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아이디어를 읽는 연습

세바시에서 있던 일입니다. HR 특집 강연회를 준비하면서, 강연자들의 원고를 피드백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바시는 강연자의 원고에 대해 적극적으로 피드백합니다. 글을 다듬는 수준이 아닙니다. 원고 안에 어떤 핵심 아이디어가 담겨야 하는지,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풀어야 사람들에게 각인될지를 함께 기획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원고의 구성을 다시 짜는 일을 합니다.

강연자는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 경험을 어떻게 구성해야 듣는 사람이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을지, 어떤 흐름으로 이야기를 풀어야 전달력이 높아질지는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강연 기획자는 묻고, 다듬고, 다시 구조를 설계합니다. "이 사람을 어떤 시선으로 재조명할 것인가?", "이 강연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이 질문을 놓지 않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최근 몰입하고 있는 입찰사업이나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서도 이 원리를 똑같이 적용하고 있습니다. 프로스포츠 리더스 포럼 제안 때의 일도 같은 연장선에 있습니다. 제안요청서에는 'HRD 분야 전문 기업들의 최고경영자 조찬 세미나 컨셉 참고'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만약 조찬 세미나 포맷을 그대로 가져왔다면, AI 주제와 경제 전망 같은 거시적인 주제들 위주로 꾸몄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경영인들과 프로스포츠 리그나 구단 리더들은 경영상의 목적 자체가 다르다고 봤습니다.

기업 경영자는 주주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1순위지만, 리그나 구단 리더는 팬과 브랜드 가치를 키우고, 커뮤니티를 확장하는 것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작부터 같은 조찬 세미나 포맷을 답습하지 않고, 프로스포츠 리더들에게 '지금, 이 현장에서 진짜 필요한 이야기'를 설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 핏한 필요를 맞춘 포럼 구성 덕분에 핵심 아이디어 자체가 출발선부터 달랐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구성이 좋을지, 그들이 무엇을 기억하게 할지에 초점을 맞췄던 것입니다.

작년에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커리어코칭을 진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핵심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나는 어떤 아이디어로 내 커리어를 설명할 것인가.", "내가 걸어온 길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는가." 이 질문을 함께 붙잡아야 한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습니다.

다만 기획자의 시야에만 매몰되면 현실의 흐름을 충분히 살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핵심을 잡는 감각은 중요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사람들이 부딪히는 상황과 뉘앙스, 디테일까지 함께 읽어야 합니다. 흐름을 짜는 힘과 동시에, 작동하는 현실을 놓치지 않는 균형 감각도 늘 함께 가져가려 합니다. 그래야 좋은 기획이 머릿속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획자의 시야로, 원고 안에 숨은 아이디어를 읽어내고, 풀어내고, 그 흐름을 새롭게 구성하는 훈련. 그리고 그 시야는 지금도 제 일의 방식에 깊이 깔려 있습니다. 이를 '감각적'이거나 '센스'라고만 표현하기엔 부족해서, 핵심 아이디어를 읽는 연습에 필요한 몇 가지를 정리해봅니다.

1. 맥락을 읽는 힘
텍스트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상황까지 함께 읽는 힘이 필요합니다. 글이나 문서, 발언은 언제나 어떤 맥락 안에서 나옵니다. "왜 이 타이밍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까?", "지금 이걸 왜 이야기했을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2. 상상해보는 흐름
핵심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시작-전개-결론 흐름을 스케치해보는 연습이 중요합니다. 수요자는 분명한 숨은 니즈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원 가능한 모든 것을 활용해 핵심 아이디어를 정하고, 그에 따라 전개될 흐름을 상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3. 시작점을 정의하는 연습
감각 훈련은 분명 필요합니다. 특히 시작점을 잘못 정의한 경우도 많고, 시작점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는 이유도 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추진에 앞서 자료조사를 꼼꼼히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