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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호수 그리고 사색 [경주 감성 숙소 | 유온]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너른 청보리밭을 

지나는 바람처럼


글ㆍ사진  안수향



여행을 일로 하던 시절, 어쩌면 그 마지막 여행이 끝나던 순간 나는 경주에 있었다. 신록이 짙어져 가던 계절, 비로소 누추한 배낭을 내려놓으며 긴긴 여행에 마침표를 찍었다. 어떤 풍경을 만났고 또 한 사람을 만났고, 그러다 앞으로 꽤 오래 이곳에서 살아가겠구나! 하는 마음이 마치 너른 청보리밭을 지나는 바람처럼 청량하게 밀려오던 순간이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그렇듯 가끔은 그다지 거룩하고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아주 사소해 보이는 이유로 인해 삶은 변화하기도 하는 것이다. 



햇수로 4년째 경주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감사하게도 바삐 지내고 있다.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났고 좋은 풍경도 많이 마주했다. 끝난 줄 알았던 여행이 실은 여전한 기분을 들게 할 만큼 여전히 경주는 여행하듯 나를 살게 한다.



사진가와 작가로서 밥벌이한 지 겨우 10년, 그리고 올해 소박한 티룸의 주인장으로 살아보기까지 결심한 이후 때론 푸념할 시간조차 아까워 미뤄두곤 했다. 무얼 증명하기 위해 이토록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건지, 의문과 자책 가득한 잠을 청할 때면 나의 짧고 옅은 밤사이 유쾌하지 않은 꿈들이 다녀가곤 한다. 그런 아침이 잦아질 때, 무조건 달리기만 해서는 멀리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되뇌어 본다. 조금 쉬어갈 시간이다. 집과 조금 먼 동네로 가자고 생각한다. 숲도 호수도 있었으면 좋겠다. 볕도 바람도, 그 누구도 아닌 내게 곧장 닿기를, 습기 가득한 이 마음을 잘 다독여 말려주기를 바라면서. 



<유온>을 찾았다. 문득 보게 된 한 장의 사진 덕분이다. 창밖으로 너울처럼 일렁이는 청보리밭 풍경에 마음을 온통 빼앗겼다. 이번엔 푹 쉴 요량으로 세 시 체크인 시작에 맞춰 도착했다. 공용공간 겸 로비에 도착해 번호표를 챙긴 뒤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체크인 순서를 기다린다. 사진으로만 보던 로비 바깥엔 청보리밭을 대신하여 푸르디 푸른 옥수수밭이 고즈넉히 있다.



친절한 직원분이 챙겨주신 시원한 웰컴티와 티푸드를 먹으면서 바람에 천천히 일렁이는 풍경을 보고 있으니 이미 마음은 풍요에 다다른 듯하다.



곧장  내 차례가 되어 체크인카운터에 앉아 숙소에 대한 설명과 이용 방법에 대해 듣는다. 유온이 남다른 점은 원하는 시간대에 프라이빗하게 스파를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원하면 전용 식당에서 저녁 식사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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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와 저녁 식사, 그리고 방으로 배달되는 간단한 아침 식사까지 시간과 내용을 확정하고 나면 또 한 가지 선물을 받게 된다. 숙박하는 동안 이용 가능한 즉석카메라(인스탁스 미니)와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다. 카메라엔 필름 10장이 꽉 채워져 있고, 스피커는 스파를 하는 동안에도 옆에 두고 쓸 수 있다. 이토록 섬세한 배려라니, 나의 휴식을 존중받고 있다는 기분으로 시작하는 이 짧은 휴가는 이미 대만족이다.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스파에 갈 채비를 한다. 스파는 시간대별로 예약이 가능한데, 체크인 순서대로 예약이 가능하고 혹여나 한 번 더 스파 예약을 하고 싶다면 추가 금액을 결제하면 된다. 나는 4시 반으로 예약했다. 수영복 또는 스파에 적절한 옷 위에 숙소에서 제공하는 가운을 입고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안내에 맞춰 입장할 수 있다. 



그리고 유온에 머무르는 동안 라운지에서 1인당 3잔씩 음료를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는데, 입장 전 원하는 음료를 미리 주문하면 스파를 하는 동안에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차분한 인센스 향기와 물소리, 게다가 창밖으로 펼쳐진 숲 풍경이 맞이해주는 프라이빗 스파 공간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고즈넉하고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요즘 하는 일에 관한 영감이 필요했던 탓에 좋아하는 잡지 한 권을 챙겨와서 스파를 하는 동안 차분히 읽었다. 



입장 전 시원한 에이드를 주문하여 가져온 덕분에 따뜻한 물 속에서 시원한 음료로 목을 적시는 호사도 실컷 누려본다. 열린 창밖으론 무성한 숲이 보이고, 마침 들려오는 새소리 덕분에 말랑말랑해진 마음, 그 사이로 그제야 시원한 바람이 든다. 사르르, 오래 굳어있던 무심한 표정 하나마저 녹는 듯하다.



뒤뜰에서 잠시 산책을 즐긴 뒤 예약했던 식사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이동했다. 우리만 있는 듯 숙소가 조용했던 터라  제법 많은 사람들이 식당에 있어서 놀랐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좌식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지역특산물을 활용한 코스요리가 순서대로 제공된다. 



전채로 나온 동해산 문어숙회와 해초 샐러드를 소스와 김에 곁들여 한입 무니 청량한 바다내음이 느껴지며 기분도 한결 개운해진다. 새우를 곁들인 야채 샐러드와 본식으로 나온 한우 불고기덮밥, 후식으로 커다란 멜론이 올려진 판나코타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국내 여행을 제법 다녀봤지만 이렇게나 고객을 배부르고 등따시게(?) 만드는 곳은 참 오랜만이다. 나의 터전 경주에서 이토록 굉장한 호스피탈리티를 경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에 대해 다시금 격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유온에서의 클라이맥스는 아침이다. 깊은 잠을 푹 잔 덕분에 아침엔 조금 일찍 깨서 산책도 하고 새소리도 실컷 들었다. 나에게 있어 쉼이라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시간을 내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나를 돌보는 일이다. 저절로 기분 좋게 잠에서 깬 뒤 바람 소리나 새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으니 없었던 힘이 막 샘솟는 느낌이다. 



마침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 아침 9시가 되었단 뜻이다. 이 시간엔 체크인 때 안내받은 대로 간단한 아침 식사가 방마다 배달된다. 도톰한 나무상자를 가져와 여니 향긋한 커피와 따끈한 빵 냄새가 방 안으로 기분 좋게 퍼진다. 창밖으로 우거진 숲을 보며 가지런히 빵과 커피, 요거트를 테이블에 올려둔다. 



그리고 오랜만에 글을 썼다. 마침표를 찍고 볼펜을 내려놓으며 생각한다. 이 테이블 같은 가지런한 하루를 보내야지, 그리고 빵 냄새 같은 고소한 말들을 오늘은 주고받아야겠다. 건강한 다짐을 하며 다정한 식사를 하는 아침. 살면서 그런 아침이 내게 자주 올 때마다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너른 마음과 다정한 하루를 스스로에게 자주 선물하며 살아야겠다. 나의 쉼이 우리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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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


Traveler 안수향
글과 사진, 가장 좋아하는 것 두 가지를 일로 합니다. 세 권의 수필집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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