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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은 처음이신가요? [춘천 숙소 | 스테이 그믐]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그믐의 마음을 

채우는 하룻밤


글ㆍ사진  김송이ㆍ신은지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한증막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땀을 닦으며 나왔을 때의 시원함. 참으로 반가운 날씨에 엉덩이가 들썩인다. 서면(夏眠)하듯, 휴일에는 대부분 집에서 나가지 않고 에어컨 바람만 쐬었으니 몸에 묻은 집 먼지를 털어낼 때가 왔다. 


주말에 떠났다. 여행지는 춘천으로. 서울에서 경춘선을 타면 1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왕복 2만원 정도면 충분해서 짧은 휴가에 더없이 적절한 여행지다. 



남춘천역에서 도보로 25분이면 도착하는 스테이 그믐. 택시를 타고 올 수도 있었지만 동네 풍경을 천천히 보고 싶어서 걸어왔다. 버스정류장 앞에서 동네 아이들이 버스를 타는 모습, 이웃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모습. 모두 걷는 속도에 맞추어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스테이 대문 옆에는 그믐달 모양의 로고가 있다. 그믐이 지나면 새로운 달이 차오르듯 이곳에서 휴식하고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 새로운 달을 채우라는 의미이다. 호스트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이 작은 로고는 이곳이 보여주는 디테일의 시작. 



문을 열자 커다란 나무가 있는 마당과 정갈한 한옥이 보였다. 나무와 기와지붕이 겹쳐진 풍경을 바라보다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전통 가옥에서 오는 묘한 향수 때문일까.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람들이 한옥 스테이를 찾는 이유는 이런 감각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테이 그믐의 마당에는 여름 흔적이 아직 여기저기 남아있다.  



다이닝 공간, 테이블 위에는 호스트님이 준비해주신 조식과 간식거리가 놓여 있었다. 원래 식빵을 조식으로 준비해 주시는데 오늘은 자주 가시던 빵집의 식빵이 모두 떨어져 소금빵을 준비해 주셨다고 한다. 내일 아침에 따뜻하게 먹을 수 있도록 소금빵을 토스트기로 굽는 방법까지 그림으로 그려 주셨다. 언제 어디서든 메일과 문자를 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역시 소중한 마음을 전하는 것은 손으로 직접 쓴 편지다. 대면하지 않더라도 편지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가이드북은 턴테이블 사용법, 공간 경험에 대한 짧은 글과 함께 삽화가 그려져 있다. 아까 편지에서도 느꼈지만 호스트님의 그림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이것도 분명 직접 그리셨으리라! 보통의 스테이들은 길거나 짧거나 관련 내용들이 모두 글로 소개되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읽다가도 금방 덮어버리거나. 


글의 양이 줄고 삽화가 커서 설명을 위한 가이드보다는 귀여운 그림책을 읽는 듯했다. 그래서 그림 구경을 하느라 가이드북을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LP장에서 하나 꺼내 들고 턴테이블에 올렸다. 라라랜드부터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 대중적인 음악부터 조금 더 깊이 있는 취향의 음악까지 범주가 다채롭다. 


반대편에는 작은 독서 공간이 있다. 호스트님이 왜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리시지.. 업으로 삼고 계신 걸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다 독서 공간에 진열된 그림책들을 보고 이유를 알았다. 귀여운 그림들이 담은 진중한 의미를 보고 스테이 그믐의 로고가 떠올랐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자쿠지와 다도 공간이 있다. 오늘의 차는 운남 백차와 국화차. 우리는 다가오는 가을을 축하하기 위해 국화차를 먼저 마셨다. 주전자에 담긴 물속에 국화꽃이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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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우리는 동안 백색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는 도구와 지우는 도구가 준비되어 있다. 우리는 그렸다가 지웠다를 반복했다. 호스트님처럼 예쁜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나는 밭을 간 것처럼 수많은 고랑밖에 만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예쁜 고랑을 만들기로 했다. 



차를 마실 때마다 눈이 자꾸만 바깥을 향한다. 무더웠던 여름이지만 찬란한 초록색의 풍경이 지나가는 건 아쉬운가 보다. 다시 책을 들고 툇마루에 앉았다. 이곳에 앉으면 풍경소리와 새 소리가 들린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따라가보니 마당의 나무 위에 사는 딱새 가족을 만났다. 딱새 새끼는 보기가 귀하다고 하던데 좋은 경험을 했다. 



