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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는 집 : 썸웨어


여러 순간들 속 그 어딘가


WHY

정의 내리고 싶지 않은 공간


몇 해 전부터 빈티지 가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금방 식을 줄 알았던 인기는 지금까지도 꽤 오래 지속되고 있다. 빈티지 가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면서 자주 회자되는 말 중 하나가 ‘미드센추리’이다. 1930년대부터 60년대를 이르는 이 말은 빈티지 가구 입문자라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법하다. 유럽의 미드센추리에는 관심이 많은 우리가 정작 한국의 미드센추리에는 관심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을 채워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서촌의 1930년대를 기억하고 있는 썸웨어다.


서촌, 수성동 계곡 물길 근처의 썸웨어는 오랜 세월을 머금고 있는 스테이다. ‘여러 순간들 속 그 어딘가’를 뜻하는 썸웨어는 무조건 원형을 보존하지도,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지도 않았다. 그저 시간의 흐름이 준 선물 같은 흔적들을 최대한 지키고자 노력했을 뿐이다. 그래서 썸웨어에서는 여러가지를 상상할 수 있다. 이 곳에서 그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원래 이 공간은 어떻게 활용됐는지 상상하다 보면 2020년에서 과거로 잠깐의 시간여행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서 가만히 고개만 들면 보이는 조그만 문, 방을 거쳐야만 올라갈 수 있는 2층 공간 등 썸웨어에는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한 것들이 한가득이다. 


썸웨어의 오우근, 함은주 대표는 시간을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시간의 흔적을 보존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시간 위에 현재와 앞으로의 시간들이 점차 쌓여 점점 변하는 썸웨어를 기대한다. 제법 넓은 공간을 욕심내지 않고, 여백을 살려 마무리했다. 욕심을 버리니 공간은 비로소 더 아름다워졌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사용자의 시간과 흔적이 매일매일 쌓여가 공간의 기록으로 남을 썸웨어는 늘 그래왔듯 앞으로도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 초대에 응할 시간이다.



PEOPLE

골목을 좋아하는 골목 여행자


썸웨어의 오우근 대표는 동료 건축가이자 부인인 함은주 대표와 함께 지음 아키씬 건축사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건축가 부부는 짬이 날 때면 찬찬히 골목 여행을 다닌다. 여행에 가서도 유명 관광지와 꼭 봐야 할 스폿 보다는 목적지를 두지 않고 하염없이 골목을 걷는다. 그러다가 취향에 맞는 곳이 생기면 털버덕 앉아서 밥을 먹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한다. “골목의 매력은 코너를 돌면 무엇이 있을 지 모른다는 것에 있어요.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실망할 수도, 기뻐할 수도 있겠죠. 그 너머를 기대하면서 걷는 그 감정이 좋아요.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썸웨어와의 첫 만남도 그렇게 시작됐다. 십 수년 전 우연히 골목 일대를 돌아다니다 ‘찜’ 해뒀던 집을 서촌으로 이사 오면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처음 이 집을 보았을 때는 어딘지 모르게 괴기스러운 분위기까지 났다고. 지금처럼 다가구 주택이 많지도 않았고, 골목길도 넓지 않았다. 좁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집 중에서도 유난히 그 집이 눈에 띄었다. 서촌으로 이사를 오고 다시 본 집은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 눈에 ‘아, 이집이다’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느리게 가는 서촌의 시간도 조금씩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그 집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이 집을 제외하고 일대는 모두 변해 있었다. 하지만 이 집만은 유일하게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나무가 더욱더 무성하게 집을 뒤덮고 있다는 점만 빼면 놀라울 정도로 변함없이 그 곳을 지키고 있었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 되면 무성한 나무들이 마당을 더 어둑하게 만들었지만 그것마저 좋았다. 고향의 부재에 아쉬움을 느끼던 오우근 대표에게는 그 어둑함이 유년 시절의 고향집을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한 번 뺏긴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그 집에서 태어나 6남매와 함께 그 집에서 자란, 그 집의 장녀를 만나게 됐다. 


