지만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제프 베조스와 일론 머스크, 스티브 잡스는 물론 구글과 넷플릭스의 조직문화, 부동산과 재테크까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 회사에서 뭔가 제대로 된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커졌다.


그 욕심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여성 동료들을 위한 머리끈 하나를 비품으로 들여놓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 남성 동료들을 위한 운동 동아리를 꾸렸고, 할로윈과 크리스마스, 설날마다 사무실 레이아웃을 통째로 바꾸는 시즌 이벤트를 기획했다.

밤을 새워 책상을 옮기고 소품을 붙이면서도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곳에서라면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02. 고립된 섬: '교무실'이라 불리는 유배지


하지만 화려한 혜택도 '사람' 앞에서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우리 팀은 다른 사업부가 쓰던 독립 공간을 이어받아 사용했다.

물리적으로 분리된 그 공간은 자연스럽게 심리적 격리로 이어졌고,

다른 팀 사람들은 우리 자리를 '교무실'이라 불렀다. 이름이 틀리지 않았다.


그 공간의 공기는 온전히 팀장이 장악하고 있었고,

회사가 내세우는 자율 출퇴근도 무제한 휴가도 교무실 안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팀장은 전형적인 꼰대였다.

자기가 직접 뽑지 않은 팀원이 실수를 하면 "내가 뽑은 사람이 아니라 그런 거야"라는 말을 대놓고 했다.

반면 나에게는 "내가 인정한 인재"라며 치켜세우기를 반복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인정받는 기분보다 불편함이 먼저 밀려왔다.

어쨌든 그들은 내 동료였으니까.


사무실 관리를 해야 하는 직무 덕분에 자리를 비울 핑계라도 만들 수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팀장의 시선이 따가울 때마다 업무를 구실 삼아 자리를 피해야 했다.

나 역시 그의 타깃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팀 구성이 나를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었던 탓인지, 성희롱은 일상이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피임 이야기가 툭툭 튀어나왔고, 다른 사업부 여직원들 앞에서 나를 지목하며 "남자로서 어때 보이냐"고 묻는 일도 있었다.


협의가 난항을 겪는 파트너사 여직원와 "술이나 한잔 하라"며 등을 떠미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03. 닻이 끊어진 순간: 내로남불의 민낯


결정적인 순간은 코로나19에 걸려 재택을 하던 때였다.

어머니, 친동생, 아버지에 이어 나까지 차례로 확진됐고, 어쩌다 보니 2~3주가량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됐다.

목이 심하게 잠겨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던 상황에서 진행 중이던 계약 건으로 팀장과 통화를 하게 됐다.


당시 나는 불리한 조항에 대해 상대측에 수정을 요청한 상태였고, 수정이 반영된 계약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쪽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해둔 상황이었다.

그러나 팀장은 내 설명을 듣기도 전에 통화 시작과 동시에 몰아세웠다.


"왜 바로 대답 안 해? 아파도 할 일은 해야 하는 거 아냐?"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고 상황을 설명해 오해를 풀었지만,

팀장은 즉각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질책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팀장이 확진됐다.

처음 며칠은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업무가 하나둘 멈추기 시작했다.

결재가 밀렸고, 협력사에 줘야 할 답변이 쌓였고, 내부 일정이 엉키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눈치를 보며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내가 팀원 대표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울리다 연결되는가 싶더니, 바로 끊겼다. 잠시 후 메신저로 한 줄이 도착했다.


"아픈 사람한테 업무 이야기 왜 하냐? 개념 없어?"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나는 한동안 그 문장을 바라봤다.

불과 며칠 전, 목소리도 나오지 않던 나에게 "아파도 할 일은 해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 보낸 메시지였다.

분노가 치밀기보다 어딘가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끊어졌다.


배는 화려했지만, 키를 잡은 사공은 비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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