낮잠을 자볼까. 침실로 가는 길에 기둥에 숨어 있는 인형을 찾았다. 흑.. 너무 귀엽다. 그믐의 목재 색깔과 맞추어 옷도 까만색이다. 그믐을 처음 봤을 때 모던하고 깔끔한 한옥이라고 생각했는데 숨은 디테일이 이토록 사랑스럽다. 



저녁에 먹을 간식과 음료수를 준비하기 위해 근처 세븐일레븐에 다녀왔다. 편의점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는데 우리가 더울까 봐 접혀 있던 파라솔을 펴서 그늘을 만들어 주시던 친절한 사장님. 



주방에는 다양한 식기류와 술잔, 컵과 그릇이 있다. 호스트님의 취향처럼 식기류도 귀엽다. 특히 저 소주잔은 술을 담으면 선비의 얼굴이 빨갛게 물드는 소주잔인데 실제로는 처음 봤다.



이곳에서 인생 참치회를 찾았다. 


가이드북에는 호스트님이 추천하는 맛집과 그 이유가 쓰여있다. 역시 현지인의 추천 맛집답다. 나는 여행에서 식사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가이드북 덕분에 주변 맛집을 검색하는 시간을 아꼈다. 이렇게 간편하게 인생 참치회를 찾다니... 다들 그믐에 가시면 꼭 이곳의 참치회를 드셔보시길! 



에탄올 난로 앞에서 하이볼을 홀짝인다. 연료가 딱 30분 분량이라서 적당히 불멍하기에 좋다.


거실의 빔 프로젝터에는 넷플릭스와 같은 다양한 OTT 서비스가 연결되어 있다. 뱅앤올룹스 스피커도 준비되어 실감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스릴러 영화를 골랐는데 선명한 음질에 나도 모르게 리모컨으로 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저녁의 그믐은 정말 그믐달처럼 은은하게 빛난다. 스파 공간이 특히 그렇다. 욕탕에 입욕 소금을 풀고 발을 담갔다. 옆에는 목욕 가운도 마련되어 있다. 귀뚜라미가 우는 밤이 그렇게 지나간다. 



요즘은 칫솔이 준비되지 않은 스테이가 많다. 그래서 칫솔을 깜빡 두고 오면 참 곤란하다. 근처 편의점에서 구매해도 되지만 사소한 비용이 아깝기도 하고. 그믐은 세면대 옆에 칫솔과 치약이 든 덴탈 키트가 준비되어 있다. 게다가 다이슨 드라이기까지! 수압도 훌륭했다.



새벽에 일어나 해먹에 누웠다. 아직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건너편 집의 지붕을 눈에 담기도 했다. 운이 좋으면 저 지붕을 지나는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기와장 위에서 통통 뛰는 까치를 보았으니 반쯤 행운인걸까. 



체크아웃 전에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원두는 Koffee sniffer의 Toasty Blend. 나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아 드립 커피는 막손인데도 가이드가 있어 쉽게 내릴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은지님이 맛있게 드셨다. 수동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면 손이 아파오는데 이곳의 그라인더는 굉장히 부드럽게 갈린다.


소금빵도 편지에 써주신 대로 토스트기로 데웠다. 겉바속촉의 진수. 하루 지난 소금빵임에도 갓 구운 것처럼 따끈하고 풍미가 살아 있다. 정말 맛있는 빵집에서 준비해 주셨나봐. 



혼자 돌아다니다가 발을 헛디뎠다. 누가 봐도 구급함 같은 파우치에 각종 상비약과 반창고가 들어 있어서 빠르게 조치할 수 있었다. 머무르다가 다쳤다면 LP장 하부를 확인하면 된다. 



게스트가 추천하는 가게가 가이드에 반영될 정도로 호스트님은 방명록을 꼼꼼히 살펴보시는 것 같다. 우리도 기록을 남겼다. 그림을 좋아하시는 호스트님이라 그믐에서의 하루를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초등학생의 그림 일기가 완성됐다. 초등학교는 졸업했지만 그림 실력은 여전하다. 그래도 전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겠지. 



가이드에 대해 여덟 번쯤 말했는데 이곳을 경험해 보면 안내가 얼마나 섬세한지 느낄 수 있다. 다양한 경험이 준비되어 있지만 가장 인상깊은 것은 역시 가이드(이제 아홉번째). 처음 만난 공간일지라도 익숙하고 편하게 이용하길 바라는 호스트님의 진심 덕분에 1박 2일을 정말 알차게 쉬다 간다. 


또다시 그믐의 상태가 되면 달을 채울 준비를 하러 와야지. 참치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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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김송이
종종 자연의 품으로 떠나고 좋아하는 순간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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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 신은지
공간을 통해 세상을 읽는 뚜벅이 여행가.

▶️ 작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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