최근까지 이 집에서 살던 노모가 돌아가신 후 처분을 계획 중이었다. 그 분을 만나 집의 역사를 듣고 나니 더욱 이 집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고. 무리인 줄 알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 집을 갖게 됐고, 리뉴얼을 시작했다. 대대적인 리뉴얼이 끝난 후에는 이 집에서 나고 자란 6남매와 이 집을 만나게 해준 부동산 사장님 내외, 리뉴얼 작업을 해준 공사자분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부부는 그 집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 각자의 추억을 공유하는 것은 생각보다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렇게 ‘여러 순간들 속 그 어딘가로’ 여행할 수 있는 썸웨어가 시작됐다.



LOCATION

서촌의 골목과 비탈길 사이 평범한 하루를 선물하다


몇 해 전 한바탕 젠트리피케이션이 쓸고 간 동네 서촌. 주차가 어렵고, 편리와는 조금 거리가 먼 이 동네는 그렇게 젠트리피케이션을 운 좋게 비껴갔다. 가족이 모두 모이는 저녁 시간이 되면 밥 짓는 냄새가 창문을 통해 전해지고, 더위를 피해 골목으로 나온 할머니는 집 앞의 작은 의자에 앉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손 뜨개질을 하기도 한다. 세련되지 않아도 그 어떤 생명들보다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 화분들과 그 화분들이 계절에 맞게 피우는 꽃은 골목의 분위기를 정답게 바꿔 놓기도 한다. 저녁까지 문을 열어놓은 가게들도 동네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 휘황찬란한 불빛을 내뿜기 보다는 간접조명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그래서 핫플레이스보다는 조용히 오래 가는 가게들이 많다.

썸웨어가 있는 골목을 걸으면 새삼 가로등이 참 밝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높은 건물에서 쏟아내는 도시의 빛이 아닌 가로등과 달이 주는 빛이 전부다. 그럼에도 무섭지 않은 것은 소소하게 골목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서촌의 풍경이 되었다. 영업이 끝난 주얼리 가게 앞 기다란 벤치는 마치 이른 저녁 식사를 끝난 할머니들을 위한 휴식처로 변신한다. 썸웨어 바로 앞에는 미지의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이 까마득한 높이의 계단이 있다. 올라갈 생각을 하면 아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저 너머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구비구비 골목길을 따라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썸웨어는 여러모로 궁금해지는 곳이다. 시간이 멈춘 동네 서촌과 그 시간을 함께 해온 썸웨어는 너무나 환상적인 조합이다.



MAKING STORY

앞으로의 시간을 의미있게 쌓는 과정


건축가 부부는 복원이 아닌 편의를 위한 변경을 선택했다. 해방을 전후로 태어나 수차례의 개보수를 거치는 동안 근대 이후 우리나라 주택문화의 변천과정을 죄다 품고 있는 이 집의 전체적인 공간구성은 전형적인 일본식 목구조로 설계되어있고 전통한옥의 축조방식과 근대건축의 공법이 혼재된 시공을 통해 두 개의 주거문화가 동시에 존재한다. 구조는 유지하면서 몇몇 공간은 지금의 생활양식에 적합하도록 바꾸어 나갔다. 기존의 작은 주방을 없애고, 방으로 만들어 화장실을 추가했다. 낯선 공간에 가면 화장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부의 성향은 썸웨어에서도 잘 드러난다. 주방 옆의 작은 방은 한식 침실로 바꿨고, 1층 복도에 있던 2개의 방을 합쳐 넓은 거실 겸 다이닝 룸으로 바꾸었다. 다이닝 룸에는 소파와 긴 테이블, 원래 있던 고가구를 활용해 만든 주방 가구들을 놓았다.


2층은 기존의 모습을 그대로 살렸다. 2층으로 향하던 1층 방의 바닥을 높이 올려 차실로 만들었다. 큰 창을 통해 밖의 풍경을 보면서 차를 한 잔 마실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 것이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깥 풍경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2층은 계단을 사이에 두고 큰 침실과 작은 침실로 나뉜다. 작은 침실에는 벽 한 켠에 꼭 맞는 사이즈의 책상을 뒀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등 이 넓은 집에서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창문 사이로 살며시 들어오는 햇살이 2층을 적당히 밝힌다.



가장 먼저 공사를 시작한 곳은 위험천만했던 담장. 심각한 안전문제로 담장을 모두 허물고 다시 세워야 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큰 나무 두 그루를 잠시 이설한 후 그 자리에 다시 심었다. 오래된 주목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대대적인 전지를 해야 했다. 옆집까지 길게 가지를 뻗고 있던 가지와 잎을 잘라낸 나무는 마치 항암치료를 끝낸 환자를 보는 것 같았다. 입구의 외벽은 내부와는 다른 분위기를 주고 싶었다. 공간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외벽도 높게 세우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거실 창호 역시 손을 볼 수밖에 없었다.


