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점심시간, 나는 항상 가장 늦게까지 밥을 먹는 아이였다. 언제는 할머니가 준비물을 갖다 주시러 학교에 오신 적이 있었다. 그날도 나는 5교시 수업 종이 울리도록 밥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밥을 먹고 있는 아이는 나뿐이었기에, 더욱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나를 할머니는 창문 밖에서 지켜보시다 준비물을 손에 꼭 쥐어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애야, 빨리 먹을 필요는 없으니 뒤에서 두 번째로 밥을 먹으라.” 그 말은 나에게 어떤 용기를 주었다. 가장 빨리 먹을 필요는 없이, 꼴찌만 안 해도 된다는 것은 할머니가 전해준 특별한 해결책이었다.
이 이야기를 꺼낼 때면 할머니는 나의 갓난아기 시절을 떠올리신다. “아는 어릴 때도 그랬어. 분유를 타주면 아주 조금씩만 먹고 말았지. 다른 아들은 꼴딱꼴딱 다 먹을 양을, 어떻게 그것만 먹나 싶을 정도로 조금씩, 천천히 먹었어.” 그러면 이제 내가 할머니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 보다 주름도 적고, 흰머리도 적게 난 할머니를. 마치 우리 엄마와 같은 모습을 한 할머니를 상상하게 된다. 그런 할머니가 포대기에 감싼 나를 안고 있을 것이다. 애가 왜 이리 조금만 먹는지 걱정하면서도, 가만히 나를 기다려주셨을, 할머니의 부드럽고 따뜻한 품과 눈길을 생각하게 된다.
꼬북이. 친구들이 나에게 지어준 별명이다. 친구들에게 나는 그냥 거북이가 아니라 특별한 꼬북이었다. 사촌동생 집에 놀러 간 어느 날, 나는 플라스틱 통 속에 살고 있는 나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자그마한 새끼 거북이는 자그마한 나의 손바닥보다도 훨씬 작았다. 내가 다가오자 고개를 든 녀석의 멀뚱한 시선이 귀여웠다. 나는 호기심에 그 새끼 거북이에게 당근 한 조각을 줘 보았다. 그러자 새까맣고 작은 거북이의 두 눈이 반짝였다. 입을 조금 벌린 거북이는 당근 조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애처로울 만큼, 그리고 무지무지 느리게. 내가 당근 조각을 다시 거두는 순간까지도, 거북이의 손은 당근에 닿지 못했다. 심지어 뻗은 손을 다시 내려놓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 거북이었다. 당근을 얼른 먹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거북이었다.
‘뒤에서 두 번째로 밥을 먹는’ 삶의 전략이 지금도 유효한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홀서빙 일을 할 때는 순식간에 테이블 위의 접시들을 치우고, 그릇들을 나르기 위해 애를 썼다. 병원마케팅 회사에서 일할 때는 정해진 원고량을 쳐내기 위해 치열하게 일했다. 분 단위로 해치워야 하는 일들을 목록화한 다음, 미션을 깨듯이 일에 임했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말은 “알바 처음 해보세요?” “이 속도면 곤란해요.” 같은 말들이었다. 아르바이트에서 잘릴 때면 거북이는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세상인 걸까, 생각하게 된다.
당근을 먹지 못해 슬플 때가 있다. 이러다 영영 당근을 먹지 못해 굶어 죽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거북이들은 오래오래 살지 않는가. 그래서 마음 한편에 희망을 품어본다. 어쩌면 나의 살길은 누군가 주는 당근이 아니라, 나만의 바다를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모래사장에서 햇살을 맞으며, 바다를 바라본다. 나를 품어줄, 광활한 저 바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