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플을 먹으러 가던 중이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바람에 날아온 커다란 배너가 보였다. 이미 여러 번 밟히고 구겨진 배너는 우리가 서 있는 도로 앞까지 날아왔다.
'저대로 두면 위험할텐데...'
신호가 바뀌면 도보로 올려둬야겠다고 생각하며 한곰이의 손을 꼭 잡고 서 있었다. 노란불, 빨간불 그리고 차들이 멈췄다.
“잠시만, 저것 좀 올려두고 가자.”
한곰이는 이렇게 말하더니 내 손을 놓고 배너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미쳤다, 나 진짜 횡재…. 아니, 한곰인 정체가 뭐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사람 중에 도로 위를 굴러다니는 배너 따위에 관심을 두는 건 우리밖에 없었다. 신호가 바뀌고 다들 각자의 길을 가느라 바쁜 와중에 우리만 여전히 멈춰 서 있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서서,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행동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이게 바로 사람들이 '영원'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순간임을 깨달았다. 그날부터 한곰이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혼주의자다. 레즈비언이 비혼주의자라니 조금 황당할 수도 있겠다. 어차피 리퍼블릭오브코리아, 민주 공화국을 자처하는 우리나라에서 레즈비언은 비혼일 수밖에 없고 법적으로 결혼을 할 수 없는 사이이다. 그런 우리가 비혼주의라니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결혼을 할 수 없다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저세상 비관을 품고 있는 나의 성격상, 죽기 전에 대한민국 동성결혼 합법화가 이루어지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은 어떤 형태로든 한곰이와 가족이 되고 싶어 졌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수단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만약에'도 성립될 수 없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또한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의 의견 앞에서 우리의 선택은 별것 아닌 게 되어버렸고, 레즈비언이 비혼을 주장하는 우스운 꼴이 되었다. 아니, 이러저러 잡다한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정하긴 했는데, 막상 까보니 어차피 안 되는 거였더라니. 좀 많이 불쾌하지 않은가?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적어도 그건 우리의 '선택'이어야 하고, 모든 국민에 포함되는 나도 그 선택권을 당연히 가져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5천2백만 명의 대다수가 동성결혼에 찬성하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 신화를 쓰기도 전, 2001년에는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이후 벨기에, 스페인, 캐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노르웨이, 스웨덴, 포르투갈, 아이슬란드, 아르헨티나, 덴마크, 브라질, 프랑스, 우루과이, 뉴질랜드, 룩셈부르크, 미국, 아일랜드, 콜롬비아, 핀란드, 몰타, 독일, 호주, 대만, 오스트리아, 영국, 코스타리카, 태국, 스위스, 칠레, 쿠바에서도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멕시코에서는 합법인 지역에서 결혼했다면 전체 주에서 결혼을 인정한다. 대만, 오스트리아는 동성결혼 합법에 대한 사법부의 정식 판결이 있었다. 2021년 옆나라 일본에서는 동성결혼 금지에 위헌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아직'이다. 불법도 아니지만 합법도 아니라는 것이 사법부의 입장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6조 제1항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이유는 '양성의 평등', 즉 남녀의 결합을 기초로 한다는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민법에서는 혼인한 당사자를 지칭할 때 '부부(夫婦)', '부(夫) 또는 처(妻)', '남편과 아내', '부모(父母)'라는 성구별적 용어를 사용한다. 즉, 법적으로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기에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법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법이 나온다 한들 헌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우리는 '부부'에 포함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한곰이와 나는 일명 '클로젯 퀴어'다. 아주 가까운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우리의 관계를 모른다. 남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에는 애인이 있다고 말한다. 굳이 묻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연애 사실 자체를 밝히지 않는다. 우리가 디디고 있는 이 얇은 발판을 더 위험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일부러 말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이 약하디 약한 디딤판은 아주 작은 충격에도 흔들릴 수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우리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눈치채곤 한다. 그래서 아닌 척 숨긴 혐오도 금방 알아챈다. 당신이 잘 숨겼다고 생각했던 속에 품고 있는 마음도 때때로 우연찮게 드러나 우리에게 생채기를 남긴다. 한곰이가 한순간이라도 나로 인해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주는 상처뿐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기인한 상처도 받지 않기를 바란다. 이 사회에서 나의 존재가 한곰이의 약점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권리마저 빼앗기고 침략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우리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다. 이미 잃은 권리보다 아직 잃지 않은 권리라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남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쓸 필요 없고, 일절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도 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상처받지 않는 건 아니다.
