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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한옥 [경주 숙소 | 헤리티지 유와]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이곳에는

또 다른 경주가 있다


글ㆍ사진  신은지



경주만큼 흥미로운 여행지가 또 있을까. 지역 전체가 하나의 역사서 같다. 고분 사이마다 아직 발굴하고 연구해야 할 과거의 기록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고, 이 문화유산이 생활 공간과 아주 가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최근에는 황리단길을 중심으로 볼거리가 더 다양해져 당연히 가장 자주 방문하는 여행지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부모님의 마지막 방문은 50년 전이었다. 1970년대 수학여행의 추억에 2024년의 새로운 풍경을 덧입히고자 가족여행을 기획했다.


가족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정하고 편안한 숙소. 도보로 경주를 여행하기 좋은 위치에 자리하면서, 경주다움을 느낄 수 있는 한옥 구조, 동시에 호텔처럼 깔끔한 공간을 찾기 위해 분투했고, 마침내 우리 가족의 니즈를 완벽히 충족하는 '헤리티지 유와'를 만났다. 



경주 한옥 스테이 '헤리티지 유와'는 한옥과 호텔을 결합한 곳으로, 경주의 고유한 분위기를 가까이 느낄 수 있으면서도 편안하고 깔끔한 공간이 인상적이다. 걸음 유迶, 누울 와臥. 그 이름에 걸맞게 한가로이 곳곳을 거닐 수 있는 분위기와 구조를 갖췄다.


이름이 '유와'인 데에도 흥미로운 배경이 있다. 백제와의 전쟁을 앞둔 김유신 장군이 자신의 집 앞을 지나던 중,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물맛이 옛날 그대로라며 감탄했다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고. 김유신 장군에게 이 휴식은 어떤 의미였을까를 생각하며 공간을 기획한 것이다. 실제로 인근에는 이 설화에 등장한 우물 '경주 재매정'이 자리한다.



현대적인 미감으로 재해석한 한옥 호텔은 입구부터 독특한 정취가 있다. 손명문 건축가와 황지해 정원 디자이너가 이곳을 디자인했는데, 경주 월성의 해자에서 출토된 한옥 자생종 씨앗을 모티브로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길게 뻗은 통로는 가로수 정원으로, 입구 옆 불명을 위한 장소는 지붕 모양으로 구성해 예술적인 멋을 풍긴다.



길게 뻗은 통로를 따라 들어서면 제법 규모 있는 한옥 여러 채가 이어진다. 오늘 머무를 곳은 '프리미엄 202호'. 겨울의 끝무렵 떠난 여행이라 흐린 하늘이 아쉬웠지만, 대문을 열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작게 피어난 봄 한 송이였다. 일찌감치 꽃봉오리를 틔운 동백이 존재감을 발하고 주변에는 다양한 수목이 새순을 틔우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갤러리처럼 우아한 인상의 한옥이 우리를 반긴다. 현관은 도자기와 식물 장식만을 두어 여백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는데 넓고 높은 천장 구조와 어우러져 더욱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부모님이 참 좋아하셨던 고급스러운 첫인상.



헤리티지 유와의 메인 공간인 거실. 다른 한옥 스테이에서는 찾기 힘든 형태다. 누마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사방이 창으로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에는 낮은 좌식 테이블이 자리한다. 좌식 테이블인 만큼 탁 트인 공간감이 살아있었고 석재와 목재를 활용해 만든 가구의 디테일도 굉장히 고급스러워 시선이 갔다. 따스한 계절이라면 창을 활짝 열고 유유자적 풍류를 즐길 만한 구조였다. 



거실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더블 베드가 나란히 배치된 침실이 나타난다. 침실은 온전히 쉬는 공간인 만큼 최대한 자극을 덜어내고 미니멀하게 다듬고자 한 기획자의 의도가 느껴졌다. 특히 벽 마감의 라인과 재질을 살려 감쪽같이 제작한 수납장의 디테일이 근사했다. 아이보리빛이 감도는 벽 마감은 종이를 연상시키는 입체적인 질감을 지녀 모던한 구조임에도 한옥의 정체성을 은은히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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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안쪽에 자리한 욕실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가 강했다. 복도형 구조의 가장자리는 간접등과 회화 작품을 두어 갤러리에 방문한 듯 고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옥의 천장 골조가 보이지 않아 더욱 현대적인 공간처럼 여겨졌는데 창호문을 본뜬 창문과 단정한 면으로 가다듬은 탕의 형태에서 한국적인 아우라를 잃지 않았다. 세면 공간에는 친환경적인 동구밭 어메니티와 다이슨 드라이기가 비치되어 편리했다.



