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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cozy Mar 20. 2024

괜찮다는 말 한마디

03.19.2024

조깅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  

앙상했던 나무에 어느새 예쁜 연두색 잎들이 돋아나고 있다.

봄의 색인  연둣빛 여린 잎들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멀리서 자전거 벨이 울리는 소리가 난다.

마치 자기를 좀  봐달라는 신호처럼 띠링띠링 계속 벨을 울리며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가 다가오고 계셨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할아버지가 말을 건네신다.

생각해 보니 예전부터 할아버지가  벨을 울리며 동네를 돌고 있었던 게 기억이 났다.

70대는 넘어 보이시는 피부도 수염도 새하얀 할아버지.

얼마나 자전거를 타시는지 여쭤보았다.

하루에 다섯 번은 타시고 합하면 한 시간 정도 타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코너에 있는 케어홈에 다른 몇 분과 같이 사신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마치 맘을 터놓을 사람이 필요했던 것처럼 세세한 것까지 나에게 털어놓으셨다.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을 했고

여동생은 알코올 문제가 있어 떨어져 살아야 하고

크리스가 자길 방문해서 챙겨주는데 다른 할아버지들과 문제 일으키지 말라고 혼낸다고 한다.

크리스가 아들인지 누구인지는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를 케어해 주는 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돈이 더 있으면 따로 나가서 건너편 동네에서  살고 싶다는 구체적인 소망을 얘기하는 할아버지가 안쓰러웠다.

불안증세가 있어 하루에 몇 번씩 그렇게 홀로 자전거를 타시며 동네를 돌고 도시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말이 다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할아버지의 눈빛에 녹아있는 노년의 쓸쓸함과 불안감은 진짜란걸 알수 있었다.

얼마나 불안하고 외로우면 처음 보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털어놓으실까.

마음이 먹먹해지면서  우리 부모님과 시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어떤 말을 해드려야 할까

할아버지랑 얘길 하는 중에 생각해 보았다.

결국 할아버지의 얘기 끝에

" 지금도 너무 건강해 보이세요. 괜찮아요, 앞으로 잘되실 거예요"

라는 간소하지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전부의 말들을  해드렸다.

그러자 어두웠던 할아버지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

할아버지는 고맙다고 웃으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도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리며 좋은 하루 되시라고, 다음에 또 뵈자고 말했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바랬던 건 거창한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괜찮다고, 잘될 거라는  서툴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할아버지의 걱정들을 조금 더 가만히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오늘 할아버지가   

조금 더 힘차게 페달을 밟을 수 있는

힘이 되어드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James coates fine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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