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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을 깨우는 시간 [종로 숙소 | 더채 : 하우도]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감각을  

향유하는 여정


글ㆍ사진  전욱희


2월의 어느날.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 오는구나, 싶었던 무렵 밤새 눈이 내려온 세상이 하얘졌다.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새해를 맞아 모이기로 한 날이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스테이, 더채 : 하우도. 



삼청동의 고즈넉한 골목 속 위치한 하우도는 안국역에서 도보로 20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다. 걸어가는 내내 발길을 멈추고 골목을 기웃거린 탓에 어느새 추운 겨울바람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귀여운 단팥죽 가게의 모퉁이를 돌아 골목으로 들어가면 마주하는 스테이의 입구. 한식 대문을 열면 작은 마당과 이를 품은 8칸의 한옥이 펼쳐진다. 



처음 마주하는 공간인 거실에는 함께 둘러앉을 수 있는 빅테이블이 있다. 테이블 뒤로 위치한 장을 열면 간소하지만, 알찬 주방이 펼쳐진다. 거실을 중심으로 양옆에 각각 침실과 욕실이 구성되어 있어 따로 또 같이 모이기 좋은 공간이었다.



스테이를 둘러보며 놀란 점은, 이 공간을 채우는 물건은 각기 알맞은 자리에 더함도 덜함도 없이 놓여 있었다. 디자인 또한 감각적이고, 소재와 컬러, 형태가 어쩜 긴 시간을 지나온 한옥과 잘 어울리는지. 



스마트 IoT를 통해 조절할 수 있는 실내 온도와 조도, 사운드는 이 공간이 과거로부터 현재를 지나 좀 더 나아간 미래까지 함께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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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내려놓고 발견한 테이블 위의 책 속에는 하우도만의 감각 여정이 설명되어 있다. 오감을 주제로 각 감각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더채 : 하우도. 정성스레 준비된 프로그램들에 이곳에 머무는 하루 동안 기꺼이 이 여정을 따라가 본다.



친구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1시간 정도 남은 탓에 조용한 스테이에서 몸도 녹일 겸, 여유를 즐기고자 차를 마셨다. 물을 끓이고, 찻주전자와 찻잔을 고루 데우고, 준비된 꽃차를 우린다. 맑은 빛의 차를 잔에 따르고 창밖을 보니 그칠 듯 말 듯 한 눈이 처마 아래로 천천히 흩날린다. 



따끈한 차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보며 창밖을 바라보니, 마치 노천탕을 즐기는 것 같았다. 한 모금마다 느껴지는 고소하고 맑은 차의 향과 맛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친구들이 올 시간이 다 되었다.



거실 옆 야트막하게 구성된 공간에는 명상을 위한 싱잉볼과 팔로산토 스틱이 준비되어 있다. 친구들이 오기 직전 창을 조금 열고 스틱에 불을 붙이고, 피어오르는 여리한 연기를 멍하니 바라본다. 친구들을 반갑게 맞이해주고 싶어 공간을 깨울 겸 피운 향이 어느새 내 마음도 상쾌하게 환기해 주었다.



친구들이 퇴근하고 바로 온 탓에 배고플까 테이블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친구들도 공간을 둘러보고 난 후, 테이블에 둘러앉아 긴 대화가 이어졌다. 낮고 은은한 식탁 등은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마침 친구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탓에 생일 파티도 하고, 그간 밀려있던 서로의 이야기를 하니 저녁이 금세 무르익었다.



늦은 밤이 찾아오자, 스테이에 준비되어 있던 빔 프로젝터로 영화를 봤다. 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각자 편한 자세로 영화를 보는 시간. 많은 대화를 하지 않고 함께 모여 보내는 것만으로도 채워지는 우리만의 추억.



어제와 달리 눈이 녹고 있는 고요한 아침, 부드럽고 따뜻한 온기를 품은 이불 속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 채 여유를 부려본다. 



푹 잔 탓에 노곤해진 몸으로 욕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을 받고, 욕조에서 몸을 더 풀어본다. 준비된 입욕제의 설명을 꼼꼼히 읽으며, 지금 나에게 필요한 쉼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은은하게 퍼지는 향과 온기에 느리게 세는 시간. 목욕을 마친 후에는 천연 소재의 수건으로 몸을 닦고, 준비된 샤워 가운을 걸친다. 몸에 닿는 소박하고도 부드러운 질감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행동의 속도를 조금 늦추는 것만으로도 달라지는 기분이 놀라웠다.



목욕을 마친 개운한 기분으로 우리는 다시 거실로 모였다. 나는 커피를 내리고, 친구는 옆에서 싱잉볼을 쳤다. 원두를 갈고, 정성스레 물을 따르는 동안 귓가에 울리는 싱잉볼 소리. 두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잡념은 사라졌다. 커피의 향과 울림이 퍼진 공간에서 기분 좋은 멍함으로 이곳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더채 하우도로 향하는 길,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며 대화하는 시간, 눈을 뜬 후 이불 속에서 포근함을 음미했던 시간, 고즈넉한 아침 커피 한잔을 만들며 이곳에서 일어나는 경험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 오감을 이용해 그 시간을 충분히 음미하다 보면 어느샌가 잡다한 생각과 불안은 사라졌다. 자세를 갖추고 깊은 명상을 하지 않아도 기분 좋은 틈새의 명상이 채워졌던 하루.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했던 이곳에서의 경험은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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