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elGreatMan Jul 27. 2020

스타트어퍼의 기질: 둔과 근 그리고 SISU

스타트어퍼로서 갖추어야 하는 두가지 기질

스타트어퍼(Startuper)로서의 삶을 살아온 지 2년 하고도 반 정도 지나온 것 같다. 창업에 대해서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비즈니스인 핀테크 섹터에 대해서도 갖고 있던 지식조차 없이 뛰어든 스타트어퍼의 삶.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을 돌아보며 내가 느끼는 창업가의 기질과 부합하는 내용을 다룬 책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스타트어퍼로서의 시간이 흐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어떤 기질을 갖고 있는 그리고 갖고자 부단히 노력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 최근에 읽게 된 변종의 늑대라는 책은 나에게 어떤 기질을 앞으로 키워나가야 할지 희미하게나마 알려준 그런 책이다.

제목만 살펴보면, 소설책 같은데, 내용은 소설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스타트어퍼의 삶을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이 책에서, 내가 스타트어퍼로서 배운 부분은, 삶의 태도인데, 이는 '은둔근'과 'SISU'이다.

변종의 늑대

이병철 회장의 좌우명 : 은, 둔, 근

삼성그룹 창립자인 고 이병철 회장의 좌우명은, 운둔근이라고 한다.


은둔근은 "성공하려면 운이 따라야 하고, 고의적으로 주변에 신경을 끄는 등 다소 우둔해야 하며, 근면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하는 좌우명이다. 다만 나는 운이란 것은 믿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창업과 경영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운둔근'중 '둔'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인용한 한 문구가 창업가인 나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고 생각했는데,

알리바바의 마윈의 철학, "어리석은 새가 오히려 멀리 난다!"라는 말이다.

이 말이 크게 공감 갔던 이유는, 내가 너무 잘 아는 분야는 오히려 도전하고, 혁신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리석은 새였다.

스스로 똑똑한 줄만 알았던 나는, 어리석은 새였다.

어리석었기에 창업이란 걸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어리석음 때문에, 지금 운영하고 있는 소비의 미학을 시작하게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핀테크와 '금융'을 정말 잘 아는 전문가였다면, 현재 우리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 핀테크 서비스인 소비의 미학을 시작할 수 조차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하곤 한다.

아마도, 내가 전문가였다면, 현재 소비의 미학이 추구하는 가치나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임팩트를 고려하기 이전에, "이게 가능할까?"에 초점을 두었을 것이다.

또한, 금융의 관점에서 우리의 서비스를 생각하고 계획했다면, 아마도 '하기 어렵겠다.'가 결론이었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서비스를 하기 위해 우리는 고객을 중심적으로 사고하기보단, 금융시장의 생태, 규제 등을 우선시 생각했고, '어떻게 해결하지?' 보다는, 'A는 규제 때문에 안되고, B는 큰돈이 안될 것 같고 등등..'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을 것이다.

"가능할까?"부터 생각하게 되면, 사실 시작도 하기 어려운 게 창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내가 집중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현재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이게 될까?' 보다는, 우리의 고객이 이걸 필요로 할까?부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맞아! 필요해'가 된 순간, 그러면 내가 해야 될 일은, '어떻게 필요를 채워줄까?'가 되었었다.

어리석은 새와 똑똑한 새의 차이는 여기서 드러나는데, 똑똑한 새는, 엄청난 도메인 지식을 검색 후에, '음.. 어려울 것 같은데?'에 초점을 맞추는 새 일 것이다. 반면에 어리석은 새는, 많은 것들을 계산해서 결괏값을 도출해내기보다는, 우선 우리는 A를 할 건데, B 때문에 안된다면, 방안 C, D 등을 찾아서 되게 만드는 새일 것이다.

소비의 미학을 기획하던 당시, 우리 팀은 고객의 필요에 집중했고, 결국 그 필요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우선이었다. 해외에선 A라는 방식으로 해결했는데, 우리의 상황에선 최선은 C로 해결하는 것이야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가끔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Impossible을 I'm Possible로 읽게 되고, 결국은 불가능해 보이던 것을 해내는 데까지 가곤 한다."

물론, 서비스를 해가면서 해당 필드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고,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당연한 이치!)


휘바 휘바가 아닌 Sisu의 민족, 핀란드!?

북유럽 스타트업 성지 핀란드에서는 SISU라는 말이 있다고도 한다.

"Sisu는 '투지, 끈기, 용기와 회복력'이라는 의미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Sisu를 인생에서 가장 주도적인 가치로 여기는 단어라고 한다. 창업가의 길을 선택한 지 어느덧 2년 반 정도가 되어가는 시점에 돌아보면, Sisu는 한국인인 나에게도 매우 중요한 가치인 것 같다.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용기로 시작한 창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끈기가 필요하고,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투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냥 창업이 하고 싶었다 라는 막연한 마음가짐으로 창업을 하게 된 케이스였다. 어렸을 때부터 뭔가 주도적으로 일을 해보고 싶었고, 그 길중 하나가 스타트업(당시 말로는 벤처기업)이었던 것 같다.

