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사의 복기] 시스템을 믿어야 하는 이유

#02_사람보다 시스템을 믿어야 하는 이유

이 글은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입니다.

특정 기업이나 인물을 지칭하지 않으며, 일부 내용은 서사를 위해 재구성되었습니다.





흔히 스타트업의 유연함은 수평적 구조와 탄력 있는 조직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그 유연함은 빠른 의사결정과 거침없는 실행력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 유연함은 종종 '구조의 부재'를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된다.


시스템이 없는 조직, 구조가 없는 조직이 오로지 구성원의 선의와 열정에만 기대어 움직이고 있다면,
항해사는 언제든 배가 침몰할 수 있음을 직감해야 한다.




첫째, 선의는 변질될 수 있지만, 잘 짜인 시스템은 배신하지 않는다.


나는 한때 구조의 부재가 주는 불안감에 무딘 편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방송계는 각자의 역할이 칼같이 나누어진 촘촘한 톱니바퀴의 세계였다.
당시 방송 현장은 노동 강도가 상상을 초월해 시스템을 성찰할 겨를조차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엄청난 강행군을 버티게 한 것은 '누군가 구멍을 내면 배가 멈춘다'는 명확한 R&R이었다.


스타트업 초기의 나는 특유의 기동성과 유연함에 매료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연한 성질'을 가진 것과 '공백이 많아 유연할 수밖에 없는 것'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내가 경험한 조직은 흡수력은 좋지만 뼈대가 없는 '구멍 숭숭 뚫린 스펀지'와 같았다.
업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열정적이고 다재다능한 '잡부'들이 필요했고, 우리는 그 구멍을 각자의 살점을 떼어 메우고 있었다.


빠른 결정도 마찬가지다.
의사결정 구조가 간결해 판단이 빠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순간순간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악의 경우에는 앞선 판단이 잘못되어 빠르게 수정하기 위한 결정인 경우도 있다.
모두의 선의와 자원으로 구멍을 메우는 것에 급급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반면, 이후 경험한 무역업과 제조업은 지독할 정도로 정교한 규칙과 절차의 세계였다.
통관 서류 한 장, 관세 계산 소수점 하나가 어긋나면 거대한 화물선은 항구를 떠나지 못한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마스크 한 장이라도 시간당 수백 장을 찍어내는 기계의 정밀함은, 그 자체로 시스템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가르쳐주었다.


시스템은 사람을 가두는 틀이 아니라, 사람의 실수를 방어하고 개인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외부 환경의 변화와 공격, 그리고 경영진의 의도와 직원들의 선의는 변질되기 쉽다.
단단한 시스템의 존재는 회사의 동력이자 나를 보호해주는 강력한 체계다.




둘째, 성장에 대한 조급함은 '인내'라는 근육을 퇴화시킨다.


조직 확장기에 내가 느꼈던 깊은 소외감은, 지금 생각해보면 외부의 압박보다는 내 안의 '조급함'이 만들어낸 그림자였다.

회사가 커지는 속도에 발맞춰 다른 직무의 팀원들이 화려한 성과를 증명해낼 때, 나 역시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그 조급함은 숲 전체의 항로를 조망해야 할 항해사의 시야를 가렸고, 당장 내 발등을 찍는 나무들에만 집착하게 만들었다.


당시 나는 회사가 무엇을 인정하는지, 그 인정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냉정하게 체크하지 못했다.

내가 다녔던 조직은 관련 업무 경력이나 전공자라는 '간판'이 없으면 내실을 들여다보지 않는 다소 경직된 환경이었다.
물론 그때 악착같이 공부해서 따낸 자격증과 지식은 이후 내 이직과 커리어에 결정적인 무기가 되었고,

지금도 일상에서 요긴하게 써먹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 결과를 '당장 지금 여기서'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에 밀려, 결국 더 큰 파도를 기다리지 못하고 이 배를 떠날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요즘 나는 취미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즐긴다.
처음에는 기구 사용법조차 몰라 헤맸지만, 이제는 혼자서도 루틴을 소화할 만큼 익숙해졌다.
웨이트의 매력은 정직함에 있다.
당장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힘들어도, 꾸준히 하면 거울 속 내 몸에 반드시 변화가 나타난다.
그 눈에 보이는 성과가 운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나의 스트레칭과 유연성 점수는 빵점이다.
솔직히 말하면, 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다.
웨이트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고통스럽고 적응이 필요하지만, 스트레칭은 거울을 봐도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성과가 없으니 흥미가 생길 리 만무하다.


커리어도 이와 닮았다.
자격증이나 눈에 보이는 숫자가 '근육'이라면, 조직의 생리를 이해하고 때를 기다리는 과정은 '유연성'에 가깝다.

근육만 비대해지고 유연성이 없는 몸은 결국 부상을 입듯, 성과에만 매몰된 조급함은 커리어의 부상을 초래한다.

어쩌면 내 성향 자체가 인내가 부족하고 결론을 빨리 보고 싶어 하는 '펌핑' 위주의 운동에만 최적화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내라는 보이지 않는 근육이 퇴화할 때, 우리는 성장한다는 착각 속에서 조용히 소모되어간다.




셋째, 나침반이 없다면 노를 젓는 힘은 낭비될 뿐이다.


회사가 아닌 '내 실력'만 믿기로 한 결심은 처절한 생존 본능이었고, 그 방향 자체는 옳았다.
하지만 아무리 성능 좋은 엔진을 가졌더라도 목적지와 항로, 적어도 나침반이 가리키는 명확한 방향이 없다면 그 힘은 공허한 공회전에 불과하다.


당시의 나는 노를 젓는 법은 익혔지만, 정작 이 배를 어디로 몰고 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내가 이 회사에서 정확히 어떤 직무의 전문가로 남을 것인가, 시장에 나를 내놓았을 때 무엇을 핵심 무기로 어필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닥친 파도를 넘는 것에만 급급했다.


관리 업무부터 세일즈, 고객 지원, 전사 운영까지 손에 잡히는 모든 일을 자원하며 내 몸을 갈아 넣었다.
"그냥 열심히 하면 언젠가 알아주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그것은 성실함이 아니라 전략적 태만이었다.

열정과 노력을 쏟아붓기 전, 그 힘의 절반만이라도 목적지를 설정하는 데 썼어야 했다.


항해사는 파도와 바람에 따라 항로가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때로는 나를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집채파도가 예상된다면, 무식하게 정면 돌파하기보다 요령 있게 피해 가거나 잠시 정박하는 유연함도 실력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맹목적인 열정이라는 돛 하나만 믿고 폭풍우 속으로 배를 몰았다.
무엇보다 앞서 언급했듯, 그 무모한 분투를 인정해줄 시스템조차 없는 바다였다.
시스템도 없고, 방향도 목표도 없는 곳에서의 분투는 성장이 아니라 '소모'일 뿐이다.


나침반이 고장 난 배 위에서 필사적으로 노를 젓는 행위는 결국 모래 위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다.
표류를 멈추고 싶다면, 노를 쥔 손에 힘을 주기 전 내가 보고 있는 나침반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수평선 너머에 실재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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