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수호의 날]

영웅들을 기리는 추모의 글

by BaeFounder

2010년 3월 26일.
당시 나는 해군 2함대에서

지휘관(전대장) 운전병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그날 밤,

다급한 호출을 받고 정문으로 나갔다.
지휘관 차량들이 하나둘

급하게 집결하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보통 일이 아니다.’
잠시 뒤, 상황이 전해졌다.
천안함 피격.


그날 이후,

2함대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다음 날부터
실종자 가족분들, 언론, 기자들,

정치인들, 타 부대 군인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부대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앞선 것은 하나였다.
전우들을 찾기 위한 사투.
골든타임 72시간.


그 시간 안에 한 명이라도 더 찾기 위해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한 46명의 용사와
한주호 준위님.


그 이름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안에 무겁게 남아 있다.


추모만으로도 부족했던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다른 장면들도 함께 목격했다.


혼란과 분노가 뒤섞인 현장에서
그 감정을 자극하고 부추기는 사람들.
그날, 내가 운전하던 관용차 역시
그 소용돌이 속에서 크게 훼손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순간의 분노는

단순한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비극 앞에서도 방향을 잃어버린

사회의 한 단면이었던 것 같다.


추모만으로도 부족한 시간에

자극, 정쟁, 맹목적 비난 등


그러한 모습들 속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미성숙한 모습들을

보기도 했고, 그것에 분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오래 기억하는 것은 따로 있다.


한 달 가까이 2함대에 머무르며
진상 규명을 위해 버텨내시던 유가족분들.
‘실종자 가족’에서 ‘유가족’으로
단어 하나가 바뀌는 그 시간 속에서
그분들이 견뎌야 했을 마음을
나는 감히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 수병들을 자식처럼 챙겨주시던 모습.
그리고 결국,
차디찬 바다에서 돌아온 이들을
태극기로 덮어 맞이하시며
오열하시던 그 장면.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그때의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졌다.
문득 돌아보면,
그들은 너무 어렸다.


서해수호의 날.


이 날의 본질은 단 하나라고 생각한다.
희생.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연평해전.
그 모든 이름 뒤에는
나라를 지키던 영웅들이 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모든 소음과 해석을 내려놓고,
차디찬 바다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영웅'들을
온전히 기억하는 날이었으면 한다.


'영웅'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도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살아간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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