또한, 나름의 끈기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성장해온 것이고, 투지가 있었기에 어려운 시기에 투자도 받아가면서 스타트업을 이끌어나가는 리더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지 않나 싶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이미 나는 Sisu를 몰랐지만, 그 삶을 어느 정도는 살아가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많이 알면, 다칠 수 있어!

스타트어퍼는 매 순간 학습을 해야 하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너무 많이 알면 다친다고!?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 수가! 변종의 늑대를 읽으면서, "너무 많이 알면 다쳐"라는 말이 떠오르게 되었다.

간혹 해당 대사가, 영화나 드라마에선 무서운 문장으로 쓰이지만,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면,

"너무 많이 알면,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은, 주저하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모든 창업가가 어느 순간이던 주저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우둔하게, 자신이 바라보는 목표점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둔'을 가지고 있다면,

전진할 수 있고, 원하는 목표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설적이지만, 둔감하면 전진할 수 있다.


성실함 그 이면에는 지혜가 필요

다시 은둔근으로 돌아오자면, 근도 스타트어퍼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이라 생각한다

둔근의, '근'인 근면 성실한 부분도 당연 중요하다.

하지만, 바르게 근면 성실해야 한다.

쉬운 예로 이야기를 하면, 광야 한복판에 보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광야로 갔다. 하지만 어디를 파야할지 몰라 우선 열심히 내 주변의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30시간을 팠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광야 입구에서 20분 정도 가서 서쪽 방향에 보물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리로 가서, 1시간 정도 땅을 팠더니, 보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 :  무작정 땅만 파는 게 아닌, 대략 이쯤에 내가 원하는 게 있겠구나 하고 파는 지혜


성실함을 실현시키기 위한 대략의 목표(Goal)를 정하고 그 위치에서 성실하게 땅을 판다면, 원하는 것을 조금 더 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학창 시절에도, 나름대로 공부에 시간을 많이 투자했었던 기억이 있지만, 공부량이 꼭 좋은 성적을 100% 보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공부방법이나 방향을 제대로 잡고, '적당한'시간을 투자했던 과목들의 성적이 우수했던 것 같다.

간혹 어떤 이들은, 공부의 정도는 많은 학습량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도 나는, '방향'을 가지고 있는 학습량이 정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향은 결국 비전을 의미

스타트업을 경영하다 보면 회사의 방향이 내가 상상했던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정말 많다.

투자, 비즈니스 모델, 영업, 채용 등 모든 요소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는 것이 아닌, 때로는 갑작스럽고, 때로는 실망스럽기도 한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오곤 한다.

그 다양한 모습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다양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것은 긍정적으로, 어떤 것은 부정적으로 등등..그럼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까?

내가 생각한 정답은,  비전이다.

비전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재 내게 다가온 문제, 좋은 소식 등이 과연 우리 회사의 장기적인 비전과 어떤 부분에서 합치가 되고, 혹 합치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부합하게 만들 것인지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자는, 큰 틀에서 회사가 나아갈 방향과 적재적소에 필요한 전략들을 가지고 비즈니스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상황이 변함에 따라, 전략이 달라져야 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전략을 변경하는 것과 새로 짜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비전과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한 로드맵 그리고 그 로드맵상의 마일스톤마다의 전략들이 필요로 하다.

예를 들어, 서비스의 기능을 한 가지 만들더라도,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에 합치하는지가 중요하다.

소비의 미학이라는 Pay Later 서비스를 하는데, '우리 여기에 송금 기능을 넣어요!'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굉장히 뜬금없음을 느낄 것이다. 우리의 비전은 소비문화를 개선시키는 데에 있지, 금융생활을 편리하게 하는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소비의 미학이 추구하는 장기적인 가치에 지금 당장 송금이라는 기능이 해줄 수 있는 역할이 없기에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Beyond 비전은 구체적인 전략 그리고 실행력

큰 이상과, 비전은 누구나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과 비전을 현실 속에 옮겨놓을 구체적인 전략과, 실행력은 ‘아무나’ 가지고 있지 못하다.

말은 번지르르 하지만,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지 않은 빈 깡통과 같은 모습은 스타트어퍼로서 갖지 말아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즉, 돈 주면 우리가 영업해서 많이 팔 수 있어요.라는 말보다는, 돈 주면 제가 우리의 고객들이 모인 곳에 갈 수 있는 접근성을 만들기 수월할 테고, 그 접근성을 기반으로 고객에게 커피를 사줘가면서 영업할 겁니다. 정도의 구체성이라도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나 또한, 많은 투자자들을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늘 ‘어떻게’를 많이 물어봤던 것 같다. 창업자 입장에선 당연해 보이는 것도, 타인의 입장에선 당연하지 못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어떻게’를 물어본 투자자들도 많았던 것 같다.

때문에, 한 번의 미팅 이후 가지고 있던 전략들을 구체화시키는 노력들을 했었고, 그 결과 완벽하진 않더라도, 내가 생각한 이상이 현실로 조금씩은 보여왔던 것 같다.

결국 모든 사업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그럴싸한 것을 실행할 구체적인 방법을 지닌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모든 전략에 구체성을 처음부터 갖기란 어렵지만, 회사가 한걸음 한걸음 성장함에 따라 전략들은 더욱더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비 오는 오후, 스타트어퍼로서 은든군과 Sisu 두 가지를 상기시키며 성장 중인 오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