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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Feb 21. 2017

퇴사 생각

  그날도 사실 여느 때와 같았다. 나에게 할당된 메일과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고 그날 퇴근 후 집에서 코딩할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이었다. 단 한 가지 달랐던 것은 그날 내가 발표하는 세미나가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발표 주제는 내가 현재 맡고 있는 업무에서 기술적인 부분에 관한 것이었다. 어떤 식으로 동작하고 있는지 개론의 형식으로 발표하면 되는 것이었다. 추상적인 형태로 발표해도 되었지만 그래도 여러 개발자가 참여하는 세미나이니 만큼 어느 정도 코드 레벨에서 볼만한 것들도 발표 자료에 넣어둔 참이었다.


  발표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내가 하던 일이었고 매일 보던 코드이니 만큼 설명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질문 & 답변 시간이었다. 참여자 중 가장 직급이 높은 하지만 개발은 안 한 지 십 년이 넘은 상사(사실은 입사 후 한 번도 안 해봤을지도 모른다)가 질문을 해왔다. 이 코드가 다른 곳에서도 쓰이지 않느냐란 질문이었다. 난 아니라고 답했다. 이 코드는 오로지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이고 다른 곳에서 비슷한 형태의 설계 패턴을 사용할지언정 같은 것을 사용하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사는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주장을 해왔고 나는 그때마다 아니라고 답했다. 사실 그건 당연히 내 주장이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 코드를 매일매일 보며 유지 보수하는 것이 나의 업무였고 상사는 그 코드를 그 날 처음 본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과 다르게 주장에 반대하면 할수록 나에게 향하는 참석자들의 시선들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상사의 '아랫사람'인 그들은 내가 틀렸다란 식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난 졸지에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은 개발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미 개발자보다는 관리자에 가까운 사람들이었고 나에게 하는 질문과 주장에서 그 수준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반박을 계속해봤자 나만 더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다란 생각을 했고 그렇게 발표는 흐지부지 끝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발표가 끝난 후 굉장히 화가 났었다. 그때 당시 거울을 보진 않았지만 내 얼굴은 아마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을 것이다. 그 발표주제는 참석자들 중에서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였고, 게다가 나에게 처음 질문을 던진 상사는 코드 한 줄 제대로 짤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질문에 대해 답을 하며 이상한 사람은 내가 되어 있었다. 이때 나는 이미 진행 중인 스타트업 프로젝트가 있었고 근시일 안에 퇴사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가서 '퇴사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그렇게 퇴사를 언급하는 것도 정말 어리석은 생각 같았기 때문에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나는 이때부터 회사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직급에 의한 상하 관계, 실제 개발보다 말 뿐인 상사들과 개발자로서 성장할 수 없는 환경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었으나 그것이 이 사건으로 더 커진 것이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내 계획은 현재 진행하던 스타트업 프로젝트를 론칭까지 이끌어 나간 후, 사용자들의 대략적인 반응을 보고, 퇴사를 해서 올인을 할지 아니면 계속 회사를 다니며 진행할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계획을 잠시 접고 퇴사에 대해서 더 심도 있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생각은 퇴근하여 집을 향할 때까지도 계속됐으며 나는 결국 한 가지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딱 일주일만 더 고민하자". 왜냐하면 그때의 내 상태는 내가 생각해도 차가운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만 더 고민하면 그것이 퇴사든 아니면 꾹 참고 회사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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