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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훈 Nov 21. 2022

한가득 받아 온 따뜻함

우리집은 높은곳에 자리 잡고 있다. 창문 넘어 풍경은 옥상에서 무언가 널어 말린다거나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들이다. 우리 부부는 주변 이웃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곳에 동화되어간다.


2022년 여름 비가 자주 내렸다. 밀짚모자를 쓰고 테라스에 자주 나갔던 기억 때문일 것 같다. 옆집 어르신은 비가오면 밀짚모자를 쓰고 나오시는데 그 모습이 좋아보여서 우리 부부도 비가오면 밀짚모자를 쓰고 테라스에 나간다. 저 멀리 노부부가 옥상에 무언가 말리고 있었다. 말리는 무언가에게 손짓으로 가르키면서 대화를 하던 모습이 좋아보였다. 무말랭이 무침을 직접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때이다. 


옆집 어르신 옥상이 궁금했다.

우리집 테라스는 옆집 옥상보다 한층 낮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궁금했던 것 같다. 


옆집 어르신과 생강차 한잔 하면서 나눴던 대화를 이어가본다 (도심시리즈 2편을 보면 이어진다.)


어르신: 우리는 1970년도 후반쯤에 이곳에 왔어요. 우리아저씨가 연탄공장에 다녔는데 그 때 고생이 많았지. 2000년 초반에 다가구가 유행하고 그랬는데 그때 이 집을 직접 지어서 왔다구. 저기 150번지에서 175번지로 이사온거에요. 암반 깊숙하게 다져 놓아서 집이 정말 튼튼해요. 밑에 집 사람들은 도통 나가질 않아요. 우리 아저씨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임대료도 안 올리고 있으니 그런 것 같아.  
나: 우와 저희는 잘 믿기지 않는데 서울에서 이만큼 하시기 어려우셨을텐데 대단하세요. 임차인들 퇴실하면 그때 알려주세요. 저희가 꼭 들어올게요. 하하하, 주변에 이웃들 소식도 궁금하구요. 제가 진짜 궁금한 곳이 옥상인데 같이 보러 갈 수 있나요? 


옥상에 올라가는 계단 한 구석에 방이 있었는데 과거엔 단칸방 세입자가 살았다고 한다. 출가한 자녀들이 학창시절 사용하던 책상과 의자가 그대로 있고 그 위에 잡동사니들이 쌓여져있었다. 지금은 창고로 사용하고 계신다. 옥상에 올라보니 해가 잘 들었고 우리집 보다 동네 전경이 더 잘 보였다. 주황색 대형김장통에 무가 심어져있고 꽤 크게 자랐다. 옆을 보니 우리집 테라스가 꽤 잘 보였다. 어르신은 우릴 칭찬해주셨다. 비가 오면 물이 고이지 않게 청소를 잘 해두었는데 그 모습이 좋아보이셨나보다. 무언가 가르키면서 줄까요? 라고 묻자 우리는 무언가의 정체를 물었다.


어르신: 이거 가시오가피인데 우리 아저씨가 산에 가서 채취해온거에요. 필요하시면 드려요? 
나: 감사합니다 :) 어르신이 주시면 군말없이 받는것이라고 배워왔습니다.
어르신: 잠시만요. 내가 담을 비닐 좀 가져올게요.
나: 가시오가피는 어떻게 해먹어요? 처음 보는 작물이에요. 신기하네요.
어르신: 담금주도 좋고 차를 끓여 먹어도 좋아요. 여기 대파도 담았고 마늘도 담았어요. 다 가져가요. 이거 여분 비닐로 다 가져가요.

 

한보따리 작물과 이웃의 따끈함을 한가득 받아왔다. 어르신에겐 할아버지도 보고 싶으니 다시 찾아뵙겠다고 했다. 그렇게 몇일이 흐르고 테라스에서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우리가 다녀 간 소식을 알고 계셨고 짧게나마 인사를 나누었다. 곧 우리 부부가 만든 무말랭이 무침 가지고 찾아 뵐 예정이다.


내가 느꼈던 따끈한 온기를 구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온기를 느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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