목재 구조인 한옥 특성상 화기를 사용하는 조리는 불가하다. 하지만 전혀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포트, 전자레인지, 커피머신 등의 제품과 다양한 디자인의 도기와 커트러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실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한 것은 야마하 스피커. 가야금 작품집을 틀어 두고 창 너머를 바라보니 이보다 더 완벽한 휴식이 없었다.



헤리티지 유와 프리미엄 객실의 가장 매력적인 공간은 외부 노천탕을 꼽을 수 있겠다. 다만 아직 날씨가 추워 사용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가족 모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탕의 크기도 넉넉하고, 정원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오붓하게 온욕을 즐기기 참 좋을 것 같다. 친절한 푯말을 따라 지금 봄을 기다리는 식물들의 이름을 천천히 둘러보고 다시 객실로 들어갔다.



노천탕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실내탕에서도 충분히 노천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탕 맞은편에 완전히 열 수 있는 창이 있어, 신선한 공기를 맞으며 따스히 달구어지는 체온을 느끼니 온몸의 피로가 서서히 풀렸다. 편히 앉을 수 있도록 단이 있어 번거롭지 않게 족욕만 즐기기에도 좋다. 아버지가 정말 알차게 사용하셨던 공간.



헤리티지 유와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월정교가 있어 야경을 보고 산책하기 알맞다. 또 현지 택시 기사님들이 수없이 추천해주신 쌈밥 맛집도 있어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따듯한 기운으로 충전한 몸을 일으켜, 편안한 저녁 나들이를 즐기고 돌아오는 길. 밤이 깊어질수록 서늘해지는 공기에 얼어붙은 손끝을 유와의 정원이 녹여준다. 저녁이 되면 기와지붕을 따라 조성된 불멍 존에 불꽃이 피어오르는데, 둥근 구조물 안쪽에 나란히 둘러앉을 수 있는 형태라 옹기종기 모여 앉을 수 있었다. 담소는 객실에서도 이어졌다. 50년 만의 경주 여행이 제법 성공적이셨나보다. 이곳에만 봄이 찾아온 것인지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따스하게 무르익어가는 경주에서의 밤. 



큼직한 침실 덕분에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한 공간에 모여 잠들었던 포근한 밤. 이튿날, 부모님과 함께 온 여행이라 잠자리에 걱정이 많았는데 매트리스가 편안하셨는지 푹 쉬고 일어나셨다고 했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다 조식 시간에 맞추어 스테이 내부의 카페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조식이 무료로 제공된다. 가볍지만 든든한 아침을 완성하는 브런치 타입의 식사. 샌드위치와 요거트, 과일로 집에서도 챙기지 못한 건강한 아침을 만끽하고는 가로수 정원을 여유롭게 거닐었다.



체크아웃 시간인 11시에 맞추어 나갈 채비를 마쳤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아침 일찍 방문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으나 유와를 일찍 나가기에는 너무도 아쉬웠기에. 창으로 둘러싸인 거실 공간의 낮 시간을 오래도록 즐기려면 연박을 하는 것이 좋겠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어제보다 따듯해진 햇볕을 만끽했다.



밤의 실내탕과 낮의 실내탕은 각기 다른 묘미가 있다. 밤에는 밝은 실내에서 선선한 공기와 함께 온욕을 즐겼다면, 낮에는 반대로 작은 동굴에 은신하듯 몸을 내려놓은 채 빛나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게 된다. 해가 지고 뜨기까지 헤리티지 유와가 선사하는 공간의 면면을 눈에 담고 또 경험하며 느긋한 쉼의 시간을 보냈다.



온전한 쉼을 누리고 나서인지 가족 모두의 표정이 밝았다. 헤리티지 유와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경주라는 도시를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한 공간 중 하나일 것이다. 한옥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도 사용성이 뛰어나 편안하고, 여러 세대가 함께 머물더라도 모두의 취향을 만족할 수 있는 단정한 매력의 공간. 또 정원과 공간 곳곳에는 기획자가 의도한 역사적 스토리텔링이 반영되어 여러 디테일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다. 만약 경주 여행을 고민한다면 헤리티지 유와로의 발걸음을 망설이지 말길. 이곳에는 또 다른 경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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