부부가 꼽는 이 주택의 매력은 ‘모호함’이었다. 구조는 일본식이지만 디테일은 국적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창살의 모양은 제각각이었고, 오래된 나무 문은 삐걱거렸다. 큰 방에 달린 화장실 역시 원형이 아니었다. 가늠하기도 어려운 세월동안 서툰 방식으로 얼기설기 보완하면서 증축되어 온 것이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지만 마당 한 켠에는 조그만 연못도 있었다. 공사하면서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 봄이 되면 흔히 보는 개나리 나무가 이 집의 마당에 심어져 있었다는 것. 다실 앞으로 옮겨 심은 큰 나무는 봄이 된 후 노란색 꽃을 피웠다. 이렇게 큰 개나리 나무는 처음이라 썸웨어에서 앞으로 마주할 봄이 더욱 기다려진다.



SPACE

누군가의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비일상적 스테이


어느 동네나 누군가에게는 삶의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서촌 역시 그렇다. 통인시장에 기름 떡볶이와 마약 김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촌 골목을 지키는 어벤져스 할머니들도 있다. 썸웨어에 들어서면 작지만 오붓한 마당이 있다. 이 마당에는 차 한 잔, 혹은 와인 한 잔 하기 좋은 의자가 놓여 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이 마당은 좋은 휴식의 공간이 된다. 한옥의 툇마루에 앉아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비를 보는 것은 더할 수 없이 낭만적인 경험이니까. 

긴 복도의 저 끝엔 방이 있다. 방이 있다는 것은 유추할 수 있지만 어떤 구조인지는 끝까지 가 봐야 알 수 있다. 원래 작은 주방이었던 이 공간은 방으로 만들고, 주방에 달린 문간방도 또 다른 침실로 만들었다. 이 방에도 작은 화장실이 있다. 돌아서 나오면 용변만 볼 수 있는 욕실과 씻을 수 있는 화장실이 또 나타난다. 메인 화장실의 벽은 초록색 포르나세티 벽지로 꾸몄다. 우드와 화이트 톤으로 꾸며진,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공간에 초록으로 생기를 더했다. 더구나 그 공간이 화장실이라 위트가 느껴진다.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인 다실 역시 원래는 방이었던 공간. 2층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창구인 공간을 누군가의 방으로 꾸미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호스트가 이 공간은 모두를 위한 다실로 꾸몄다. 바닥을 높여 제대로 차를 즐길 수 있는 다실로 만들어 차에 흥미가 없던 사람도 한 잔은 하고 가게끔 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큰 창을 통해 마당을 보는 것은 썸웨어에서 할 수 있는 호사스러운 경험 중 하나다. 다실을 통해 올라간 2층은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다락방의 모습이다. 다락방이지만 좀 많이 넓은 다락방. 친구들과 함께 큰 침대에서 뒹굴뒹굴 하고, 작은 침실에서는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쓸 수도 있다. 적당한 조도와 각도로 떨어지는 햇살은 2층을 더욱 머무르고 싶게끔 하는 이유가 된다. 


마당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거실 역시 썸웨어에서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하면서 마당을 바라볼 수 있다. 키가 큰 나무와 소담스런 마당, 모든 것이 한 프레임에 담기면 썸웨어만의 역사가 된다. 곳곳에 놓인 작품과 가구들이 호스트의 취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오래 전부터 이곳을 지키던 고가구들도 곳곳에서 인사를 건넨다. 썸웨어의 시간은 조용하면서도 차분하게 흘러간다.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파티도, 혼자만의 오롯한 시간도 썸웨어에서는 모두 가능하다. 한 가지 용도가 아닌 다양한 쓰임을 하는 공간의 발견은 언제나 새롭다.



4 POINT OF VIEW


ORIGINALITY | 나와 우리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

DESIGN | 세월에 감성을 더한 공간

MIND | 시간과 기억을 공간에 녹인 스테이

PRICE | 한옥, 그 이상의 가치를 누릴 수 있는 시간



글 ⓒ류창희

사진 | ⓒ안수향



썸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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