우리는 연인인 동시에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는 친구 관계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본 뉴스 이야기를 하고 점심을 먹으면서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를 한다. 저녁을 먹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밤에는 우리 이야기를 한다. 서로의 이야기만큼이나 세상에 할 말이 많은 둘이 만나서 그런지 우리는 언제나 이야깃거리가 넘쳐났다. 미래 계획 속에는 당연히 서로가 존재하고 틈만 나면 한곰이와의 십 년, 이십 년 뒤를 그려보고 상상한다.
공통의 취미를 가진 우리는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이다.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쌓여가는 책 목록을 공유하며 함께 읽을 책을 고르고 있을 것이다. 저녁에는 아마 비건 탕수육을 먹으며 우리가 좋아하는 야구를 볼 것이다. 으레 부산사람들이 그러하듯 애증의 롯* 자이언츠를 응원하며 지는 날에는 전력을 분석하고, 내일은 무엇을 먹을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자기 전 잠깐 들어가 본 메일함에는 다 읽지 못한 뉴스레터가 쌓여있을 것이고, 나는 하나라도 더 보려다가 뻑뻑해진 눈을 비비는 한곰이에게 인공눈물을 넣어주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서로 '오늘'을 이야기하고 함께 '내일'을 고민하며 잠자리에 들 것이다. 휴일에는 오랜만에 외식을 하며 이 모양 이 꼴, 저 모양 저 꼴인 세상만사에 열분을 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맛있는 라떼 한잔에 배시시 거리다가 또 금세 지쳐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마 앞으로는 더 자주 한곰이와 가족이 되는 상상을 할 것이다. 그 방법이 결혼이든, 아니든. 우리는 누군가의 허락을 구하며 살아갈 생각은 없다. 각자의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정했을 뿐, 우리는 그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고 세상의 인정도 바라지 않는다. 마치 세상이 우리를 거부하고 있고 사회에 허락받지 못한 모습으로 보인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의 형태로 살아가며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다.
생일에 맞춰 휴가를 냈다. 생일은 꼭 자신과 보내야 한다며 한곰이는 한 달도 전부터 신이 나 있었다. 생일에 큰 감흥이 없었지만 어쩌면 그녀의 신난 모습에 나도 조금 들떴을지도 모른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 침대 속에서 뒹굴거렸다. 옆에서 곤히 자는 한곰이는 사랑스러웠고, 커튼 너머 보이는 하늘은 무척이나 맑았으며,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모두 초록색으로 보통인 날이었다. 점심은 오랜만에 파스타를 먹었고 근처 카페에서 차가운 라떼를 마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조각 케이크를 샀고, 미리 주문해 둔 치킨을 가지러 갔다. 돌아오는 길은 뿌링클 냄새로 가득했다. 한곰이가 부엌을 왔다 갔다 하며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노트북 전원을 켜고 세팅을 했다. 17시, 알람이 울렸다. 야구를 볼 시간이다. 창밖의 파랗던 하늘이 조금 붉어졌고 밖에서는 지하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서로를 돌아봤다.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리는 닭다리를 손에 들고 마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1초, 2초, 3초 그리고 웃는 너의 얼굴. 찰나가 영원이 된다고 했던가? 지금도 이 순간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사진으로 남기지 못 한 그 찰나를 아마 아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처럼 가슴이 사무치게 행복했으니까 말이다. 이 장면이 이토록 기억에 남는 건, 아주 나중에도 한곰이와 마주 보고 웃을 날을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그날은 초록을 가득 품은 수채화의 형태로 남았다.
나는 여자친구가 있는 여자이고, 그래서 이 사회가 조금 불편하고, 가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세상의 사각지대에서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 현실은 홈런도 맞은 상황인 데다가 상대 팀과 점수 차이도 엄청나다. 우리 팀 주자는 아직도 1루 베이스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지금 타석에 선 우리가 꼭 홈런을 치지 않아도 된다. 2루로 가기 위한 안타여도 괜찮다. 지금 쓰는 이 글도 앞으로 나올 책들도 홈런은 아닐지언정 우리가 2루 베이스를 밟을 수 있게 하는 안타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러니 아직 홈 베이스를 밟지 못했다 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당장 이기려고 하지 않아도 차분히 베이스를 지나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이길 날이 올 것이다. 9회 말 2 아웃에서도 역전이 가능한 게 야구고 우리는 아직 지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비혼주의이고 레즈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